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알포인트 포스터. @뉴스임팩트 자료사진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위원] 베트남전이 끝난 지 오래다. 그러나 한국영화 알포인트(2004)는 이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것도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공포와 전쟁, 두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한국전쟁영화의 지평을 넓힌 알포인트는 ‘귀신보다 무서운 것은 전우들의 죽음’이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전쟁터에서 실종된 한국군을 찾기 위해 베트남의 한 섬으로 파견된 병사들이 겪는 기이한 사건을 그린 이 영화는 단순한 ‘유령 이야기’가 아니다. 알포인트는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며, 전쟁이 인간에게 남기는 심리적 상처를 조명한다.

연출을 맡은 공수창 감독은 실화를 기반으로 한 설정에 상상력을 덧붙여 공포와 전쟁이 맞물리는 독특한 분위기를 창출했다. 영화의 시작은 ‘살아 있는가?’라는 무전을 수신하는 장면이다. 실종된 부대의 신호를 듣고, 최태인 중위(감우성)와 그의 분대원들은 정체불명의 알포인트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한 순간부터, 병사들은 자신들을 감시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느낀다.

공포영화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알포인트는 심리적 압박을 전면에 내세운다. 단순히 유령이 등장해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적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전쟁터의 긴장감을 이용해 점진적으로 불안을 조성한다. 전우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거나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관객들은 병사들과 함께 점점 숨이 막히는 느낌을 받는다.

알포인트는 전쟁영화이면서도 기존 한국전쟁영화들과는 결을 달리한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처럼 직접적인 전투 장면을 강조하는 대신,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아 있는 공포를 강조한다. 전쟁이 인간에게 남기는 심리적 상처를 공포라는 장치를 통해 보여주는 방식이다.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한국의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영화는 전쟁에서 죽은 자들이 진짜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들은 물리적으로 죽었을지 몰라도,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이러한 점에서 알포인트는 전쟁의 잔혹성을 재현하는 동시에, 전쟁을 경험한 이들이 겪는 트라우마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유령이 나와 사람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전우의 죽음을 목격한 병사들이 점점 무너지는 과정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경험인지 묘사한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요소 중 하나는 감우성의 연기다. 최태인 중위를 연기한 그는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을 보여주지만, 내면의 공포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관객을 몰입시킨다. 그의 연기는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미묘한 변화를 담아낸다. 또한, 배경이 되는 폐허와 밀림은 영화의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음습한 분위기의 밀림과 버려진 프랑스군 병영은 영화의 공간적 긴장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알포인트는 단순한 오락용 공포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상흔을 이야기한다. 과거의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죽은 전우들은 정말로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우리 기억 속에서 계속해서 되살아나는 것인가. 영화가 던지는 이 질문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이후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게 만든다.
전쟁은 끝났지만, 유령들은 아직 떠나지 않았다.

평점: ★★★★★ (5점 만점)

최진우 wltrbriant652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