취임 82일 만에 성사된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한미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번 회담은 한미 양국이 안보·통상이라는 민감한 현안을 안고 마주하는 첫 공식 대좌이며, 향후 4년간의 양국 관계의 기조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편집자주>
[뉴스임팩트=박종국 기자]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양국은 외교무대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 중 하나인 ‘안보 청구서’와 통상 압박이라는 이중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회담 테이블 위에는 국방비 증액,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농산물·디지털 분야의 비관세 장벽, 3500억 달러 투자 등 복잡한 현안이 올라갈 전망이다.
‘한미동맹 현대화’라는 포괄적 요구
미국은 최근 몇 년간 ‘한미동맹 현대화’라는 명분 아래, 한국에 국방비 증액과 주한미군 운용 변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조기 전환, 한국군의 지역 안보 역할 확대 등을 요구해 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정부 내부 문서를 인용, 관세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한국의 국방비를 GDP 대비 2.6%에서 3.8%로 높이고, 방위비 분담금도 대폭 증액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사실상 50% 가까운 증액으로, 이재명 정부로서는 국내 여론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져 온 ‘안보 대가 지불’ 논리가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국방비 증액에 원칙적 동의를 하더라도, 속도와 규모를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동맹의 시험대
또 하나의 뜨거운 감자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다. 이는 주한미군이 한반도 밖,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의 분쟁에 투입될 수 있는 여지를 넓히는 개념이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닌 역량”이라며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는 한국 내 안보 불안을 자극하는 동시에, 미국이 원하는 유연성 확대의 압박 카드로 해석된다.
미국 국제전략연구소(CSIS)의 캐슬린 힉스 연구원은 군사전문매체 디펜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에서 핵심 축”이라며 “한국이 이 부분에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는다면 향후 한미 간 전략조율에 틈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투자·에너지·비관세 장벽 통상 현안
관세협상 타결로 양국이 한숨 돌렸지만, 통상 현안은 여전히 산적해 있다. 미국은 한국의 대미 3500억 달러 투자와 함께 1000억 달러 상당의 LNG·에너지 제품 구매를 약속받았지만, 투자처와 방식은 여전히 모호하다.
농산물·디지털 분야의 비관세 장벽 문제도 남아 있다. 한미는 관세협상 이후에도 농산물 검역 절차 개선, 자동차 안전기준 상한 폐지 문제를 협의 중이며, 미국은 한국의 온라인플랫폼법 추진과 구글 고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디지털 무역 장벽’으로 지적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상무부 출신 무역전문가 로버트 스콧은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낮춰주는 대가로 비관세 장벽 해제를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특히 디지털 무역 규범은 향후 10년간 미·중 경쟁의 주요 전장이 될 것이기에 한국의 대응 전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건부 양보’와 ‘상호보완’ 이재명식 해법
이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해법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 안보와 통상을 ‘패키지 딜’로 묶어 조건부 양보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국방비 증액에 일정 부분 동의하되, 그 대가로 관세율 추가 인하나 첨단 산업 투자 확대를 끌어내는 식이다.
둘째, 민감한 사안은 정상 차원이 아닌 실무·전략대화 채널에서 장기 검토 과제로 넘기는 방법이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회담의 긍정적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국내 정치적 부담을 줄이는 전략이 될 수 있다.
국제정치학자 조셉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포린 어페어스 기고에서 “동맹의 가치는 군사비 수치가 아니라 상호 신뢰와 장기 전략의 일관성에서 나온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의 단기적 요구에 대응하면서도 장기적 동맹 구도를 유지하려면 ‘시간을 버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