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테랑의 시각 15]군의 정신교육, 이대로 괜찮지 않다.

이장호 승인 2023.06.05 10:17 | 최종 수정 2023.07.21 19:08 의견 0
사지=연합뉴스


[뉴스임팩트=이장호 전 정훈병과 중령]내가 군에서 정훈장교로 근무했다고 하면 공통적으로 ‘정신교육 시키는 장교’라고 반응한다.

사실이다. 나의 임무 중 가장 중요했던 것이 바로 정신교육이었다. 대상도 신병 병사에서 영관 장교에 이르기까지 군인이라면 누구나 교육 대상이었다. 정훈장교라는 의미도 정신교육을 위한 것이 상당히 포함된 용어다.

1990년 초 중위로 처음 정훈장교로서 보직을 받아 패기와 열정으로 예하 부대를 누비며 소위 말하는 장병 정신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그 당시는 ‘사상전에서 승리하자’라는 큰 틀에서 북한의 위협에 대한 실상과 자유민주주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 주제는 그 후로도 한동안 정신교육의 단골이었으며, 북한이 주적이라는 개념과 함께 북한에 대한 실상과 세습체계 등에 대해 상세한 교육 자료를 만들어 ‘이념교육지원단’이 각 부대를 순회하며 교육했던 시기였다.

6.25전쟁 이후 남북한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와 북한에 대항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국가의 정책으로 국민 대다수가 북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자연스럽게 북한은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낯선, 익숙하지 않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군대에서는 신병교육부터 북한에 대한 정신교육이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 신병들에게 교육을 하다 보니 가슴에 와 닿지 않았던 내용이었고 단지 시험을 보기 위해 열심히 외워야 했던 부담가는 교육이 된 것이다.

신병교육때부터 정신교육은 원하지 않는 교육을 들어야 하는 시간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국가를 수호하는 군인들이 코앞의 적인 북한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군대에 오니 갑자기 마주하게 된 북한이었고, 교육도 너무 재미없다보니 효과가 크지는 않았다.

더욱이 정신교육을 담당하는 교관들의 고충이 많았다. 매주 수요일 오전 4시간 동안 하는 정신교육은 정훈장교와 중대장과 같은 지휘관이 담당하다보니 정훈장교는 그래도 자기 분야지만, 지휘관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이고, 연구할 시간도 많지 않은 관계로 정신교육 하면 일단 회피하고 싶은 분야가 되어 버렸다. 매주 수요일이 되면 머리가 아프다고 할 정도였으니 가히 짐작이 된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 최근에는 국군방송TV에서 전문가에 의해 정신교육 내용을 강의해 주고 있어 부담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신교육이 과연 효과가 있는 교육인가?’에 초점을 두면 또 다른 문제가 나온다. 군에서 하는 정신교육은 매주 수요일 오전 3시간 동안 모든 병사들이 정신교육을 받는다. 국군방송 TV에서 제작한 강의 내용을 듣고, 토론 주제에 따라 교육에 참석한 병사들이 교관인 간부의 지도아래 토론을 한다. 교육 내용에 대한 토론 주제를 가지고 각자의 의견을 발표하는 시간이다.

그렇지만, 군대에서의 교육이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활발하고 창의적인 토론이나 주장이 될지는 아마 알 것이다. 군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이미 머리 속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교육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얼마 전 정훈장교로 근무하는 친구 아들을 만난 자리에서 아직도 내가 근무했던 시절에 했던 방식으로 정신교육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 그 정훈장교도 2년간 부대에서 정신교육을 하면서도 효과에 의문을 품었으며, 부대 간부들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하게 되어 있으니 별수 없이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정훈(政訓)이라는 말이 정치(政) 훈련(訓)의 약자에서 비롯되었다. 정치성이 강한 국민 교육의 일부를 담당했던 것이다. 사회적으로 문맹과 학력 부진에 대한 교육의 도장으로서 군대가 교육의 역할을 담당했다.

지난 2019년 정훈 병과 창설 70주년을 맞아 병과 명칭이 '공보정훈(公報正訓)'으로 바뀌었다.정훈의 한자 표기도 ‘政訓’에서 ‘正訓’으로 바꿔 '바른 훈련'을 강조한 취지로 풀이된다.

당시 국방부는 "정훈의 '정'자를 정치의 '政(정)'에서 바를 '正(정)'으로 바꿔 군의 정치적 중립을 유지한 가운데 장병 훈련과 정신전력 강화 기능을 강조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름을 바꿔 뭔가 새로운 국면이 될 것을 기대했지만, 다소 실망스러운 것은 그 내용이나 형식이 거의 그대로라는 점이다. 내 경험으로 봐도 군 정신교육은 이제 과감하게 탈바꿈해야 한다.

우선, 연간 36주 동안 매주 수요일 오전 시행하는 정신교육은 너무 많다. 반기마다 있는 3일간의 집중정신교육도 있어 그야말로 정신교육에 치여 죽을 지경이다. 내용도 거의 비슷하고 특별할 것도 없는데, 매주 효과도 없는 교육을 하고 있다. 연간 20번 정도면 적당하다.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이다.

내용도 북한이나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강의가 더 효과적이다. 군에 와서 오히려 사회 저명인사의 강의를 들었다는 것이 더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과거처럼 교육 수준이 낮은 병사가 아닌데 내용이 아직도 6.25 시대다.

교육 내용에 재한 토론도 지양했으면 한다. 토론하라고 하면 다들 입 닫고 눈치만 보고 있는데, 무슨 토론이 되겠는가 의문이다. 요즘 세대가 특히 남의 시선이나 평가에 민감한 점을 감안하면, 토론은 강요당하는 느낌을 줘 오히려 교육에 대한 저항과 반감을 가져온다고 한다.

군인이라고 군에 대한 내용만 교육받을 필요는 없다. 18개월 후 사회로 나가는 병사들이 군에서 군사훈련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육과 교양을 쌓은 기회가 되었다면 군 복무에 대한 보람과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군에 대해 부정적이고 부담되고 조롱받는 것부터 없애도 군에 대한 이미지가 한층 좋아질 것이다. 정신교육 개편이 그 중의 한다.

의사소통은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처럼, 병사들이 싫어하고 간부들이 부담되는 정신교육은 하루 빨리 바뀌어야 군이 더욱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0(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해 과감하게 결단하는 군을 기대한다.

[글쓴이 이장호 중령]

1990년 육군사관학교 46기로 졸업해 정훈장교로 30여 년간 복무했다. 고려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신문방송학과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영어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음. 앙골라UN평화유지군 파병 등 3회의 해외 파병과 미국 공보학교 졸업, 20여 회의 외국 업무 경험 등 군 생활을 통해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쌓아 군 업무에 활용해 나름 병과 발전에 기여했다고 자부하며 전역 후 군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애정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현재는 기자, 요양보호사 등의 일을 하며 우리 사회의 생활상에 대해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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