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안 물들메나무 학명에 일본 식물학자 나카이가 있다@김서정작가
[뉴스임팩트=김서정작가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시작해 마로니에공원, 방통대, 이화장, 낙산 정상, 가톨릭대 성신교정, 성균관대 명륜당까지 나무를 거점 삼아 걷는 종로나무기행 답사를 마치고 글을 쓰기 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0 : 서울편 2>를 또다시 읽어본다. 답사기는 어떻게 쓰는 건지 되새겨보고 싶어서다.
거기에 나무는 어떤 모습으로 서술되어 있는지 궁금해서다. 결론은 열심히 다녀야 하고 관련 자료를 찾을 때까지 찾아야 하고 그걸 재밌게 녹여낼 때까지 연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성복 시인이 말한 “나보다 잘 쓸 수 없고 나보다 못 쓸 수 없다’는 진리를 결코 잊지 말자는 다짐이다. 모든 나무들의 아우라가 다르듯이.
하지만 욕심이 나기도 한다. 일타 강사 이지영이 말한 “어떤 사람이 돈을 많이 벌고 있다면 그 사람이 착한지 이타적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욕심을 내서 했는데 그게 누군가에게 좋은 것으로 전환했다는 거예요”라는 대목 때문이다. 즉 도시의 나무들을 문화유산을 보는 것처럼 애정을 갖고 볼 수 있게끔 하는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는 것인데, 그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0 : 서울편 2>에 나오는 “서울은 최고와 최하가 공존하는 도시이고 그만큼 모순과 격차가 많은 도시이다.
이것을 하나로 묶어 동질감을 갖게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문화유산이다. 서울 시내엔 조선왕조의 5대 궁궐이 있다. 이는 누구의 것도 아닌 서울 사람의 것이고 대한민국 국민의 것이며 나아가서 외국인 관광객들 모두가 즐기는 세계유산이다”라는 선언에 ‘나무’를 집어넣는 모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적으로 문화유산과 더불어 더 큰 동질감을 갖게 할 수 있는 건 우리는 나무 덕분에 살아갈 수 있다는 과학인데, 글쎄다, 그 아우라를 드리울 답사기는 먼 듯하다. 그래서 그냥 나처럼 쓰기로 한다. 작가에서 숲해설가가 된 그 느낌 그대로.
오전 9시 30분, 혜화역 3번 출구 밖은 젖어 있다. 그래도 당장은 내리지 않는 비에 감사하며 동행자들을 기다리는데, 바로 가늘게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서둘러 서울대병원 후문을 통과해 들어가다가 스틱을 하늘로 가리키며 빠르게 말한다. “가죽나무예요. 잘 찾아보면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어요.” 그러고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구 경성제국대학교 의학부 본관이었고, 지금은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 행정관으로 사용되는 건물 뜨락에 있는 나무들을 보기 위해서다.
먼저 마주하는 나무는 물들메나무다. 안내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물푸레나무와 들메나무의 잡종으로 생각되며 지리산 반야봉에서 처음 발견되어 '지리들메나무'라고도 한다. 잎은 깃꼴모양이며 작은잎은 주로 7장 정도이다. 과명 : 물푸레나무과, 학명: Fraxinus chiisanensis Nakai, 개화 : 5월, 결실 : 9-10월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이제 갓 나무를 접하는 분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물푸레나무를 본 적도 없고, 들메나무도 본 적이 없다면, ‘물들메나무’는 외계어에 그치지 않을까? 그래서 20미터 정도 되는 나무를 함께 본 다음 안내판 문장을 풀어가기 전 이렇게 말해 본다.
“서울대에 왔으니 서울대 목표를 세운 수험생들처럼 열심히 공부를 해볼까요?”
우산을 쓰고 있는 분들도 계시고, 모자를 눌러 쓴 분들도 계셔서 표정이 잘 보이지 않지만 안내판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본다.
“종소명 chiisanensis은 지리산을 뜻하고, 명명자 Nakai는 경성제국대학 식물학 교수를 말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우리의 명산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되었다는 우리 나무 명명자가 나카이라는 일본 사람이라니요?”
