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연합뉴스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위원] 1970년 이른바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를 이끌었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다.

키신저 전 장관은 현재 자신이 직접 설립한 외교 컨설팅사인 키신저어소시에이츠의 회장으로 있지만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연관된 공식 직함은 갖고 있지 않다.그런 그를 시진핑이 직접 만난 것은 미국 외교가에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키신저를 활용하겠다는 복선이 숨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독일 유대계 가정 출신의 키신저는 히틀러의 박해를 피해 1938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와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인물이다. 그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교수로 일하다가 1969년 닉슨 행정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되면서 본격적으로 국제외교가에 이름을 알렸다.

그의 명성은 1972년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에 직접 관여하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원래 닉슨은 마오쩌둥을 비난했던 강경한 반중인사였으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중국과 손잡기를 바랬다. 닉슨은 키신저를 불러 중국과의 화해방안을 모색할 것을 지시했다.

1974년 11월 26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자신의 병실로 찾아온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과 악수를하고 있다@연합뉴스


키신저는 샤를 드 골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대통령, 모하메드 야햐 칸 파키스탄 대통령 등을 통해 중국과의 물밑협상을 진행한데 이어, 1971년 중국 국무원 총리 저우언라이와 회담을 갖고 양국 정상회담을 타진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미국 탁구대표단을 중국으로 초청해 환대했고, 미국 역시 중국 탁구대표단을 미국에 초청했다. 탁구를 매개로 양국간의 화해무드를 조성했다는 이유로 키신저의 당시 외교를 핑퐁외교라 불렀다.

약 3년의 물밑협상을 거쳐 닉슨이 1972년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과 극적으로 회담을 가지면서 한국전쟁 이래 적대관계에 놓여있던 미국과 중국은 적대관계를 사실상 청산했고, 1979년 미중수교에 이르는 다리를 놓았던 것이다.

1970년 냉전을 해체하는 데탕트 외교를 주도했던 키신저를 중국이 초청한 것은 우연히 아닐 것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 관계는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보이지 않는 전쟁 그 이상의 갈등을 겪고 있다. 시진핑은 중국에 우호적인 키신저를 활용해서 미국과의 냉전을 해소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진핑이 키신저를 만나면서 ‘오랜 친구’로 칭송하며 미중 관계 개선을 위한 역할을 주문한 것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시진핑은 “중국과 미국은 다시 한번 어디로 가야할지 갈림길에 서 있다”면서 “키신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미국인들이 중미 관계를 올바른 길로 되돌리는 데 건설적인 역할을 계속해 달라”고 주문했다.

키신저는 앞서 중국 최고 외교수장인 왕이 중앙정치국 위원과 리샹푸 국방부장을 만나는 등 중국에서 그야말로 국가원수급 대접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키신저는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이 각자 상대방을 위협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상황”이라며 “양측이 동시에 일부 양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채로운 것은 키신저가 중국에서 국가원수급 대접을 받은 것과 달리, 존 케리 미국 기후 특사는 시진핑을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케리 전 국무장관은 기후 특사라는 공식 직함을 갖고 있음에도 아무런 공식 직함이 없는 키신저에게 밀려 푸대접에 가까운 홀대를 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시진핑은 지난달에도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를 만난 자리에서 빌 게이츠를 가리켜 ‘오랜 친구’로 치켜세웠다. 자신에게 우호적인 인물들을 골라 만나면서 미국과의 냉랭한 관계 개선에 활용하겠다는 시진핑의 속셈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뉴스임팩트 최진우 wltrbriant652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