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82일 만에 성사된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한미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번 회담은 한미 양국이 안보·통상이라는 민감한 현안을 안고 마주하는 첫 공식 대좌이며, 향후 4년간의 양국 관계의 기조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편집자주>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뉴스임팩트=박종국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조기 회담을 추진했다. 한미 간 현안이 누적된 상황에서, 조기 정상외교를 통해 신뢰를 다지고 양국 협력 틀을 재정립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첫 만남까지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6월 캐나다 G7 정상회의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정세 불안을 이유로 일정을 중단하고 조기 귀국했고, 같은 달 네덜란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도 양측 모두 불참의 선택을 하면서 회동이 무산됐다.
미국 외교전문매체 포린 폴리시는 “양국 정상의 첫 만남이 연이어 무산된 것은 상징적으로도 부담이 컸다”며 “조기 신뢰 형성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는 우려가 양측 외교 라인에 퍼져 있었다”고 분석했다.
관세협상 타결이 만든 전환점
정상회담의 물꼬를 튼 것은 지난달 타결된 한미 관세협상이었다. 양국은 한국의 대미 3500억 달러 투자와 LNG 구매 확대를 조건으로 상호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양국 모두에게 역사적 성과”라고 평가했고, 이재명 대통령 역시 “상호 호혜적 관계의 새로운 시작”이라 강조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관세협상 타결은 양측 모두가 정치적·경제적 성과를 챙길 수 있는 ‘윈-윈’이었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마주 앉을 수 있는 정치적 명분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취임 82일, ‘첫 인상’의 외교학
정상회담에서 첫 인상은 전략적 자산이 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처럼 개인적 호감과 인연을 정치적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지도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미국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매트는 “트럼프는 협상에서 상대방이 자신을 존중하고, ‘딜’에 진정성을 보이는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어떤 톤과 바디랭귀지를 취하느냐가 향후 대미 외교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익명을 전제로 “이 대통령은 회담에서 친근함과 단호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투트랙 접근’을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이는 과거 문재인·윤석열 정부와 차별화된 대미 정상외교 스타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회담이 향후 4년을 좌우하는 이유
이번 회담의 성과와 분위기는 향후 한미관계의 구조적 틀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첫째, 경제·통상 부문에서는 관세율·비관세 장벽·투자 조건 등 복합 이슈가 얽혀 있다. 둘째, 안보 분야에서는 국방비 증액, 주한미군 운용, 전작권 전환 등 중대한 변수가 회담 테이블 위에 놓인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데이비드 섀퍼 연구위원은 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첫 회담에서 만들어진 신뢰 수준이 앞으로 4년간의 협상 분위기를 결정할 것”이라며 “이재명 대통령이 ‘믿을 수 있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면 향후 민감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이 안보·통상 전선에서의 구체적 해법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큰 틀의 합의’와 ‘개인적 신뢰 구축’이라는 두 가지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크다.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을 “관계 설정의 무대”로 규정한다. 회담 이후 양국 실무진이 구체안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번 회담에서의 톤과 합의 수준이 모든 판단의 기준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압박과 국제적 요구 사이에서 ‘협상의 기술’을 얼마나 발휘하느냐에 달려 있다. 82일 만의 첫 대면이지만, 그 무게는 4년 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