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효창공원내 삼의사의 묘@김서정작가


[뉴스임팩트=김서정작가]효창공원을 걷고 나서 이를 들여다보니 연대기적 순서는 가닥이 잡힌다. 하지만 무엇에 방점을 두어야 할지 사유라는 걸 진행시켜 보니 일목요연하지 않다. 마을 사람들은 자주 걷는 산책지이고, 뜻을 좇는 사람들은 특별한 날 참배하는 성지이고, 이도저도 아닌 그저 나들이 삼아 들르는 곳이면 주위에 흔한 공원이 된다. 질서 있게 정리되지 않은 게 혼란스러워 탐색을 진척시키다 마지막 다다른 지점이 마을숲이다. 효창공원은 도시에서 사라진 마을숲 기능을 복합적으로 해낼 수 있을 듯하다.

<미학의 발견>을 보면, “모르는 대상을 만났을 때 인식의 좌절로 끝나지 않고 인간은 이 대상을 인식과 이해의 차원이 아닌 사유의 차원으로 끌고 가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버립니다”라고 말하면서 사유 능력인 이성에 기대면 우리가 인간이라는 위대함이 감지되면서 쾌감이 일어난다고 한다. 즉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과 그후 인간의 역사가 긴밀히 결합된 그 공간에 1989년 붙여진 사적 제330호 효창공원, 거기에 공원의 필수 주인공인 나무들을 연결하려니 마을숲이 잡혔고, 비로소 머릿속에서 기쁨이 솟았다.

<마을숲과 참살이>를 보면, “마을숲은 한국 공원의 원형이자 오늘날 도시공원녹지의 근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 전통공간인 마을숲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공공성을 되살리고 이를 현대 도시공원녹지 계획에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라는 글이 나온다. 멋진 생각이다. 고립된 듯한 마을을 저렴한 비용으로 지키기 위해 조림한 인공숲 그림을 떠올릴 수 없는 도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가는 건 오로지 경계 표시를 알리는 도로만 지나면 끝인 도시, 빌딩과 아파트를 들어갈 때 조경 나무는 볼 수 있지만 숲의 공기는 마실 수 없는 도시, 바로 그런 도시 곳곳에 있는 공원을 마을숲으로 정의할 수 있는 사유, 충분히 공공화시켜야 한다.

마을숲의 기능 구분은 1938년 조선총독부 임업시험장에서 간행한 <조선의 임수>에서 처음 제시되었다고 한다. 열 개 범주인데, 종교적 기능, 교육적 기능, 풍치적 기능, 위생적 기능, 교통적 기능, 보안적 기능, 농리적 기능, 엽목적 기능, 군사적 기능, 공용적 기능이다. <마을숲과 참살이>는 이를 줄여 마을숲의 문화에 담긴 기능을 중심으로 정서적 기능과 꾸밈의 기능을 구현하는 숲을 경관림으로, 종교, 신성, 교화적 기능을 구현하는 숲을 성황림으로, 전통적인 풍수사상을 구현하는 숲을 비보림으로, 환경 개선과 재 해방비를 위한 숲을 보안림으로, 역사 전설을 간직한 숲을 역사림으로 구분하여 마을숲 이야기를 전개했다.

효창공원을 마을숲으로 보고 하나씩 풀어보자.
경관림이다. <한국의 정원&조경수 도감>을 보면, “대규모 신도시를 건설할 때뿐만 아니라 빌딩, 아파트, 타운하우스, 주택, 공원 등을 조성할 때 풍치와 심미적 차원으로서의 조경의 가치가 날로 세분화되고 발전해가고 있는 추세에 놓여있”다라고 한다. 풍치(風致)는 훌륭하고 멋진 경치고, 심미적 차원은 미의 기준이 주관적인 것이라 특정하게 개념화할 수 없다. 그래서 효창공원 꾸밈이 누구에게는 멋진 풍경으로 다가와 지극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갈 수도 있고, 누구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충열문을 들어가서 보면 키 큰 나무는 은행나무, 플라타너스, 참나무, 소나무 등이고, 작은 나무는 사철나무, 화살나무, 조팝나무 등이고, 그 아래 풀들은 맥문동 그리고 자연스레 자라는 계절별 야생화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즉 수종으로 보면 여느 공원과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백범 김구선생의 묘를 오르는 계단@김서정작가


성황림이다. 아마 야생의 나무와 풀들이 생태적으로 자라 있었을 법한 이곳에 인간의 개입이 시작된 건 효창묘(孝昌墓)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소나무가 우거져 있던 숲을 정조는 일정 영역 묘터로 바꾼 뒤 애틋한 사랑의 인연인 문효세자와 그 의 어머니인 아내 의빈 성씨를 묻었다. 1870년 효창원(孝昌園)으로 승격되었지만, 외세 침략이 시작되면서 신성의 영역은 무너졌다. 1894년 일본군은 만리재에 주둔하며 이 일대를 숙영지로 만들었고, 남쪽에 유곽과 철도 관사를 배치했다. 효창원은 효창공원이 되었고, 조선의 유교 정신을 사유해야 했던 숲과 묘는 처참한 훼손이 가해지며 우리나라 최초 골프장으로 변색되고 말았다. 급기야 1944년 효창원은 지금의 고양시 서삼릉으로 이전되고, 일제는 침략 전쟁에서 죽음을 맞이한 그들의 군인들을 묻는 묘소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이듬해 광복으로 실행되지 못했지만, 이처럼 숲을 잃어가면서 마을 주민의 고유 정신마저 바꾸어야 하는 비극의 공간이 되었다.

