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 뉴스임팩트 편집국장(사진 왼쪽)과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이 대화하고 있다.@뉴스임팩트

[뉴스임팩트=박종국·이상우기자] 최근 안보 환경이 심상찮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한국을 지켜주면서 일방적인 희생을 치렀다며 주한미군 방위비를 대폭 올릴 기세다. 중국은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 구조물을 무단으로 설치하는 도발 행위를 감행했다.

※ PMZ는 서해 중간에 우리나라와 중국의 200해리가 겹치는 수역 일부를 가리킨다. 이 수역에선 양국 어선이 함께 조업하되 한중 정부가 수산자원을 공동 관리한다. 중국이 PMZ에 구조물을 설치한 이유는 자기네 수역을 넓히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안보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뉴스임팩트가 군과 안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를 만나 의견을 들었다.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이다.

황기철 전 총장은 1957년생으로 해군사관학교(해사) 32기를 나왔다. 해군사관학교장, 해군참모차장, 해군 작전사령관,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 국가보훈처장을 지냈다. 현재는 광운대 일반대학원 방위사업학과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뉴스임팩트

ㅡ어릴 때부터 군인이 꿈이었나. 해군을 택한 계기는 뭔가.

"해사가 있는 경남 진해시(현 창원시 진해구) 출신이어서 학창 시절부터 해군과 친숙했다. 이순신 제독 동상을 매일 보면서 존경심을 키우기도 했다. 해군의 깔끔하고 신사적인 이미지도 마음에 들었다."

ㅡ프랑스 유학 경험이 있던데.

"고교 때 제2외국어로 불어를 배웠다. 불어가 문학적 언어여서 좋아했고 열심히 공부했다. 프랑스 합동참모대학을 2년 정도 다녔는데 프랑스 내에 형성돼 있던 편파적인 일본 우호 여론을 바로잡고 싶어 이순신 제독을 알린 일이 기억에 남는다. 소르본 대학 석사 과정에 들어간 뒤 이순신 제독에 대해 논문을 써서 역사학회지에 실었다. 임진왜란 당시 한중일 형세, 거북선, 조총, 군사 전술, 한일 함선 비교를 논문에서 상세히 다뤘다."

아덴만 여명 작전이 진행되는 모습.@출처=연합뉴스

ㅡ2011년 1월 해군 작전사령관으로서 아덴만 여명 작전을 성공시켰다. 임무 완수 비결은.

※ 아덴만 여명 작전은 소말리아 해적이 납치한 화물선 삼호 주얼리호를 구출하고자 청해부대가 시행한 해상 작전이다. 청해부대 소속 해군특수전전단(UDT) 팀은 급습을 통해 해적 8명을 사살, 5명을 생포하고 인질 21명 전원을 구해 냈다.

"우선 UDT 대원들 훈련 상태가 좋았다. 해적들이 쏘려고 하지 않는 한 먼저 발포하지 말라고 했는데 UDT 대원들 총 빼는 속도가 워낙 빨랐기에 가능한 지시였다. 국방부 장관, 합동참모의장이 저를 믿고 전권을 내준 것도 컸다. 그 덕에 외부 간섭을 배제하고 작전을 지휘할 수 있었다."

ㅡ해군 위관장교, 영관장교, 제독을 두루 거쳤는데 세 계급의 공통적 자질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세 계급 모두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솔선수범 정신을 지녀야 한다. 훌륭한 인격은 물론 민주 시민의 소양도 갖춰야 한다. 계급에 따라 다른 역량이 요구되는 부분도 있다. 위관장교는 현장에서 소통을 잘해야 한다. 영관장교는 중간 관리자로서 조정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작전을 책임지는 제독은 목표 달성에 필수적인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중국이 서해에 일방적으로 설치한 구조물.@출처=연합뉴스

ㅡ중국이 서해에서 도발하는데 우리가 어찌 대응해야 할까.

"일단 외교 채널을 총동원해 협상해야 한다. 해군과 해경을 활용한 감시 활동도 철저하게 해야 한다. 정 안되면 우리 역시 서해에 구조물을 설치하는 방안까지 고려할 수 있다. 다만 군사적 충돌은 가급적 배제해야 한다."

ㅡ세계 1위 조선 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해군력에서 미국을 추월할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중국이 해군력을 다지고 있지만 미국 또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미국은 향후 30년간 1조달러(1438조8000억원)를 투자해 해군력을 증강할 계획이다. 당분간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긴 어렵다고 본다. 함정은 선박만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다. 온갖 첨단 과학 기술이 적용된 복합 무기 체계가 함정이다.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배치한 함정에다 동맹국들의 지원까지 감안하면 해군력에서 중국보다 훨씬 뛰어나다."

