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구 갈맷길 문탠로드@김서정 작가
[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부산 해운대에 가면 동백섬 말고 반대로 이어지는 문탠로드(moontan road) 숲길을 걸어보자. 달맞이길 드라이브도 운치 있지만 바다 가까운 관광열차도 낭만이지만 그 사이 2.2킬로미터를 가벼운 마음으로 입산해보자. 그러면 굽이진 아스팔트 질주보다 레일로 철썩이는 듯한 파도보다 나를 움직이는 내면의 소리가 깊은 울림으로 솟구칠 것 같다.
문탠로드는 부산 갈맷길 가운데 1코스와 2코스를 잇는 길이다. 갈맷길은 부산 트레킹 코스로 해안길 6곳, 강변길 3곳, 숲길 8곳, 도심길 4곳이 있는데, 부산의 상징인 갈매기와 길의 합성어이다. 총 거리는 278.8킬로미터라고 한다.
낮에 해수욕장에서 선탠(suntan)으로 몸을 건강하게 했다면, 밤에 문탠로드를 거닐며 달빛으로 피부를 무두질해서 정신을 건강하게 하자. ‘달빛을 받으며 가볍게 걷는길’이란 의미로 문탠로드라고 했다는데, 저녁 11시에서 새벽 5시까지는 통행 불가이니 잘 시간에는 자고 그 사이 사이 내면을 단단하게 다지자.
우리는 잠을 자야 다음날 움직일 수 있는데 식물들도 그러할까?
눈이 감긴 채 의식 활동이 쉬는 상태를 잠이라고 정의한다면 식물은 감을 눈이 없지만 그래도 잠을 잔다고 말할 수 있다. 낮과 밤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식물의 수면운동이라 부르는 식물의 잠, 그 대표적인 현상은 낮에 피어 있던 꽃잎이 오후부터 꽃잎을 닫아버리는 것이다. 나팔꽃, 무궁화, 닭의장풀이 그러하다.
한결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우리도 잘 때는 서지 않고 눕는다는 것, 그걸 잠이라고 한다면 이유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중력에 저항한 에너지를 보충한다고 치고, 식물들도 그러한 것인가?
식물이 꽃잎을 닫는 건 꽃가루받이를 해줄 매개 동물들이 사람처럼 밤에 에너지를 축적하기 위한 활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찾아줄 이가 없는데 굳이 문 열고 있을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들이대는 이가 있을 것이다. 밤에 활동하는 해충들이다.
그래서 꽃가루를 지키기 위해 꽃잎을 닫고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동물들을 위해 젖은 꽃가루보다 마른 꽃가루를 제공하는 게 방문자를 늘릴 수 있어 차가운 밤공기를 차단하는 것이다. 꽃잎 닫기는 생존을 위한 영리한 전략인 셈이다.
주행성 사람도 있고 야행성 사람도 있듯이 밤에 꽃을 피우는 달맞이꽃, 박꽃도 있다. 이들의 짝은 밤에 활동하는 동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탠로드 달빛 걷기에 꽃을 보면 정신 건강은 살찌우겠지만, 또 못 보면 얼마나 실망이 클까? 하지만 꽃잎 말고도 낮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식물들도 있다. 콩은 밤이 되면 잎을 아래로 드리우고, 괭이밥은 잎맥을 따라 잎을 접어 넣고, 클로버는 잎을 한데 모아 꽃을 에워싸고, 자귀나무는 잎을 접는다.
은은한 달빛 산책에 일일이 확인하는 게 성가시면 나는 지금 왜 걷고 있는지 거기에 집중하자. 낮과 밤이 다른 나의 모습, 어제와 오늘이 다른 나의 모습, 그 모습의 진짜가 무엇인지 안으로 파고들어가 보자. 강렬한 햇빛보다 스며드는 달빛이 혼탁한 생각을 투명하게 비춰줄 것이다.
그때 어설픈 과학으로 달빛 산책을 멈추게 할 수도 있다. 사람들도 잠을 자면서 숨을 쉬고, 식물들도 잠을 자면서 숨을 쉰다. 다른 점은 사람은 낮에도 밤에도 산소를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는데, 식물은 낮에는 광합성량이 호흡량보다 많아 산소를 내보내고, 밤에는 광합성을 하지 않고 호흡만 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를 내보낸다.
