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의 국제논단] 트럼프의 몰락과 미국에 부는 케네디 바람

최진우 승인 2022.12.14 17:14 의견 0
케네디 전 미대통령의 취임연설 모습=미CBS방송 유튜브 공개 영상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위원] 미국은 전통적으로 성별, 연령, 피부색, 종교 등을 이유로 상대방을 차별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국가다.

그래서 회사에 제출하는 이력서에 사진을 부착하지 못하게 하고 인터뷰에서 종교나 인종, 나이 등을 묻는 것을 대단한 실례로 생각하고 있다.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도자의 나이, 특히 대통령의 나이는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잣대가 된다는 점을 모두 인식하고 있음에도 노골적으로 나이를 정치적 이슈로 삼는 것은 암묵적으로 금기시했던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었다. 잘 알려진대로 레이건은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에이브라함 링컨 다음으로 유머감각이 뛰어나기로 정평이 나 있던 인물이다. 그의 타고난 유머 감각은 대중의 사랑을 불러일으켰고 재임 기간 중 온갖 실수와 구설에도 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레이건은 1980년 선거에서 민주당의 카터를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연임에 나섰던 1984년 대선에서는 70대를 넘어서 은근히 민주당으로부터 고령 때문에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정치판에서 나이를 정식으로 이슈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거리유세에서 이런 약점을 민주당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급기야 TV토론에서 한 패널이 레이건의 연령 문제를 우회적으로 제기했다. 패널은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사흘 밤낮을 자지않고 소련의 미사일 배치 움직임을 감시했던 일화를 얘기하면서 비슷한 상황에서 과연 레이건도 그런 체력을 보여줄 수 있겠냐는 질문이었다.

매우 길고, 고통스러운 질문이지만 한 마디로 “당신이 대통령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은 것 아뇨”라는 질문이었다. 레이건과 맞서 싸우는 월터 먼데일 민주당 대선후보는 승기를 잡았다는 확신에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나 레이건의 답변은 엉뚱했다. “나는 이번 대선에서 나이를 문제삼지 않겠다. 특히 상대방이 나이가 어려, 경험미숙을 드러낸다고 해도 나는 이를 정치적으로 공략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자신의 고령을 문제삼은 질문에 레이건은 거꾸로 상대방의 나이 어림과 경험미숙을 지적하며 나이논쟁을 비껴갔던 것이다. 사실 레이건의 답변은 패널의 질문과 아무 상관없는, 핵심을 벗어나는 답변이었지만 청중들은 레이건의 답변이 나오는 순간,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고 패널 역시 황당하지만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레이건의 환한 웃음과 대조적으로 먼데일의 표정이 일그러진 것은 어쩌면 패배를 예감한 썩은 미소였던 것이다.장황하게 레이건과 먼데일의 TV토론을 끄집어낸 것은 최근 미국 정가에서 지도자의 연령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1942년생인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미국에서 가장 나이 많은 대통령 반열에 올랐다. 그런 그가 2024년 재선을 노리는 것으로 나타나자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다. 그의 재선을 바라지 않는 미국인들이 내세우고 있는 가장 이유는 그의 나이였다. 성별, 연령, 피부색, 종교 등을 이유로 상대방을 차별하지 않는 미국에서 대통령의 나이를 노골적으로 문제삼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럼에도 바이든은 2024년 대선 출마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바이든에게 패배해 백악관에서 쫓겨난 도널드 트럼프 역시 2024년 대선출마를 공식화했다. 그는 미국 중간선거가 끝나자 마자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만이 바이든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보수후보라며 대선출마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그러나 바이든-트럼프의 리턴매치를 보고싶어하는 사람은 그닥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도 싫고, 바이든도 대선에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응답율이 미국인의 절반을 넘어섰다.

특히 보수 유일 후보라고 자처하는 트럼프는 공화당 내에서 신성으로 꼽히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에게 지지율에서 밀리는 것으로 나타나 망신을 당하고 있다. 디샌티스는 아직 공식적으로 대선출마를 선언하지 않았는데, 출마선언도 안한 잠재적 후보에게 트럼프가 지지율에서 밀렸다는 것은 그만큼 트럼프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USA투데이 조사에 따르면 서퍼크대학교와 공동으로 1000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지난 7~10일 여론조사를 한 결과 공화당 지지자의 56%가 대선 후보로 디샌티스 주지사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33%에 그쳤다. 지지율 격차는 23%포인트로 아직 대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한 점을 고려하면 디샌티스의 인기가 얼마나 높이 치솟고 있는지를 가늠케한다.

반면 트럼프에 대해서는 지지율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대선출마를 반대하는 응답이 공화당 지지자 중 4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대선출마를 강행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고 있다. 트럼프의 출마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 47%로, 지난 7월 조사 당시 60%와 비교하면 그에 대한 인기가 현격하게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있다.

흥미로운 것은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도 바이든의 2024년 대선 출마를 반대하는 여론이 꽤 있다는 것이다. 그의 고령을 반대하는 이유로 꼽은 응답자가 작지 않음을 고려하면 바이든의 최대 과제는 트럼프도, 경제치적도 아닌 나이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바이든은 트럼프와의 가상대결에서는 7%P 차이로 이기고 있지만, 디샌티스와의 가상대결에서는 4%P 차이로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1978년생인 디샌티스의 등장은 마치 1960년대 40대 젊은 정치인 바람을 일으켰던 케네디를 연상케하고 있다.

뉴스임팩트 최진우 wltrbriant652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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