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의 전쟁영화 이야기(18)] 인간다움에 대한 물음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최진우 승인 2024.01.08 13:40 | 최종 수정 2024.01.08 13:43 의견 0
영화 이오지만에서 온 편지@뉴스임팩트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위원] 액션배우이자 묵직한 주제를 주로 다루는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2차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희생자를 낸 이오지마 전투를 한 차례 영화로 만든 적이 있다.

‘아버지의 깃발’이 그것인데, 이 영화는 철저하게 미군의 시각에서 이오지마 전투를 그려낸 반면,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Iwo Jima)는 일본군의 시각에서 이 전투를 해석하고 있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원래 이오지마 주둔 일본군 사령관 중장 쿠리바야시 타다미치가 집으로 보낸 편지와 가족의 이야기 등을 묶은 책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하지만 영화는 편지내용과는 거의 상관없이 일본군의 시각에서 이오지마전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버지의 깃발’이 미군의 시각에서 바라본 반면,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일본군 시각에서 바라봤으니, 동일한 사건을 정반대의 시각에서 접근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해석이 흥미롭다.

이오지마전투는 태평양전쟁 말기, 미군에 극심한 피해를 입힌 상륙작전이다. 미군 7만명 대 일본군 2만2000명으로, 미군이 압도적으로 숫적 우세를 점한 싸움임에도 일본군의 끈질긴 저항 때문에 미군은 2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내 1만70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일본군보다 오히려 더 피해가 컸다.

영화는 미군의 공격에 맞서 목숨을 걸고 섬을 지켜야하는 일본군의 시선에서 전투와 그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이오지마섬은 미군이 일본 본토 상륙에 앞서 교두보로 삼고자 했던 중요한 요충지였다. 일본 역시 이 섬을 잃게되면 본토 공격을 손쉽게 허용하는 식이어서 죽기살기로 지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옥쇄작전이나 마찬가지인 이오지마 섬 지키기에 나선 일본군의 비합리성과 잔혹성, 인간을 소모품 취급하는 일본군부의 비정한 행태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역사적 사실만 보면, 일본군은 모두 죽음을 각오한채 한 명의 미군이라도 더 죽이거나, 다치게 할 목적으로 결사항전을 벌인 것이 이오지마 전투의 핵심이다. 이 때문에 미군 입장에서 당초 1주일이면 끝날 것으로 생각되었던 이오지마전투는 무려 1개월 가까이를 끌면서 양측 모두 4만여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냈다.

하지만 단순히 드러난 숫자 이면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 적과의 전투보다 아군 사이에서 발생하는 부조리 등이 오히려 더 일본군을 괴롭혔다는 점을 영화는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치열한 전투 속에서도 화산재로 뒤덮힌 이오지마 섬을 뛰어난 영상미로 담았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영화 인셉션을 통해 한국관객들에게도 익숙한 와타나베 켄과 니노미야 카즈나리의 연기도 빼어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 배우는 캐릭터에 진실성과 심도를 불어넣어 관객을 전쟁의 현실에 몰입시키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출 기술은 전쟁의 가혹한 현실을 미적으로 승화시키는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

특히 영화 내내 흐르는 배경음악은 이 영화를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 음향편집상 수상작으로 만들었다.

이오지마 전투는 일본군의 의도대로, 미군이 예상밖의 피해를 안겨주었지만, 이오지마 전투에서 호되게 당한 미국정부가 맨해튼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원자폭탄 개발과 실제 사용에 기폭제가 되었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평점: ★★★★☆ (5점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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