미 해군 항공모함.@출처=연합뉴스

ㅡ안보에서 자강(自强)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펴야 할까.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한 후 세계는 각자도생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미동맹이 우리 안보에 필수적인 건 당연하지만 자강을 우선해야 국가를 지켜낼 수 있다. 자강을 해내려면 무기 체계를 개선하고 K방산을 키워야 한다. 장병 훈련과 정신교육 강화, 군 전문성 배양, 안보 예산 확충도 이뤄져야 한다."

ㅡ우리 해군에 핵잠수함이 있어야 한다고 보나. 핵잠수함 자체 개발, 핵연료 공급 같은 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핵잠수함이 있어야 한다. 우리 해군은 미국, 중국, 일본보다 해군력이 떨어진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무기 체계가 장기간 은밀성을 유지하면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핵잠수함이다. K방산 기업들이 핵잠수함 건조 기술을 갖고 있다. 미국과 협상해 핵연료를 조달하면 우리 해군도 핵잠수함을 충분히 보유할 수 있다."

ㅡ항공모함도 만들자는 견해가 제기되는데.

"항모의 필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나라는 무역으로 살아가는 국가다. 국부가 바다에서 창출된단 얘기다. 따라서 유사시 해상교통로를 지키는 데 전력을 투사할 수 있도록 항모를 가져야 한다. 항모는 북한 견제에도 유용하다. 지상에 있는 비행장은 북한의 최우선 표적이 되기 때문에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대부분 파괴될 거다. 반면 항모는 움직이는 비행장이어서 북한이 공격하기 힘들다."

"국내 조선업 발전을 위해서라도 항모가 있어야 한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손해를 보면서도 잠수함을 만들었다. 정주영 회장 결단으로 국내 조선 특수 기술이 빨리 업그레이드된 셈이다. 항모 역시 그런 기여를 할 수 있다. 게다가 국가 자존심 문제가 있다. 세계 10대 방산 국가 중에 항모가 없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이탈리아, 인도, 브라질도 소유하고 있는 항모를 우리가 가지지 못 하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

유지·보수·정비(MRO)를 위해 경남 거제시 한화오션 사업장에 입항한 미 해군 군수지원함.@출처=연합뉴스

ㅡ트럼프가 군함 보수, 수리 분야에서 한국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다. 군함 유지·보수·정비(MRO)가 K방산의 새 먹거리가 될 수 있을까.

"조선업이 쇠락한 미국은 MRO를 담당할 동맹국을 원한다. 가장 적합한 나라가 한국과 일본이다. 비용, 납기 측면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우위에 있으므로 미국 군함 MRO 일감을 K방산 업체들이 충분히 휩쓸 수 있다. 하지만 MRO를 많이 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이익이 얼마나 남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 우리 정부가 미 정부와 협상해 K방산 업체가 적정한 MRO 물량과 이윤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ㅡ간부들의 군 이탈이 심각해 국방력 약화가 우려된다. 군이 인재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매력적 조직으로 탈바꿈하려면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할까.

"장교들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 장교와 병사의 급여 차이가 별로 안 나는 현 상황이 비정상적이다. 커리어 보장과 연관된 경력 인정 제도를 마련하고 집 걱정을 덜 수 있도록 융자도 지원해야 한다."

"군의 자부심도 회복해야 한다. 계엄령으로 어수선한 군의 분위기를 조기에 수습하고 국민 신뢰를 받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군이 자꾸 정치와 연관돼 신뢰를 잃으면 안 된다. 결정권자들이 군에 잘못된 지시를 하면 군이 당당하게 거부할 수 있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ㅡ이순신 제독을 무척 존경하는데 외국 해군 제독 중엔 누구를 높게 평가하나.

"미 해군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레이 버크(Arleigh. A. Burke)다. 그는 2차 세계대전, 6·25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제독이면서 미 해군의 미래를 설계한 전략가였다. 전례 없이 미 해군참모총장을 3연임(1955~1961년) 하면서 핵잠수함 개발, 이지스 전투 체계 구상과 추진, 항모 현대화를 이끌었다. 6·25 전쟁 이후 함정 30여척을 우리 해군에 제공해 한국 안보에 크게 이바지하기도 했다."

※ 이지스 전투 체계는 적 탐지, 추적, 조준이 통합된 방공 시스템을 뜻한다. 이지스(AEGIS)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쓴 방패에서 따온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