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이상우기자] 장중정(장제스 전 대만 총통 본명)은 대한민국으로 치면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을 합친 인물이다. 모택동(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과 공산당에 패퇴해 중국 본토에서 밀려난 장제스와 국민당은 친(親)서방,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중화민국을 대만에 세웠다. 눈부신 경제 성장도 이끌었다.
동시에 장제스는 대만 역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다. 1947년 국민당 정부의 폭정에 항의해 들고 일어난 대만 민중 2만여명이 목숨을 빼앗긴 2·28 사건, 독재 30여년, 민주화 인사 탄압이 그 사례다.
이러한 문제적 인간 장제스를 기리는 공간이 있다. 대만 수도 타이베이의 중정구에 있는 중정기념당이다. 가족 여행으로 타이베이를 방문한 김에 중정기념당을 찾았다. 장제스가 어떤 존재인지 눈으로 보고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중정기념당은 1980년 만들어졌다. 타이베이 상업 중심지인 신이구과 가까운 데다 지하철 이용도 편리해 오가기 쉽다. 자유광장, 예술문화광장, 중정기념당 본당, 국립음악당 등으로 구성돼 있다.
중정기념당 본당에 있는 장제스 동상을 보려면 계단 89개를 올라야 한다. 89는 장제스가 세상을 떠난 나이를 뜻한다. 계단을 다 오르면 높이 6.3m, 무게 25t 장제스 동상이 있다.
동상 뒤엔 윤리(倫理), 민주(民主), 과학(科學)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윤리는 민족주의, 민주는 민권주의, 과학은 민생주의를 의미한다. 민족, 민권, 민생은 장제스의 정치적 스승이자 국민당 창립자 손문(쑨원)이 표방한 삼민주의를 가리킨다.
장제스 동상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 모든 영광과 오욕에도 장제스가 거인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인간적 약점을 따지기 전에 장제스가 국가를 위해 이룩한 업적을 평가하는 대만인들의 배포 역시 느껴졌다.
계단을 내려가 중정기념당 본당 1층으로 들어갔다. 장제스 집무실과 밀랍 인형, 장제스가 타고 다녔던 캐딜락 의전 차량, 장제스 유품과 정치 행보를 담은 사진이 전시돼 있었다. 20세기 중국 본토와 대만의 운명을 좌우한 걸물답게 자료가 풍부했다.
문득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우리 사회엔 국가를 감성적 이상향이나 도덕 결사체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국가에 어떤 흠결도 있어선 안 되며 잘못된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이승만과 박정희에게 치를 떤다. 반면 북한에 대해선 냉정을 상실하고 우리 민족끼리 뭉치자는 식의 감상주의에 빠진다.
하지만 국가는 정서에 기반하지 않는다. 국가는 온갖 모순을 끌어안더라도 현실을 중시하는 이성적이고 차가운 집단이다. 그래야 국민의 삶을 지켜내고 발전을 이뤄낼 수 있다. 이를 알기에 대만인들은 숱한 과오에도 불구하고 중정기념당을 세워 장제스를 추모하고 있다.
우리도 대만처럼 국가의 본질을 받아들일 때가 됐다. 맘에 들든 안 들든 대한민국이 친서방, 시장경제로 나아가도록 한 지도자가 이승만이다. 이승만이 설정한 방향을 따르면서 번영의 토대를 닦은 사령탑이 박정희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한 일을 부인하면 우리 사회는 뿌리를 잃은 채 허망한 과거사 논쟁만 반복할 수밖에 없다. 중정기념당을 떠나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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