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위원] 작년 2월 발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나타난 현상 중 하나는 기갑부대의 상징인 탱크가 드론을 이용한 미사일 공격이나 개인용 화기에 의해 맥없이 망가지는 것이다. 한때 천하무적으로 여겨졌던 탱크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제2차 세계대전까지는 탱크가 전쟁의 판세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위력을 떨치던 시기였다.
데이빗 에이어 감독의 긴장감 넘치는 전쟁영화 ‘퓨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공포와 복잡성이 살아 숨쉬는 수작으로 꼽힌다. 영화는 전쟁이 한창 막바지에 다다라 독일 패망을 목전에 둔 1945년 시점을 배경으로 탱크병들의 심리에 깊이 몰입하며, 독일군과 나치가 여전히 활개를 치는 위험한 전장을 돌파하려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브래드 피트, 샤이아 라보프, 마이클 페냐, 로건 러먼 등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의 콜라보와 막강한 화력을 동원한 액션을 바탕으로, 영화는 전쟁의 역경에 맞서 싸우던 병사들의 희생을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핵심인물은 돈 ‘워대디’ 컬리어(브래드 피트)다. 퓨리의 전차장을 맡고 있는 돈 컬리어가 이름이고, 워대디는 별명인데,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산전수준을 다 겪은 베테랑이다. 영화에서는 아프리카에서부터 유럽까지 수많은 전선을 누빈 패튼 장군 휘하의 서부임무부대인 제2기갑사단 소속으로 나온다.
브래드 피트가 앞서 찍었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녀석들에서 거칠면서도 약간 장난기 있는 캐릭터로 나왔던 것과 달리, 영화 ‘퓨리’에서는 웃음기 싹 뺀 신중한 인물로 등장한다. 워대디는 영화 내내 항상 당당한 모습이지만, 그 이면에는 전투과정에서 동료들을 잃은 슬픔과 심한 PTSD(정신적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증세 때문에 괴로워하는 성격의 소유자다.
워대디 역할을 맡은 브래드 피트는 낡은 전투복을 입고 화면을 자유자재로 지배하면서도 전차장으로서의 책임의 무게에 시달리는 인물을 잘 표현한다. 그의 연기는 삶의 쓰림과 불굴의 느낌을 더하며, 영웅조차도 전쟁의 상처를 지닌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에이어 감독의 연출은 탱크 전투의 폐쇄적인 특성을 잘 잡아내고 있다. 관객은 탱크의 좁은 공간으로 밀어넣어지며, 탱크병들의 두려움과 동료애, 잔인한 현실을 함께 체험한다. 정교하게 디자인된 세트와 시네마토그래피는 조화롭게 작용하여, 전투의 혼돈과 파괴를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티즌들이 전쟁영화 중 반드시 봐야할 영화 중 하나로 이 영화를 주저없이 꼽는데는 이런 복합적인 특징들 때문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조연들은 각자의 독특한 성격과 캐릭터로 극적인 요소들을 배가시키고 있다. 특히 트랜스포머 시리즈로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샤이아 라보프가 연기한 보이드 ‘바이블’ 스완은 별명 ‘바이블’에서 알 수 있듯이 깊은 신앙심을 가진 총사수다. 영화 초반부에 죽은 독일군을 위해 기도를 해주는 모습이나 다른 승무원들과 달리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마다 혼자 성경을 보고 있는 모습은 전쟁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전쟁은 한 마디로 규정하기 힘든 복잡성을 지닌다. 때문에 영화 ‘퓨리’는 전쟁의 혼돈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데 몰입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도덕적 모호성을 부각시키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에이어의 각본은 연합군이나 독일군 양측이 저지른 잔인한 행위를 비교적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을 전쟁의 가혹한 현실에 직면하게 만든다. 병사들의 심리적인 고통을 탐구하는 것은 영화 전반에 걸쳐 계속되는 주제로, 영웅의 본질과 생존의 대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던져준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등장하는 독일군은 미군들에 비해 산만하게 그려지는 장면이 많이 나와 역시 미국을 대변하는 헐리웃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퓨리’는 크레딧이 끝나고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에이어의 단호한 접근과 브래드 피트 등 주조연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 기술적 완성도가 결합하여 자유의 대가를 생각하게 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최진우 wltrbrinat65202@gmail.com
저작권자 ⓒ 뉴스임팩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