생각은 오래하지 않아도 된다.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일이니. 지금 통용되는 근대 학문을 일본이 먼저 수입했고, 이를 한반도에도 적용했으니. 그래도 기분은 썩 좋지 않다. 치욕의 역사를 나무를 통해 다시 보아야 하다니. 그것도 고풍스럽고도 단단하게 보이는 오래된 건물 앞에서 마주해야 하다니. 하지만 나무가 무슨 죄가 있으랴. 나무는 우리를 있게 한 진짜 조상이라는 걸 언급하며 <한국의 나무>에 나오는 내용으로 마무리한다.
“예전에는 물들메나무를 들메나무와 물푸레나무의 자연교잡종으로 추정했지만, 관련 연구 결과에 따라 물들메나무를 한반도 중남부지방에 국지적으로 분포하는 독립된 종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물들메나무는 우리 한반도의 고유종이라는 건데 영 개운하지가 않다. 그건 이어 보는 나무들, 그것도 우리와 친숙한 느릅나무와 수수꽃다리에도 나카이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방통대 안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인 '향나무'@김서정작가
이름이 낯설지 않은 멋진 측백나무에는 ‘Thuja orientals L’이란 학명이 표기되어 있는데, ‘orientals’는 동양을 말하고, ‘L’은 학명이라는 이명법을 확립시킨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다.
서식지 개념과 무관하게 동양의 나무를 서양인이 발견했다는 것이다. 한 번 정하면 절대 바꿀 수 없다는 학명의 세계, 그걸 들여다보면 볼수록 비전공자는 머리만 지끈거린다. 그래서 암기 공부는 늘 어렵고 그에 따른 구별은 사라지지 않나 보다. 누구는 라틴어가 많은 숱한 학명들을 잘 외우고, 누구는 잘 외우지 못하기에.
그래도 위안을 갖는다. <나무들의 비밀스러운 생활>을 보면, “나는 백악기 나무, 로마 외인부대, 콩키스타도르(스페인 정복자. 특히 15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아메리카 대륙에 침입한 스페인인들을 이르는 말)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에서 옮겨온 토마토 새싹과 같은 입자를 지니고 있다.
모든 것은 변형된 것이지 탄생한 게 아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진정한 게 없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넓은 식견으로 보면 분류와 분별은 직관으로 얻는 편안한 삶을 방해할 뿐이다. 눈앞의 나무에 붙은 지식을 몰라도 나무는 영원한 생명성으로 힘을 주는 우리보다 우선인 생물이기에.
마지막 답사지인 성균관대 일대를 일컬었다는 숭교방 동쪽 동숭동 나무를 보기 전 서울대병원을 간 건 정원이라면 이 정도 키 큰 나무들이 자라주어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데, 슬프게도 학명이 들어간 안내판 때문에 서울대학교 전신은 경성제국대학교라는 식민지 역사를 안아야 한다. 그래서 기분 전환을 할겸 계단을 올라 조선시대 정원이었다는 함춘원에서 경모궁지로 변모한 곳을 지난다.
듬성듬성 낮게 풀들만 솟은 곳에 외롭게 햇빛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함춘문 그림자에 정조 눈물 한 방울 던지고 마로니에공원으로 향하던 중 하얗게 핀 6월의 개오동나무 꽃으로 안내하니 작은 탄성이 빗줄기를 뚫고 나온다. 그러고는 다시 후문을 드리운 듯한 가죽나무 아래에 떨어져 있는 날개 달린 가죽나무 씨를 주워 보여주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거기서 참죽나무와 가죽나무가 만들어낸 헷갈리는 스토리는 멈추고 날아서라도 널리 번식을 하겠다는 생명 활동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나무를 본다는 건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경이로움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 그대로의 자연>에 나오는 “자연계에 관한 한, 경외감과 경이로움과 사랑이 경제학보다 우위에 설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어느 정도 강한 어조로 답을 할 수 있게 된다. 경제성장이 주는 행복감보다는 자연을 보고 느끼는 데서 오는 행복감이 더 크다고. 그렇게 되면 서울대병원을 나와 마로니에공원으로 가는 횡단보도에서 길 건너 키 큰 가죽나무가 보이게 된다. 가까이 다가가면 씨가 안 보이는데 이는 은행나무처럼 가죽나무도 암수딴그루라는 걸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다양한 자연을 알아가는 기쁨을 갖고 마로니에공원을 돌아보면 마로니에는 가시 열매를 맺는 프랑스 칠엽수이고, 가시가 없는 열매를 맺는 칠엽수는 일본 칠엽수인데, 오랫동안 마로니에공원의 칠엽수는 일본 칠엽수였다는 팩트에 막 놀라지 않는다. 프랑스 칠엽수가 진화한 곳은 열매를 노리는 다른 생명들이 많아 가시를 만들었을 것이고, 일본 칠엽수는 그와 다른 환경에 적응했다는 걸 추론해내면 되기에. 그래도 나무 공부를 하다 보면 같으면서도 약간 다른 모습이 까다롭고 신비로우면서도 궁금증으로 이어지기에 식민지 치하에서 한 게 없는 손이 부끄러워 늘 뒷짐지고 사진을 찍었다는 김상옥 의사의 상 옆으로 가 가시가 솟은 마로니에를 만난다. 직접 보는 것이 최고이기에.
