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르포③] 자만심 깨준 중산공원 위유런 동상

역사 안다고 자부했지만 위유런 인물됨 몰라… 얕은 공부만 한 셈

이상우 승인 2024.09.21 01:00 의견 0

타이베이 신이구 중산문화공원 표지(사진 왼쪽)와 쑨원 동상.@뉴스임팩트

[뉴스임팩트=이상우기자] 쑥스러운 말이지만 아마추어 수준에선 역사를 제법 안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시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역사에 탐닉해 왔다. 하지만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 있는 중산문화공원에서 '역사를 안다'는 마음이 얼마나 얄팍한 자만심에 불과한지 깨달았다.

중산문화공원은 중국 본토와 대만의 국부 손문(쑨원)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중산(中山)은 쑨원의 호(號·본명 외 따로 지어 부르는 이름)다. 국부기념관, 호수, 잔디밭, 산책로, 쑨원 동상으로 이뤄져 있다. 타이베이 상업 중심지 신이구에 있어 오가기 쉽다. 가족 여행으로 타이베이를 방문한 김에 중산문화공원을 찾았다.

국부기념관은 리모델링 공사로 휴업 중이었다. 쑨원 동상으로 갔다. 쑨원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당신이 꿈꾼 근대 중국은 본토 중화인민공화국과 대만 중화민국 가운데 어디인가'라고 물었다. 민족, 민권, 민생을 중시한 쑨원이 공산당 일당 체제를 좋아할 것 같진 않았다. 중화민국도 풀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중화인민공화국보다는 쑨원의 지향점에 가까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산문화공원에 있는 위유런 동상.@뉴스임팩트

공원을 걷다가 쑨원이 아닌 다른 인물의 동상을 발견했다. 누군지 감이 아예 안 왔다. 장개석(장제스), 장경국(장징궈) 같은 중화민국 지도자는 물론 중화인민공화국의 모택동(마오쩌둥), 주은래(저우언라이), 등소평(덩샤오핑) 이름까지 머리를 스쳐 갔지만 해당 사항이 없었다.

역사를 안다면서 중산문화공원에 동상이 있을 만큼 중요한 이를 모른다는 게 부끄러웠다. 숙소로 돌아와 부리나케 인터넷 검색을 했다. 동상의 주인공은 중화민국 감찰원장을 지낸 우우임(위유런)이었다.

위유런은 쑨원과 함께 기려질 만한 위인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서태후를 암살하고 청나라 황실을 뒤엎는 근대화 혁명을 기획했다. 진보 언론 민립보(民立報)를 창간해 혁명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청년 마오쩌둥이 민립보에 실린 위유런의 글을 보고 혁명 의지를 다질 정도였다. 군사적 업적을 남기진 못 했지만 유능하고 청렴한 중화민국 관료였다. 서예는 당대 으뜸이었다.

왜 타이베이에 와서야 위유런을 알게 됐을까. 역사를 안다고 자신했지만 실제론 얕은 공부만 했던 셈이다. 역사가 이러니저러니 하면서 나서곤 했던 지난날이 낯뜨거웠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는 가르침이 괜한 소리가 아님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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