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박종국·이상우기자] 국가보훈부 통계를 보면 중기(5년 이상 10년 미만), 장기(10년 이상) 복무를 마치고 전역하는 제대 군인 수가 1년에 7000명이 넘는다.
미국의 제대 군인 원호법(G.I Bill) 같은 확실한 정책적 뒷받침이 없는 우리 사회에서 제대 군인이 선택할 수 있는 진로는 넓지 않다. 그래선지 총선, 대선 같은 이벤트가 발생할 때 정치에 뛰어드는 제대 군인들이 유독 많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용기를 내 창업에 도전한 제대 군인이 있다. 군 생활 소통 커뮤니티 '마편'을 만든 엄효식 대표다. 그는 어떻게 가시밭길을 택할 수 있었을까. 뉴스임팩트가 엄효식 대표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엄효식 대표는 1964년생으로 충북 제천시 출신이다. 육사 42기를 나와 30년 넘게 군 복무를 한 뒤 합동참모본부(합참) 공보실장을 거쳐 2017년 육군교육사령부 정훈공보실장(대령)으로 전역했다. 사회에선 옛 한화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홍보 상무를 지냈다. 2022년 마편을 설립했다.
ㅡ어릴 때부터 군인이 꿈이었나.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제천에선 사관학교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당시 정부가 과외를 금지했기 때문에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방법도 마땅찮았다. 육사에 다니고 있던 선배의 소개를 들어보니 사관학교를 갈 만하겠다 싶어 진학했다."
ㅡ군 생활이 적성에 맞았나.
"대위까진 군 생활이 너무 안 맞는 측면이 있어 고생했다. 소령 때 강원 양구군의 2사단 정훈 참모 장교를 지내면서 사단 장병 음악회를 기획, 추진했다. 장병들이 다들 좋아하더라. 군 관련 방송이나 교양 다큐멘터리도 찍었는데 그걸 본 장병들이 너무 즐거워하고 자부심을 가졌다. 소속 부대와 군복에 대한 자긍심이 전투력 상승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 업무가 군대의 존재 목적에 부합하는 큰 의미를 지닌 일이라고도 여기게 됐다."
ㅡ정훈 특기를 고른 이유는 뭔가.
※ 정훈(政訓) 병과는 장병을 대상으로 한 정신 교육, 장병과 국민들을 향한 홍보, 전시 홍보 등을 담당한다.
"특별히 정훈을 선호한 건 아니다. 정훈이 군은 물론 평소 관심 있던 국제정치 같은 분야도 깊이 알아야 하기에 참모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야전 부대, 육군본부, 합참을 돌면서 계속 정훈 업무를 했다. 장병 정신 무장과 함께 군을 국민에게 알리는 데 전념했다. 국방부 기자들과도 자주 만나 의견을 주고받았다."
ㅡ요즘 장병들 정신교육은 어떻게 하나.
"국가관, 안보관, 군인정신을 가르친다. 최근 입대한 병사들은 휴대폰을 쓰기 때문에 교관이 가르치는 게 잘 안 먹힌다. 계급 높은 사람이 강의한다고 입력이 잘되지 않는 거다. 대신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북한 핵실험을 겪은 세대라 그런지 북한이 적이라는 의식은 오히려 예전보다 뚜렷하다."
ㅡ전역은 어려운 결단이었을 텐데.
"제가 군 생활을 31년간 했고 대령 생활도 8년이나 했다. 동기 중에 장군이 나온 상태에서 제가 진급하긴 힘들다고 판단했다. 군 생활을 할 만큼 했으니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자 했다. 마침 한화그룹에서 홍보 임원으로 스카우트하겠다는 제안이 와서 제2의 인생을 살자고 결심했다."
ㅡ4년간 기업 임원으로 재직하셨는데 기업은 군과 어떤 차이가 있었나.
