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표지.@출처=연합뉴스

[뉴스임팩트=이상우기자] 월가의 저승사자로 명성을 떨친 프릿 바라라 전 미국 뉴욕남부지검장이 2019년 회고록을 한 권 썼습니다. 제목은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Doing Justice)'입니다.

책엔 다양한 경험담과 수사 노하우가 담겨 있지만 본질은 하납니다. 사실에서 주장을 끌어내야지 거꾸로 해선 안 된다는 거죠. 수사기관이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사실관계를 짜맞추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진리에 가까운 통찰이지만 현실에선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나올 때까지 판다'는 확증편향적 수사에 익숙한 한국 검찰에겐 더 그렇고요.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서 검찰 외에도 확증편향에 빠진 사정기관이 나타났습니다. 4대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LTV) 정보 교환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얘깁니다. 지난주엔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금주엔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이 현장조사를 받았죠. 현장조사는 공정위 조사관이 직접 사업장에 들어가 자료를 수집하고 직원들로부터 진술을 받는 조사를 뜻합니다.

LTV 정보 교환 사건은 공정위가 2023년 이미 현장조사를 했고 지난해 11월엔 두 차례 전원회의까지 연 사안입니다. 비록 전원회의에서 재조사 결정이 내려졌다지만 무엇을 확인하겠다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가며 또다시 현장조사를 하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전원회의 때 각종 서류는 물론 은행 직원들 카톡 대화 내용까지 제출됐는데 말이죠.

공정위로선 첫 정보 교환 담합 제재 타깃으로 4대 시중은행을 찍은 만큼 무리수를 두더라도 밀어붙여야 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다만 아무리 애쓴들 공정위가 염두에 둔 '시중은행들이 공모한 경쟁 제한적 카르텔'은 입증되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실체가 없을 테니까요.

애초에 4대 시중은행은 카르텔을 형성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자기들끼리 우량 대출자 유치를 위해 얼마나 피 말리는 경쟁을 하는데요. 언론도 툭하면 리딩뱅크를 들먹이며 시중은행 간 선두 다툼을 부추기죠.

이런 판에 카르텔이라니 참 뜬금없는 소리입니다. 시중은행들이 대출 건전성 검토에 참고하고자 타행 LTV 정보를 살핀 행위가 카르텔이라는데 도저히 납득이 안 갑니다. 경쟁사가 어찌 하나 들여다본 게 담합이면 대체 담합 아닌 건 뭡니까. LTV 정보 교환 과정에서 부당 이익을 취한 은행이나 사람이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것도 아니고요.

사정기관으로서 공정위가 위신을 세울 필요는 있습니다. 하지만 확증편향적 현장조사에 의존해 봤자 권위는 확립되지 않죠. 바라라 전 지검장이 밝힌 대로 사실에서 주장을 끌어내야만 비로소 공정위 조사에 대한 신뢰가 구축될 겁니다.

이제라도 공정위가 의욕이 앞선 나머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측면을 인정하고 LTV 정보 교환 사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봅니다. 불필요하게 억울한 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막는 일이야말로 범죄 조사보다 무거운 정의(Justice)이기 때문이죠. 공정위가 뒤늦게나마 올바른 결단을 내리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