이제 기록 없는 나무가 아니라 공식 지정된 나무를 만나러 간다. 먼저 방통대 내 구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 청사 앞에 있는 200년 수령의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인 느티나무를 보고, 모퉁이를 돌아 1907년(고종 44년) 기념식수라는 향나무도 만난다. 둥글게 둘러처진 돌담 안에 아늑하면서도 넓은 키로 솟은 향나무를 보고 있으면, 분재가 주는 인공미에 자연미가 연결되며 심재 수술을 한 자국들이 순환의 생명성을 뿜어내고 있는 것 같다.
방통대를 관통하며 중국 원산의 개오동나무가 아니라 우리의 오동나무를 보는데, 한 답사객이 “오늘은 국립대만 다니네요”라는 말에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가 주는 불편함을 가볍게 날린다. 곧 방통대를 나가 낙산 정상까지 가파른 오르막길을 가야 하기에 힘을 주는 멘트를 날려 본다.
“마지막으로 조선시대의 국립대인 성균관에 가는데요, 거기서 벽오동나무도 만날 수 있습니다.” 개오동나무, 오동나무, 벽오동나무 여기에 하나 더 붙이면 꽃개오동도 있지만, 오늘 가는 길에 꽃개오동은 본 적이 없다는 말도 덧붙이고는 수리를 위해 문이 굳게 닫힌 이화장을 지나 잘살기기념관 담벼락에 붙은 여러 역사를 살피고 나와 오디가 한가득 떨어진 뽕나무까지 천천히 오른다. 숨을 고른 뒤 뽕나무 앞에 있는 508슈퍼에서 ‘오디 주스’를 판다는 안내를 해 본다. 이 나무 오디냐고 질문하는데, 거기까지는 모른다고 하자 모두 살짝 웃고는 갈 길을 가자고 한다.
명륜당의 나무들(느티나무, 은행나무, 회화나무)@김서정작가
한양도성 암문을 지나 낙산 정상으로 가는 동안 한양도성 축조 과정 그리고 창신동 역사를 함께 들여다보고는 방향을 트는데 한 답사객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제가 매일 이곳을 산책하는데요, 저 나무 이름이 너무 궁금해요. 핸드폰으로 찍을 때마다 이름이 다르게 나오는데요, 아무리 봐도 이름을 모르겠어요.”
난감하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들이 많으니. 집단 지성의 힘을 빌린다. 그 자리에 모인 답사객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어 식물 덕후에게 보내기도 한다. 그래도 답을 얻지 못한다. 결론은 재배종이나 교잡종인 것 같고, 외래어를 가지고 있을 것 같고 등등.
이후 인솔자는 주눅이 든다. 사전 답사를 통해 나무 이름을 동정해 두었는데 홀로 한 동정이 맞는지 틀린지 자신감이 하락한다. 꽃이 피어 있으면 동정이 험난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으면 완전 고수가 아닌 이상 늘 허덕인다. 가뜩이나 안면인식장애라고 자가진단해 놓은 인솔자는 현장에서 도감을 펴며 기를 쓰지만 엇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때마다 그러려니 하며 그저 식물에 감사하며 동정을 마친다.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고.피나무, 야광나무, 때죽나무, 쪽동백나무, 아그배나무 등을 본 낙산 정상을 내려와 가톨릭대 성신교정 담에서 방향을 틀어 대학로로 가려는데 또 질문이 나온다. “저 안에 희끗희끗한 나무들은 뭐예요.” 사전 답사 때 백합나무로 보이기는 했는데 멀어서 확인이 어렵다고 실토하고는 전세 역전을 위해 다음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문다. 한양도성 위 네모진 모퉁이에 아주 키가 큰 은사시나무가 있었는데, 없어진 것 같다는 슬픈 이야기를.
