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출처=연합뉴스

[뉴스임팩트=이정희기자] 프로야구에 '괴물 투수'란 별명을 얻은 선수들이 있습니다. 웬만큼 잘 던져서는 괴물 투수로 불리지 못합니다. 롯데 최동원, 해태 선동열, 한화 류현진처럼 시대를 호령한 선수에게만 괴물 투수 호칭이 주어지죠.

지난 25일 치러진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의 기자 간담회를 지켜보면서 문득 괴물 투수가 떠올랐습니다. 금융권에 괴물 투수 같은 경영자가 있다면 윤종규 회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죠. 그만큼 윤종규 회장이 9년간 KB금융에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금융사 회장의 주요 책무로 실적 향상, 비은행 부문 강화, 지배 구조 안정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세 가지 중 한 가지만 잘해도 평타는 쳤다고 해줄 만합니다. 무엇 하나 해내지 못한 채 낙하산 논란과 내분으로 조직에 상처를 입힌 회장들까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윤종규 회장은 세 가지를 모두 해냈습니다. 그는 2014년 당기순이익 1조4000억원대 금융사를 넘겨받아 7년 만에 4조원을 돌파했습니다. 옛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 옛 현대증권(현 KB증권), 옛 푸르덴셜생명(현 KB라이프생명) 인수를 성사시켜 비은행 부문을 대폭 확충하기도 했죠.

지배 구조 안정화는 윤종규 회장이 KB금융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이라 할 만합니다. 그는 3연임을 이룬 뒤 부회장제를 도입해 후계자 양성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조직을 위해 권력을 계속 틀어쥐고 싶은 욕심을 자제한 거죠. 윤종규 회장의 내려놓기 덕에 KB금융은 엉뚱한 장난에 휩쓸리지 않고 객관적 검증을 거쳐 지난 8일 내부 인사인 양종희 부회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내정할 수 있었습니다.

윤종규 회장 이전만 해도 KB금융은 외부 요인에 의해 수장이 결정되는 금융사였습니다. 초대 황영기 회장(2008~2009년), 2대 어윤대 회장(2010~2013년), 3대 임영록 회장(2013~2014년) 모두 낙하산 인사로 분류될 정도죠. 질긴 외풍의 사슬을 윤종규 회장이 자기 대에서 끊어낸 겁니다.

윤종규 회장의 업적을 하나 더 보태자면 KB금융 임직원들에게 조직에 대한 자부심을 되찾아 준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오너가 아닌 전문 경영인이었음에도 주인 의식이 대단했습니다. 다른 벼슬에 일절 눈길을 주지 않고 업무에만 매진했죠. 넥타이조차 KB금융 상징인 노란색만 고집했고요.

낙하산 회장들의 경영 실패와 내부 다툼으로 위축돼 있던 KB금융 임직원들은 윤종규 회장을 보며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선두 주자였던 KB금융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욕도 커졌죠. 이러한 상승효과에 힘입어 KB금융은 신한금융에 빼앗겼던 리딩뱅크, 리딩금융그룹을 탈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윤종규 회장은 오는 11월 양종희 내정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퇴임합니다. 그는 KB금융 역사에 '흔들리던 조직을 바로잡고 전성기를 일궈낸 괴물 경영자'로 기록될 겁니다.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괴물 투수에게 환호가 이어지듯이 명예 퇴진하는 괴물 경영자에게도 박수갈채가 쏟아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