밤에는 나무들이 이산화탄소를 내보낸다고 하니 밤에 숲을 산책하며 공기를 마음껏 마시는 게 안 좋을 수도 있을까? 그렇지 않다. 높은 온도에서 자라는 선인장은 낮에는 호흡만 하고 밤에 광합성을 한다. 밤에 산소를 내보낸다는 건데, 이 선인장 말고 거의 모든 식물은 밤에 이산화탄서를 내보내지만 그 양이 아주 적어 괜찮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니 밤의 숲 산책을 두려워말고 기꺼이 나서 보자.
사실 이산화탄소가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고 숲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무섭다면 낮에 걷자. 밤에 걸으면 문탠로드 낮에 걸으면 피톤치드로드가 되는 것 아닌가.
문탠로드가 끝나가는 길에서 팔손이를 만났다. 조금만 가면 달맞이길이고 조금만 더 가면 해운대가 나온다. 누군가 심었는지 자연 상태로 자랐는지 모르지만, 남부지방 자생식물이라는 팔손이를 숲에서 보니 반갑기만 하다.
팔손이는 두릅나무과 아열대식물로 분포 지역이 일본, 경상남도 남해도와 거제도로 표기가 되어 있다. 대표적인 실내 공기정화 식물이라 그런지 주위에서 많이 키우고 있는 팔손이, 모양으로 보면 외국 식물이지만 우리 식물이란다.
팔손이는 키가 1~3미터로 작은데 잎은 양손을 합해 놓은 것처럼 크고, 거기서 손가락을 쫙 펼친 것처럼 갈라져 있다. 갈래가 일곱에서 아홉 개이지만, 대개 여덟 개가 많아 팔손이라고 불리는데 자료를 보니 인도에 그 유래가 있었다.
인도 공주가 있었고, 공주는 열일곱 생일에 어머니한테 쌍가락지를 선물로 받았고, 그걸 본 시녀가 공주 방을 청소하다가 엄지에 끼어봤고, 그런데 빠지지 않아 도둑으로 몰릴 것 같아 엄지를 구부리고 여덟 개의 손가락만 펴 보였단다. 그때 하늘이 노해 시녀를 나무로 변하게 했는데 그게 팔손이였다는 것이다.
시녀로 살지 말고 공주로 살려면 그렇게 태어나는 수밖에 없을 텐데, 내가 공주가 아니라면 자식이라도 공주에 가깝게 살게 하려는 욕망,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 그러면 팔손이를 집에 들여다 놓아보자.
팔손이 @김서정작가
농촌진흥청이 식물의 실내 공기 정화 원리에 대해 설명한 자료를 보면, 첫째, 잎에 흡수된 일부 오염물질은, 광합성의 대사산물로 이용되어 제거되고, 화분 토양 내로 흡수된 오염물질은 근권부 즉 뿌리 부분의 미생물에 의해 제거되고, 둘째, 음이온, 향, 산소, 수분 등의 다양한 식물 방출물질에 의해 실내 환경이 쾌적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실내 가운데 아이들 공부방이 가장 중요한 공간인데, 여기에는 음이온이 많이 발생하고, 이산화탄소 제거 능력이 뛰어나며, 기억력 향상에 도움 주는 물질을 배출하는 식물을 두어야 한다는데, 공부방에 좋은 식물로 팔손이, 개운죽, 로즈마리 등을 들고 있다.
팔손이는 음이온 방출에 큰 도움이 된다는데, 자연상태와 가까운 환경에서는 공기 중의 음이온과 양이온의 비율이 1.2 : 1 정도인데, 도시 지역이나 오염지역 등은 1 : 1.2~1.5로, 양이온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이온 발생량은 식물 종류별로 차이가 있는데, 실내 공간에 약 30퍼센트 정도 화분을 두면, 공기 1세제곱센티미터당 약 100~400개 정도의 음이온이 발생한다고 한다.
뭐니뭐니해도 실내보다 숲으로 가야 음이온과 양이온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 우리 몸에 좋다. 숲에 가면 식물이 광합성도 하고 증산작용도 해서, 산소와 물분자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낌상 바닷가가 인접한 숲길에는, 더 많은 음이온이 있을 것 같아 막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바다가 던지는 드넓은 소리와 차가 굴리는 좁은 소리 사이에서 밤낮으로 걸을 수 있는 부산 해운대구 문탠로드, 양쪽 소리를 잠재우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숲이 혹 신분 세탁을 해주지 않을까? 외면상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도 내면을 채우는 마음만은 산소 가득 건강하게!
[김서정 작가 소개]
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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