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울의 독일편지 12편] 안락사에 대한 철학적 논의(2)

지금 고민되어야 할 것들

김서울 승인 2022.09.06 05:53 의견 0
스위스의 한병원에서 안락사를 결정한 암환자가 가족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있다=KBS교양 유튜브 영상캡쳐


[뉴스임팩트=김서울 재독 칼럼니스트] 평등권은 어떤 사람이든 존엄하고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권리로 이 경우에 해석될 수 있다.

그 예로 최근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를 한 한국인들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를 하려면 얼마가 들까? 외국인도 안락사를 해주는 단체에 가입을 하고, 회비를 내고, 마침내 결심하고 나서 처치비로 내는 돈을 모두 합하면 천만원은 우습게 넘어간다.

결국 현재 한국인 혹은 안락사가 불법인 국가의 국민들에게 ‘안락’한 죽음은 그럴만한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인 것이다.

임종 과정에 있지 않은, 혹은 그런 물질/시간적 여유가 없는 누군가가 지속되는 고통을 끝내려면 자살 외에는 방법이 없다. 총기도 민간인은 구입하거나 다룰 수 없고, 독극물도 접하기 어려운 한국 특성상 목을 매거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등의 고통스러운 방법 말고는 이마저도 딱히 뾰족한 수가 없다.

이미 삶을 끝낼 결심을 할만큼 괴로움을 겪어왔고 그 순간에도 겪고 있는 그들에게 이런 실정은 가혹하다는 말 밖에 달리 표현될 수가 없는 것이다.

또 건강은, 단지 더 오래 숨이 붙어있을 수 있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정신적 모두의 측면에서 좋은 상태(Wealthy)가 유지됨을 의미하기 때문에 안락사 문제는 어쩌면 건강권 측면에서도 논의해 볼 수 있다. 불건강을 끝내는 것이 삶보다도 죽음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는 건강권에 대한 요청일 수 있다.

또, 이 고통을 스스로 외롭게 목숨을 끊거나 자연스레 숨이 다 할 때 까지 견디어 끝낼 수 밖에는 없는 상태 또는 사실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만으로도 당사자는 얼마간의 건강과 행복, 평등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또 애초에 생명이란 것이 어떻게 얻어지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가 태어나는데 그의 의지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우리는 우리가 원하여서, 원하는 부모와 환경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나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얻어진 것이 나의 의무가 되어야 하는가?

물질/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상태가 아니라면, 국가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방법을 택하여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채 그것을 포기해야만 하는가? 그것보다 더한 부자유가 어디에 있는가? 안락사가 불법인 것은 이런 이유로 보자면 내게는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이고 비논리이다.

하여 문제라고 하면, 내가 보기엔 이런 원론적인 부분에 있지는 않다. 문제는 좀 더 실질적인 데에 있다. 실제로 안락사 합법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드는 근거란 생명 경시 풍조의 범람, 안락사를 빙자한 살인 등이다.

내가 찬성하는 형태의 안락사란, 첫째로 누구든 요청할 수 있고 (임종 상태, 불치병 환자가 아니더라도), 둘째로 각자가 죽음을 원하게 된 원인만큼의 적절한 숙려 기간과 심리 상담/필요하다면 치료가 주어지고, 마지막으로 안락사 대상자의 죽음이 존엄하게 취급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 누구든 좀 더 쉽게 죽음을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적절한‘, ‚존엄한’등의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였지만 과연 무엇이 적절하고 존엄한 것일까? 죽은 자는 말이 없는데, 안락사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자가 그 배후에 있거나, 심지어는 위에서 언급했듯 안락사를 가장한 살인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원론적으로는 국가가 국민에게 평등하고, 고통 없이, 그리고 존엄하게 죽음을 선택하고 죽을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원론적으로‘ 생각할 때 가정했던 이상적인 상황과 현실은 무척 다를 수 있다.

과연 어떤 선택이, 단순히 소극적/적극적 안락사 중 어떤 것을 합법으로, 또는 불법으로 정할 지와 같은 것 말고도, 모든 세부 사항에 대한 섬세한 조정이 더 큰 공리를 가져다 줄까? 사태가 본질적으로 어떤 것인지 원론적 사고를 해 보는 것도 물론 무시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논의 역시 중요하다. 무엇보다, 이런 실제적으로 중요하고 분명 지금도 어떤 사람들에겐 시급하기 까지 할 문제를 다룰 때 에는 특히, 원론적 논의 차원에서는 합의와 결론이라는 것이 나기가 어렵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원론적인 그리고 경험적 논의 모두를 고루 활발하게 이끌어 가는 것이다. 경험적 차원에서는 이미 제도를 실행해온 네덜란드나 스위스, 벨기에 등에서의 사례가 물론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기사는 성균관대학교 임종식의 ,생명권과 자의적인 안락사 (The Right to Life and Voluntary Euthanasia)’ (2006) 을 참고해 쓰여졌습니다.

*1) 물론 독일에서는 사형도 서동독 통일 이후로는 폐지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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