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김서정작가]신당역 3번 출구로 나가 무학대사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 무학봉 근린공원에서 시작해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일단 마무리되는 남산자락숲길을 걸으며 든 생각은 남산이라 불릴 수 있는 영역이 이리도 넓은 줄 몰랐다는 것이다.
지난 22년 무학봉~버티고개 구간에 길을 먼저 정한 뒤 24년 4월 버티고개 생태육교까지 산책로를 만들어 응봉친화숲길로 이름을 붙이고는 다시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까지 총 5.14㎞를 정비한 뒤 남산자락숲길로 이름을 바꾼 이 길은 남산으로 계속 이어질 예정이라고 하는데, 여하튼 그리 오래 걷고도 남산 문턱에도 못 갔다는 느낌을 받은 건 무엇 때문일까?
오래전 한양도성 남산 구간 그러니까 광희문에서 남산 정상을 거쳐 숭례문까지 걸었는데 그 길이는 5.4km였다. 광희문에서 장충체육관까지는 주택가를 지난다. 무학봉 근린공원에서 대현산배수지공원 그리고 응봉근린공원까지 가는 길은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를 지난다.
장충체육관에서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까지는 성곽 길을 따라 가는 운치가 있다. 응봉근린공원에서 매봉산까지 가는 길도 아파트 사이사이를 지나지만 나무들이 많이 있어 입산 느낌이 난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에서 N타워를 지나 숭례문에 다다르면 남산을 모두 정복했다는 희열이 차오른다. 매봉산에서 드디어 숲다운 숲에 들어선 것 같아 숲길을 걷는 기분을 만끽하며 잠시 오르막길을 걸으면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이 나오고 이내 남산자락숲길이라 명명된 길은 끝난다.
거기서 한국자유총연맹 위를 지나 길을 건너 국립극장을 만나야 이제 남산을 오르는구나 하는 목적의식이 팽배해지는데, 남산자락숲길은 이내 장충단으로 하산해 그 어디에서 장충족발로 하루를 마감하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남산을 다녀왔다는 느낌을 온전히 만끽하려면 장충족발은 잊고 힘을 내어 더 걷고 또 걸어야 한다.
한양도성 남산 구간 말고도 남산 정상으로 향했던 적은 많았다. 서울역에서 남산도서관을 지나 정상으로, 명동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으로, 동대입구역에서 버스를 타고 정상으로. 그리고 정상은 아니어도 자락도 여러 번 다녔다. 남산 중앙정보부에서 예장공원으로, 남산한옥마을에서 그 어딘가로, 녹사평역에서 경리단길을 거쳐 그 어딘가로. 정상을 밟았거나 자락을 걸었거나 그때는 정말 남산이 그리 넓은 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남산은 오직 정상 주위만 남산이라는 생각뿐이었기에. 산과 주택의 경계가 분명하다는 인식으로 산은 산이고 주택은 주택이라는 판단뿐이었기에. 남산자락숲길의 시작점인 무학봉 근린공원에 들어서니 <정원의 위로>에 나오는 다음 글이 실감난다.
“일상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위로와 환대의 장소. 하지만 자본주의 도시에서 그런 자리는 우리에게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공공 공간이 필요하고 함께 쓰는 공원이 중요하다. 내 소유는 아니지만 누구나 편안하고 안전하게 누릴 수 있는 나의 공원. 이런 공원이 많은 도시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도시다.”
미어터지는 서울이 그리 살기 좋은 도시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갈수록 미어터지는 이유는 분명 사람이 만들었을 텐데 그래서 무작정 욕만 할 수 없는 그 순간 그 어느 한켠에 있는 공원을 만나면, 지금 여기가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맞는 듯한데. 아닌가?
신당역에서 출발해 단번에 무학봉 근린공원을 찾은 게 아니라 어느 아파트 사이로 들어가니 사방이 막혀 결국 프레시 매니저(야쿠르트 아줌마라고 하면 안 될 것 같아 찾아보니 지금은 프레시 매니저로 부른다고 한다)에게 물어야 했다.
남산자락숲길 시작점인 무학봉근린공원@김서정 작가
친절한 가이드로 힘들이지 않고 입구를 찾아 올라서니 키 큰 나무, 키 작은 나무, 초본 들이 조화롭게 아름다운 생명을 보여주고 있고, 사람의 건강을 위한 시설물도 옹기종기 적절히 들어서 있다. 그걸 둘러보며 걸으니 직전의 시멘트 건물들이 준 어지러움은 바람에 쓸려가고 숲에 온 듯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안정을 찾게 된다. 손수건으로 땀 한 번 닦으니 얼굴이 펴지며 숨통이 확 트인다.
