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울의 독일편지, 머나먼 땅 또 다른 시간(1편)

Der Brief von Deutschland: Studium und Leben im Ausland

김서울 승인 2022.03.30 13:49 | 최종 수정 2022.03.30 14:01 의견 0
독일 뮌헨=김서울


[뉴스임팩트=김서울 칼럼니스트]필자는 현재 철학을 공부하고자 독일 뮌헨에 있다. 하고자 하는 일, 바라는 세상을 찾고 이루어 나가고자 외국에서의 삶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은 줄로 안다. 독일에서의 공부, 생활, 그리고 느껴진 것들을 잔잔히 들려주는 이 코너를 통해 나는 나와 같은 처지인 이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그렇지 않거나 못하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잠깐의 환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세계가 대지에서 밀려나옴을, 또한 대지로 축적되어감을 이야기했다. 다른 땅, 다른 환경, 다른 문화와 사람들, 그러나 여전히 ‘사람의 세계’ 인 이곳에서, 나는 새롭고도 익숙한 말들을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Der erste Brief - 첫 편지 : 머나먼 땅, 또 다른 시간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마침내 독일로 옮겨온 것은 3월의 시작이었다. 뮌헨으로 가는 직항 비행 편은 없었고, 때문에 나는 꼬박 이틀 정도를 기내와 공항 건물 안에서 보내야만 했다. 인천 국제 공항에서 경유지 싱가폴로 가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 [서울]이라는 제목을 가진 노래를 들었다. 복잡한 마음이었다.

나는 내가 나고 자란 곳을 떠나려 하고, 거기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고자 하는 공부의 고향, 서양 철학이 나고 자란 대륙의 한복판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그 첫째였고, 한국의 정서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그닥 마음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 또 다른 이유였다.

떠난 그 곳의 모든 것이 내 마음에 쏙 들고, 내 처지를 온전히 더 낫게 하리라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나는 자유롭고 싶었고, 그에 따른 무엇이든 스스로 감당해내고 싶었다. 나는 나의 고향을 선택할 수 없고, 내가 태어난 때와 본래의 생김새를 결정할 수 없다. 그것들은 완전히 내 권한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허나 나는 내가 살아갈 ‘고장’ 을 찾아 헤매고 선택할 수 있다. 아마 별다른 변고가 없다면 계속될 나의 삶 속에서, 그건 단 하나가 아닐 수도 있고,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지역이나 장소가 아닌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징적인 형태를 가질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나는 내 속에서 들려오는 의문과 욕구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또, 충분히 많은 것을 경험한 후에는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혼자이고, 외로움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여기게 되는 때가 종종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별로 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독일 생활을 시작한지 어연 한달 즈음 되어가는 지금, 그 생각에 큰 변화는 없다. 한국에서 지금도 나와는 다른 시간, 다른 풍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가족이나 친구들이 때때로 많이 보고 싶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들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독일 뮌헨 주택가의 모습= 김서울


낯선 곳에 와서 살아남는 일은, 내게 익숙한 곳에서 계속 살아갈 때와는 다른 마음과 시선을 갖게 했다. 이를테면, 나는 인간이 적응력을 가진 동물이라는 것을 이곳에 와서 매번 절실히 확인하게 된다. 첫 시작은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다. 선불 요금으로 산 유심의 데이터는 넉넉치 않고, 거리들은 늘 ‘길치’ 로 불리던 나에게는 너무도 낯설었으며, 누군가에게 무엇을 물어보기라도 하면 늘 Wie bitte?(다시 한 번 말해 줄래요?)가 되돌아왔다.(긴장한 탓에 발음은 뭉그러지고, 마스크 탓에 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기껏 대답을 들으면 도리어 내 쪽에서 Wie bitte? Ich verstand nicht genau. (다시 한 번 말해 주실래요? 이해를 잘 못했어요.)를 자동 응답기처럼 외거나, 반절은 이해하고 반절은 이해하지 못한 채 차마 다시 물어볼 수 없어 알아들은 척 Danke schön!(고마워요!)을 거듭해야 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그것들이 무슨 대수로운 과정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워낙 내향적인 성격인 나에게는 매 순간이 새로운 다짐의 순간이었다. 그 때 나는 마치 어딘가로 싸우러 나가는 사람인양 스스로를 가다듬고, 정신을 차리려고 애써야만 했다.

한데 1달이 조금 덜 된 지금, 나는 아직도 엉성하지만 조금 더 뻔뻔해졌다. 스스로 익숙해진 것도 있지만, 어디든 뮌헨의 사람들은 모두 친절 했기 때문도(여태까지는) 있다. 아주 심려되지는 않았으나, 은근히 내내 걱정했던 인종 차별이나, 어리버리한 동양인에게 주어지는 따가운 시선 같은 것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다. 내가 난처해하고 있을 때,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이 주었던 도움과 친절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여기서 혼자 죽는다’ 는 식의 생각으로 잔뜩 굳어있던 나를 아주 조금 풀어지게 해주었다.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건물로 들어가는 아무를 붙들었을 때, 직접 분리수거장까지 데려다 준 학생. 레기오날 반 (regional Bahn)에서 열차의 방향이 알맞은 지를 물었을 때, 잘 모르겠다며 농담을 던지고는 굳이 되물어가며 내게 답해준 할머니. 내가 그 대상이 아니더라도 그런 친절은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보호자의 사정 탓에 어쩔 수 없이 홀로 열차에 오른 휠체어의 여인에게 생전 남인 기차 안의 사람들이 보인 태도는 특히 놀라웠다.

그들은 여자가 목적지에 닿을 때 까지 즐거이 말을 붙였고, 허리를 숙이지 못하는 그가 쓰다듬어 볼 수 있도록 강아지를 무릎 위에 올려주었으며, 내릴 때가 되자 휠체어를 밖으로 밀어주었다. 도움을 주기 전엔 정중히 “Darf ich mal Ihnen helfen?”(도와줘도 될까요?)를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 한가지 놀라웠던 것이라면, 여기선 아는 사이가 아니어도 마주치면 서로 인사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일종의 사회적 관습으로, 상대방이 인사를 먼저 건네었을 때 그냥 지나치는 것(ohne Begrüß vorbeizugehen)은 무례로 여겨진다. 물론 지하철을 함께 타거나 마트에서, 길거리를 가다 마주친 모두와 인사를 나눠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그럴 것 같은’ 분위기가 되면 어김없이 인사가 건네져온다.

처음엔 다소, 아직도 조금은 어색하지만 이제 가끔은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되돌려 받지 못하는 일은 아직 없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경험이지만 내게는 퍽 괜찮게 느껴졌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저작권자 ⓒ 뉴스임팩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