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82일 만에 성사된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한미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번 회담은 한미 양국이 안보·통상이라는 민감한 현안을 안고 마주하는 첫 공식 대좌이며, 향후 4년간의 양국 관계의 기조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편집자주>

이재명(왼쪽)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뉴스임팩트=최준영 대기자] 오는 25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D.C.에서 마주 앉는 순간, 양국은 단순한 정책 교환을 넘어 동맹의 방향을 새로 설계하는 협상에 돌입하게 된다. 이번 회담은 ‘압박과 양보’의 이분법을 넘어, 양국의 장기 전략을 조율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큰 틀 합의’ 혹은 ‘구체적 이행 계획’

외교가에서는 이번 회담이 ‘큰 틀 합의(big picture deal)’로 귀결될 가능성을 높게 본다. 국방비 증액,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통상 현안 등은 서로 얽혀 있어, 단일 의제에서 구체적 수치까지 확정짓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 서울 특파원 제인 김은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적인 ‘성과’를 선호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국내 정치적 파장을 고려해야 한다”며 “따라서 회담 결과는 상호 원칙 확인과 긍정적 메시지 발신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세부 이행 계획은 양국 실무·전략대화 채널에서 후속 논의로 이어지게 된다.

‘선택적 명확성’과 ‘전략적 모호성’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으로 ‘선택적 명확성’과 ‘전략적 모호성’의 병행을 꼽는다.

선택적 명확성은 국방비 증액 폭, 특정 통상 의제 등 미국이 즉시 요구하는 사안에는 원칙적 수용 의사를 밝히되, 한국의 이익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부가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또한, 전략적 모호성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디지털 무역 규범 등 국내·외적으로 민감한 의제는 명확한 수치나 기한 대신, ‘공동 검토·협의’ 수준에 머무르도록 조율하는 방식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앤드루 베넷 선임연구원은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약속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조건을 마련할 시간을 버는 외교 기술”이라며 “한국은 이번 회담에서 그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얻을까

한미동맹의 본질은 군사안보 협력에 있지만, 오늘날 그 가치의 상당 부분은 경제·기술 분야에서 결정된다.

이번 회담에서 한국이 내줄 수 있는 카드와 얻을 수 있는 카드는 국방비 단계적 증액, LNG·농산물 추가 구매, 일부 디지털 규제 완화 검토로 압축할 수 있다.

반면 얻을 수 있는 카드 중에는 대미 관세 추가 인하, 반도체·배터리 분야 미국 내 투자 인센티브, 첨단 군사기술 이전 및 공동개발 확대 등이 포함될 공산이 높아 보인다.

미국 국제경제연구소(PIIE)의 메리 러브 전무이사는 포린 어페어즈와의 인터뷰에서 “동맹에서 ‘교환’은 피할 수 없는 요소”라며 “한국이 국방과 통상에서 일정 부분 양보하더라도, 미래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술·투자 혜택을 확보하면 장기적으로 국익이 된다”고 말했다.

회담 이후 예상 가능한 세 갈래 길

정상회담 이후 한미관계는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전개될 수 있다. 첫째는 전략적 안정화다. 양국이 큰 틀 합의와 후속 조율을 원활히 진행해서 동맹 신뢰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 후속조치로 한미 간 군사·경제 협력 분야에서 전방위적인 확대가 진행되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둘째는 관리된 긴장 시나리오다. 한미 정상이 일부 의제에서 이견을 지속하지만, 협상 채널은 그대로 유지하는 방안이다. 이 경우 실무협의는 지연되겠지만, 동맹의 큰 틀은 유지하는 중간 정도의 시나리오다.

마지막은 부분적 균열 시나리오다. 국방비·비관세 장벽 등 핵심 사안에서 합의가 불발될 경우 미국이 통상·안보 분야에서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을 상향하는 방안이다. RAND연구소의 마이클 리빌 선임분석관은 디펜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악의 경우라도 한미동맹은 단기간에 깨지지 않겠지만, 다만, 정상회담 이후 첫 6개월이 협력 궤도 유지 여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협상의 진짜 성패

이번 회담의 성패는 회담장에서 나오는 합의문 문구보다, 향후 양국이 얼마나 일관되게 합의를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얻어야 할 것은 ‘트럼프의 약속’이 아니라 ‘트럼프의 신뢰’다.

국익과 동맹의 균형점은 종이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그 후속 행동에서 완성된다. 워싱턴에서 시작된 이 대화가 향후 4년간의 한미 관계를 좌우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안보·통상 양대 축 모두에서 완전한 합의가 도출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핵심은 ‘압박을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는가’로 집약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숫자와 약속이고, 이재명 대통령이 지켜야 할 것은 국익과 동맹 균형이다. 이번 회담이 그 접점을 찾는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 이후 한미관계가 “협력 속의 긴장” 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압박의 파도는 계속 오겠지만, 그 파도를 협상의 바람으로 바꿀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청와대의 전략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