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의 국제논단] ‘뼈속까지 반중 전사’ 펠로시의 깡다구 정치

최진우 승인 2022.08.03 11:08 의견 0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했다.=SBS뉴스 유튜브 영상캡쳐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위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결국 대만을 방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려이 완곡하게 말렸고, 중국이 “불장난 하면 타죽을 것”이라고 최고수위의 협박을 했지만 펠로시의 대만행을 막지는 못했다.

펠로시 의장은 대만 도착과 함께 내놓은 첫 성명에서 “중국은 매일 대만 정부기관에 수십 건의 사이버 공격을 하고 있고, 대만을 경제적으로 압박하고 글로벌 기업에 대만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압력을 가하고 대만과 협력하는 국가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을 강화하면서 혹독한 인권 기록과 법치에 대한 무시는 지속되고 있다”고 시진핑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펠로시의 성명은 가히 핵폭탄급의 직설적 화법이다. 중국정부가 “불장난하면 타죽는다”고 엄포를 놓은데 대해 전혀 기죽지 않고 할 말은 한다는 식의 맞불성격으로 해석된다.

펠로시의 대만행에 중국정부가 발작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가 미국 내 권력서열 3위인 최고위급 인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유고시 부통령 다음으로 하원의장이 권력을 승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원의장이 갖는 상징성은 매우 크다.

지금까지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한 것은 빌 클린턴 정부 때인 1997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 이후 25년만에 첫 방문이다. 당시 깅그리치는 공화당 소속이었지만 펠로시는 집권당인 민주당 소속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펠로시는 1940년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의 이탈리아계 미국인 가정에서 6남 1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부친은 연방 하원의원과 볼티모어 시장을 지냈고 오빠 역시 볼티모어 시장을 지낸 전형적인 정치가 집안 출신이다.

그는 1961년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식에 직접 참석해 연설을 들을 정도로 대학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졸업후 연방하원의원 사무실에서 정치경력을 쌓은 펠로시는 1987년 캘리포니아 5구 선거에 뛰어들어 당선되며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내리 35년간 하원의원에 당선(18선)된 펠로시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하원의장을 역임했고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를 거쳐 2019년부터 다시 하원의장에 오르는 승부사적인 기질을 여실히 보여줬다.

펠로시의 전사 기질을 보여주는 일화는 한 두 개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위해 하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악수를 청한 펠로시의 손을 트럼프가 매몰차게 외면하자 펠로시는 트럼프 연설도중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그의 연설문을 찢어버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는 종종 인권문제를 부각시키며 중국정부의 심기를 긁었는데, 중국과의 악연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펠로시는 1989년 중국 베이징 텐안먼(천안문) 광장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를 중국정부가 탱크를 동원해 강경진압하는 모습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년뒤인 1991년 중국을 방문한 펠로시는 다른 의원 두 명과 기습적으로 텐안먼광장을 찾아 중국어와 영어로 ‘중국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펼쳐 보이는 돌발행위를 벌였다.

펠로시는 2007~2008년엔 중국정부가 극도로 경계하는 티베트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만났고, 2017년 홍콩에서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을 때는 민주화 운동을 적극 지지했다.펠로시는 중국정부의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위구르족 인권탄압을 문제 삼아 지난 2월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땐 미국 정부대표단의 외교 보이콧을 요구해 이를 관철시키기도 했다.

펠로시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97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의 참혹한 실상을 눈으로 직접 보고 북한을 강하게 불신하게 됐고, 김대중 정부 고위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북한에 대한 불신을 여과없이 드러내 여당인사들을 당혹케 하기도 했다.

2007년에는 미국 하원에 한국 위안부 결의안을 제출했고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를 만난 자리에서도 수차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해 강단있는 결기를 보여주었다.

펠로시의 이번 대만 방문은 평생을 인권을 위해 살아온 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이정표가 될 것이란 견해도 있다. 펠로시는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의장직을 그만둘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시각을 돌려 시진핑의 입장을 보자. 시진핑은 오는 11월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통해 3연임을 확정짓는다. 사실상 대관식을 앞두고 있는 시진핑으로선 대만 통일 문제는 대관식의 정점을 찍는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대회 전에 물리적으로 대만을 통일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력통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그만큼 대만통일은 하나의 중국을 앞세운 시진핑에게는 역사적 책무와도 같은 숭고한 대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내 권력서열 3위인 하원의장이, 그것도 중국과는 질긴 악연을 갖고 있는 펠로시가 대만을 방문해 동맹운운하고, 중국의 인권을 운운하는 것은 중국의 뺨을 때리고, 시진핑의 코털을 뽑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35년간 일관된 정치철학을 견지해온 펠로시의 결기 있는 깡다구 정치적 행보에 찬사를 보내는 심정이지만, 한편으로는 펠로시의 방문이 중국의 대만 침공 시나리오를 현실로 만드는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없는 것이 아니다.

시진핑은 이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서방세계가 러시아 제재를 둘러싸고 허둥대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다. 마찬가지로 미국 등 서방세계가 함부로 중국을 어쩌지 못할 것이란 확신이 든다면 당대회를 앞두고 대만 침공의 버튼을 누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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