비보림이다. 비보림의 비보(裨補)는 지속가능한 마을이 되도록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는 것이다. 나무가 무성한 숲으로 말이다. 하지만 마을 아무 곳에나 숲을 조성하면 안 된다. 풍수사상이 들어간다. 생명의 근원인 바람과 물을 잘 헤아려야 마을이 온전하기 때문이다.

효창공원에는 뚜껑이 덮여 있는 샘터가 있다. 표지판에는 이런 글이 있다. “과거 효창원 일대는 수림이 울창하고 샘물이 있었는데 물이 맑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 주민들이 공동 우물로 사용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도시화로 물길이 끊겨 샘물의 양이 줄고 식수로 사용할 수 없지만 아직도 일정량의 물이 솟아오르고 있어 용산구는 이를 활용해 소생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실개천으로 복원하였다”라고. 복원했다는 실개천 옆으로 나무내음길이 있다. 물이 있으니 양서류도 있고 숲이 숲답게 보인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채운 듯한 숲의 느낌을 가져갈 수 있다. 비보의 기능이다.

보안림이다. 보안림(保安林)은 일본식 한자표기라 2010년 산림청은 산림보호구역으로 순화해 사용한다고 한다. <조선의 임수>에서 보안적 기능을 보면, ‘수해방비, 풍해방비, 조해방비, 비사방지, 토사간지’라고 하는데, 마을숲이 물, 바람, 조수, 모래, 토사유출 등에 적절히 대비해 안전한 마을을 만든다는 것이다.

효창공원 산책길@김서정 작가


효창공원 옆에 효창운동장이 있다. 1956년 이승만 정부는 광복 후 조성된 독립운동가들의 묘를 이장하고 효창운동장을 건립하겠다고 했다.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효창운동장은 들어섰고 지금까지 활용되고 있다. 묘지에는 나무가 많이 들어설 수 없지만, 그래도 운동장보다는 나을 법하지만, 다 지난 일, 지금의 공원이라도 잘 지켜나가는 게 중요할 듯하다. 70년대에 효창공원에서는 복날이면 솥단지를 공원 나무 사이에 걸어두고 삼계탕을 끓여 먹고 흥에 취해 놀던 놀이터였다고 하는데, 이제 그런 일은 없으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한다. 숲을 없애지 않고도 운동할 수 있는 곳, 여흥을 즐길 수 있는 곳, 숱하게 많다는 걸 알아야 한다.
역사림이다. 마을숲에는 신화와 전설이 많다. 그것도 단군시대부터. 그런데 효창공원은 신화와 전설이 아닌 실제 역사가 흐르고 있다. 그것도 현재까지 극명하게 다른 역사의식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걸 지난해 광복절에 실제적으로 보여준 곳, 가히 살아 있는 역사림이라 일컬을 수 있다.

효창공원에는 1946년 백정기, 이봉창, 윤봉길 의사를 모신 삼의사묘가 있다. 그 옆에는 안중근 의사 가묘가 있다. 1948년 이동녕, 조성환, 차이석 독립운동가를 모신 임정요인 묘역이 있다. 1949년 백범 김구 선생을 모신 묘가 있다. 2002년 백범 김구 기념관이 설립되었다. 그리고 1969년 세운 북한 반공투사 위령탑이 있다. 이 탑은 문이 닫혀 있는데 파주시 통일공원으로 옮긴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단다. 또 원효대사 동상도 있다. 가는 곳마다 의미 부여는 할 수 있는데, 정말 어떤 역사의식을 가져가야 할지 사전 역사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

<마을숲과 참살이>를 보면, “도시의 역사를 담고 독특한 도시경관을 만들어 내는 공원녹지는 도시민에게 심리적 안정과 긍지를 갖도록 하므로 인간성 회복과 향토애를 고취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오래되면서도 살아 흐르는 역사인 듯 새롭게 변신하는 도시숲 공원인 듯 이 모두를 느껴야 할 효창공원에 마을숲의 기능인 경관림, 성황림, 비보림, 보안림, 역사림을 투영해 사유해 보자. 그러면 심리적 안정과 긍지, 인간성 회복과 향토애가 꽃처럼 피어나지 않을까. 거기에 왕릉 못지않게 잘 자라고 있는 묘역 뒤 소나무를 보고 있으면 <미학의 발견>에서 말한 “이성은 추구해야 할 가치이지만 감성은 실제 상황이라”라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을까. 우리가 살아갈 힘의 원천은 늘 나무에게 있으니까. 그건 오로지 느낌이니까.

[김서정 작가 소개]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