일행은 성균관에 가기 전 오래된 거리의 회화나무, 주인장 말에 의하면 100년 되었다는 주택 안 음나무, 동숭아트센터 앞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인 느티나무를 만난다. 그리고 종착지인 명륜당으로 들어가기 전 쓰레기로 둘러싸인 회화나무에 안쓰러운 시선을 던지고는 그 아픔을 거대한 은행나무에서 해소해 나간다. 대성전은 공사 중이라 그곳 은행나무는 들어가 못 보지만 명륜당 두 그루 은행나무에 모든 기운을 쏟아부어 힘을 얻어낸다. 그리고는 안내판을 본다.
“서울 문묘 은행나무(Ginkgo Tree of Munmyo ConfucianShrine, Seoul) / 학명: Ginko biloba / 지정번호: 천연기념물 - 이 은행나무는 조선 중종(中宗) 때 동지성균관사 윤탁(尹) 선생이 성균관 명륜당 뜰에 심었다. 그는 '뿌리가 깊으면 가지와 잎이 반드시 무성하게 된다'라 하였으며 나무를 문행(文杏)이라고 불렀다. 은행나무는 유교의 상징적인 나무로,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옛말에서 비롯되었으며 교육 기관 등에는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명륜당 은행나무에서 반드시 봐야 할 비밀스러운 유주 이야기도 하고, 대략 3억년 전 지구에 등장했다는 어마어마한 이야기도 하고, 공자가 앉은 나무가 살구나무인지 은행나무인지 이야기하면서도 계속 눈에 가는 건 또다시 눈에 띈 학명 ‘Ginkgo’다. 2009년 10월 9일자 경향신문 김학순 선임기자가 쓴 글을 보면, “은행나무가 ‘징코 빌로바’(Ginkgo biloba)라는 학명을 얻게 된 데는 어이없는 이유가 있다. 스웨덴 식물학자 카를 폰 린네는 은행나무에 ‘Ginkyo’라는 학명을 지어 주었다. ‘은행’(銀杏)의 일본식 발음이다. 출판사 식자공이 잘못해 y를 g로 심었고 교정과정에서도 발견되지 않아 ‘Ginkgo’로 정착돼 버렸다”라는 대목이 있다. 기나긴 진화에서 살아남은 위대한 생명력을 가진 나무에 중국, 일본, 스웨덴, 그리고 인간의 실수가 개입된다.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고 하는데 인간은 세상과 중간지대에 있는 언어 때문에 늘 골머리를 앓는다. 그게 인간의 삶일까.
답사 당시 못한 이야기가 있어 옮겨 본다. 역시 자료는 수많은 책읽기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는 반성을 하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0 : 서울편 2>에 나오는 “동쪽의 나무는 한국전쟁 때 포탄을 맞아 가지가 일곱으로 갈라졌지만 이제는 상처가 회복되었다. 두 은행나무 아래로는 싹이 돋아 한 아름씩이나 되는 7개의 ‘싹 나무’가 주위를 호위하듯이 감싸고 있어 외롭지 않아 보인다”라는 것이다. 이걸 기억해 현장의 은행나무를 보았다면, 골 아픈 학명보다 더 큰 감동을 얻었을 텐데, 미안하기만 하다.
답사가 3시간이 되어간다. 마무리를 해야 한다. 1천원을 꺼내 명륜당을 보여준다. 가벼운 미소가 나온다. 그리고는 명륜당 뒤로 가 벽오동나무 녹색 줄기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도시 곳곳 그 어디에도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나무들의 종류가 숱하다고. 그걸 알면 더 기쁘다고. 삶에 활력이 생긴다고. 그 나무가 없어지면 무지 슬플 거라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남도답사 일번지>를 보면 “우리나라는 전국토가 박물관이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를 “우리나라는 전국토가 숲이다”라고 표절해 본다. 전국토의 70퍼센트는 산이 아니라 전국토가 숲이라면 도시는 우리가 만든 문명이지만 도시 따로 숲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별개가 아니라 모두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도시 나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자꾸만 더워지는 세상, 변화가 오지 않을까. 그 길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길 바라며 부지런히 도시 나무를 보며 걷고 또 걸어야겠지. 그러면 나무들이 주는 영원한 생명성이 오겠지. 나무는 우리들의 조상이기에.
[김서정 작가 소개]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