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전쟁범죄? 군사작전?” 이스라엘 무차별 삐삐 폭발작전 논란

이정희 승인 2024.09.20 10:16 의견 0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에서 폭발한 호출기 잔해@연합뉴스


[뉴스임팩트=이정희기자] 지난 17일(현지시간)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조직원을 대상으로 한 수 천개의 무선호출기(일명 삐삐) 대량 폭발사고가 이스라엘의 첩보작전 결과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 전쟁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정당한 군사작전의 하나로 볼 수 있다는 시각과, 무장군인뿐 아니라 전쟁과 상관없는 민간인까지 살상하는 무차별적인 폭발사고라는 점에서 전쟁범죄에 해당한다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 듣도보도 못한 삐삐 대량 폭발작전= 레바논 보건당국에 따르면 이번 폭발사고로 인해 레바논 전역에서 최소 12명이 숨지고 3000명 이상이 중경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사건으로 다친 피해자 중에는 헤즈볼라 조직원 외에 모즈타바 아마니 주레바논 이란 대사 등이 포함됐고, 어린아이 2명도 사망했다. 주변국 시리아에서도 최소 14명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 초기에는 삐삐 수천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놓고 많은 추측이 오갔지만, 레바논 안보 소식통은 헤즈볼라가 수입한 무선호출기 5000개에 이스라엘 대외 정보기관 모사드가 폭발물을 심었다고 주장했다.

헤즈볼라가 삐삐를 대량으로 수입한 것은 이스라엘의 첨단 도청 혹은 감청을 의식해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구시대 유물을 통신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헝가리로부터 들여온 것이다.

헤즈볼라는 휴대전화가 이스라엘의 첨단장비에 의해 해킹되어 표적공습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조직원들에게 무선호출기 사용을 장려해 왔다. 일부 외신은 헤즈볼라가 전투지역에서의 휴대전화 사용을 아예 금지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을 파악한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이를 역이용하기로 하고, 삐삐 제조업체를 찾아내 헤즈볼라에 수출되는 삐삐에 소형 폭탄을 심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이 이번 사건의 배후라고 전하면서 이스라엘 측이 헤즈볼라가 수입한 삐삐에 폭발물을 심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이 작업을 마친 삐삐는 폭발 직전 신호음을 내 사용자가 삐삐를 집어들어 살상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삽입됐다고 NYT는 전했다.

◇ 삐삐 제조업체와 유통과정 어떻게 뚫렸나= 워싱턴포스트(WP)지에 따르면 헤즈볼라가 수입한 삐삐의 공급사슬이 뚫려 제조·유통 과정에서 해당 기기들에 폭발물이 설치됐을 가능성이 높다. 해당 삐삐는 헝가리에서 제조되어 특정 유통경로를 통해 레바논에 유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AP 통신에 따르면 해당 삐삐에는 대만 업체 골드아폴로의 상표가 붙어있었지만, 골드아폴로는 사건 직후 즉각 성명을 내고 해당 기기들은 자사 상표 사용이 허용됐을 뿐 제조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 기반을 둔 업체가 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소행이 맞다면,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삐삐 제조공장을 찾아가 수 천대의 삐삐에 일일이 폭발물을 심는 대규모 작전을 실행에 옮겼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스라엘군, 레바논 남부 공습@연합뉴스


◇ 기상천외한 작전 선호하는 이스라엘, 한편에선 전쟁범죄 비난= 이스라엘이 전자장비에 폭발물을 심어 적을 살상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과거에도 폭발물을 심은 전화기 등을 암살 수단으로 쓴 사례가 많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계열 과격단체가 이스라엘 선수단 11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모사드는 프랑스 주재 PLO 대표 마흐무드 함샤리의 자택 전화기에 폭발물을 설치하여 함샤리를 살해한 전력이 있다.

또 1996년에는 하마스의 폭발물 전문가 야히아 아이야시가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가 폭발물을 심은 휴대전화를 쓰다가 사망한 사례도 있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특정 타킷을 겨냥한 과거 작전과 달리, 무려 5000개에 달하는 삐삐에 폭발물을 심어놓고 동시다발적으로 폭발물을 터뜨리는 작전을 펼쳐 결과적으로 수 천명의 사상자를 냈다는 점에서 국제법 위반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5000개의 삐삐를 동시에 터뜨리는 건 듣도보도 못한 공격 방식으로 분쟁과 관계없는 민간인까지도 해칠 수 있는 무차별적인 전쟁범죄라는 지적이다.

이번 공격의 유력한 배후로 거론되는 이스라엘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NCND를 고수하고 있어 정확한 동기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한편에선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와의 전면전을 위한 사전공작으로 삐삐에 폭발물을 심었다가 전면전 시작과 함께 폭발물을 터뜨릴 계획이었으나, 어떤 이유로 삐삐 폭발물이 발각될 위기에 몰리자 터뜨렸다는 뒷얘기가 미국 정부 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미국 악시오스는 익명의 미국 정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당초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무력화하기 위해 기습적으로 전면전을 개시하는 시점에 폭탄을 터뜨릴 계획이었다고 보도했다.

당국자들은 발각 위험을 우려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이 들키면 못 쓰게 될 장비를 당장 써버리자고 결단해 동시다발적 폭발작전이 단행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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