밭은 숨을 접고 눈에 힘을 주니 학이 아이를 품어 무학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전설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이곳 봉우리에 올라 왕궁터인 경복궁 등 곳곳의 지형을 살폈다는” 안내글, 즉 조선 건국과 관련된 무학대사 이야기를 갖고 남산자락숲길을 걸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높이 270m의 남산은 풍수지리적으로 남주작에 해당되면서도 한양 도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산(案山) 개념을 가지고 있다. 조선 태종 때는 남산에 목멱신사를 만들어 도성에 사는 이들의 안위를 도모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신궁이 들어서 일본 왕을 지킨다고 설쳤고, 70년대에는 중앙정보부가 유신정권을 지켰고, 이후 바쁘게 사는 시민들의 쉼터로 자리 매김되고 있는 남산, 그 무엇이든 보살피고 지킨다는 의미는 쉽게 삭제되지 않는 것 같다.
남산을 향해 걸으면 무언가 안전지대에 들어서며 재충전을 할 것 같은 기운이 있어 소음 가득한 거리도 툭툭 가볍게 밀며 아파트 사이로 올라서니 미소어린이꿈공원이 나오고 이어 키 큰 사철나무 울타리를 지나니 대현산 배수지공원 안내판이 보인다. 그런데 대현산 배수지공원 글자에 ()가 있고 그 안에 응봉근린공원이라는 글자가 있다. 그곳을 지나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는데 그 옆으로 모노레일이 운행되고 있다. 다시 산과 아파트 사이를 지나 오르고 오르는데 응봉근린공원이 나온다. 그 글자 옆에 ()가 있고 그 안에 금호산이 쓰여 있고 그 아래 성동구라는 글자가 있다. 남산자락숲길은 중구청이 조성했다는데, 도대체 뭐지?
서울시 홈페이지 검색을 해보니 “응봉은 산모양이 매처럼 보이고 조선시대 왕들이 매사냥을 하였다 하여 한자어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옛날에는 하나의 줄기였으나 도시개발로 인해 응봉산, 대현산, 대현배수지, 금호산, 매봉산 5개 지역으로 나뉘어져 각 자치구별로 관리되고 있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나온다.
응봉산은 봄에 개나리로 유명한 응봉산으로 익히 알고 있었는데, 이제 뒤로 이어지는 생소한 이름들을 보니 여기가 남산자락숲길이 맞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냥 남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야산이 맞는 듯싶기도 하다. 더 깊은 연구 조사를 통해 남산자락숲길이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여기며 내처 걷는데 매봉산 안내문도 나오고, 드디어 긴 갈지자(之) 무장애 데크길을 내려가니 남산 숲에 잠긴 듯하다.
서울시 최초 자락길은 2013년 조성된 안산자락길이라고 한다. 건강한 사람만이 숲길을 걷는 게 아니고 장애인, 노약자도 숲의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만든 계단 없는 무장애 순환길, 이후 전국적으로 붐이 일어 숲에는 더 많은 길이 생겨났다. 그 길이 고마운 사람들도 많다. 힘들게 오르막 계단을 오르지 않고도, 꼭 정상을 밟지 않아도, 누구를 떼놓고 나오지 않아도, 숲이라는 곳에서 치유를 할 수 있는 길, 그 가운데 하나인 남산자락숲길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한남테니스장에서 들려오는 파이팅 소리를 바람에 들으며 마지막 오르막을 갈지자로 걸으면 N타워가 보인다. 반갑기만 하다. 그곳까지 더 가야 남산을 온전히 품지만 장충족발이 입맛을 당겨 하산한다.
남산자락숲길은 중구 어디서든 15분 안에 이 길에 들어서고, 그리고 쭉 남산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든 길이라고 한다. 남산자락숲길이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정말 남산이 이리도 넓은 줄 생각하지 못했을 텐데, 이름을 되뇌며 걷다 보니 언젠가 남산 전체를 이리로 저리로 오랫동안 걸어 남산이 주는 안산의 개념을 몸으로 느끼고 싶다. 남산은 산이고 숲이고, 그곳으로 향하는 마음을 먹는 순간 자연의 위로가 장애 없이 천천히 따듯하게 다가올 것 같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