"육군 참모총장보다 대기업 총수가 조직 내에선 훨씬 힘이 세다. 참모총장은 길어야 2년이지만 총수는 임기가 없으니까. 조직 문화도 달랐다. 군도 치열하지만 기업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군은 국방 예산이 편성되면 돈이 들어온다. 기업에 예산이 어디 있나. 매출을 올리는 데 실패하면 아무것도 못 한다. 인사도 기업이 훨씬 차갑다. 군은 진급 심사에서 떨어져도 몇 년은 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은 인사 시즌에 짐을 싸야 하는 임원이 많다. 그럴 땐 대표이사가 커피 한잔하자고 해도 겁나더라. 혹시 나가란 얘기 할까 봐."
ㅡ2021년 10월 한화테크윈을 떠났는데.
"조직 내에서 전시회를 포함한 다양한 홍보 업무를 했다. 문득 제 역할을 다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화그룹 홍보 임원들이 대부분 저보다 어리기도 했다. 이제 회사를 떠날 시기구나 싶었다. 또 다른 사회생활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ㅡ마편 창업 계기는.
"제가 소위 시절 경험한 군대와 소령, 대령을 달고 살펴본 군대가 본질적으로 똑같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군대는 왜 항상 불만의 대상인지,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는커녕 못 갈 데를 어쩔 수 없이 갔다고 여겨야 하는지 고민했다. 근본 원인은 군대에서 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마편을 통해 병사들이 계급과 근무지를 떠나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면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고, 군 생활도 원활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
"2019년 이뤄진 군 휴대폰 도입도 마편을 세운 시발점이다. 병사들이 휴대폰으로 마편에 접속해 군 생활 노하우와 경험을 공유하고 고민도 서로 들어주면 군 생활을 더 좋은 시간으로 기억할 거라고 봤다. 마음 편히 얘기할 수 있도록 익명으로 글을 쓰되 남을 욕하거나 흉보지 않는 밝은 분위기의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했다."
ㅡ창업 과정이 쉽진 않았을 텐데.
"여러 부대를 돌면서 병사들 얘기부터 들었다. 병사들은 의무 복무임에도 국가와 군대가 너무 불친절하다고 토로했다. 하다못해 백일 휴가를 나가는데 사복을 언제 갈아입으면 되는지도 속 시원하게 답변을 안 해준다는 거다. 익명 커뮤니티를 만들면 그들의 갑갑함을 해소해 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앱 개발사를 찾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필요했다. 착수부터 개발까지 1년 반은 걸렸다."
ㅡ마편 운영은 몇 명이 하나.
"저를 포함해 2명이 한다. 처음엔 앱을 운영하려면 직원 4~5명은 필요하다고 봤는데 비용 부담이 컸다. 사무실도 자유석 형태 공유 오피스로 바꿀 계획이다. 아직 수익이 날 시기가 아니라서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ㅡ앱 운영도 비즈니스인데 이익을 얻어야 하지 않나.
"물론이다. 3단계로 사업 계획을 세웠다. 첫 번째는 가입자를 늘려서 배너 광고 받는 거다. 두 번째는 군대 관련 굿즈(기획 상품)에 스토리를 입혀 판매하는 온라인 매장을 하는 거다. 세 번째는 군이나 국방부가 발주하는 소통 워크숍 일감을 따내는 거다. 일단 현재는 첫 번째 단계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ㅡ광고를 받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그렇다. 다만 군인 상대로 광고하고 싶어 하는 수요는 분명히 있다. 병사들이 휴대폰을 가진 데다 월급도 예전보다 많이 받다 보니 그들을 상대로 광고하고 싶어 하는 기업주들이 있는 거다. 마편 앱 사용자 수를 1만명까지 늘리면 광고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ㅡ당장 들어가는 앱 운영비는 어떻게 충당하나. 사용자 수 증가 추이는.
"제가 언론 기고, 방위산업 컨설팅, 방송 패널 출연을 통해 비용을 대고 있다. 사용자를 어떻게 늘릴지는 고민이 크다. 마편 앱을 내려받은 사람이 2300여명이다. 아직 병사들에게 홍보가 잘 안됐다. 자극적 고발이나 제보를 받아 이슈화하면 사용자를 한 번에 늘릴 순 있지만 그건 마편의 지향점이 아니다. 무던한 마음을 먹고 노력 중이다."
(다음 기사에서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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