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의 국제논단] 절친 외치던 시진핑, 쿨하게 푸틴 손절

최진우 승인 2022.12.01 16:42 의견 0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왼쪽)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연합뉴스TV 뉴스 유튜브 영상캡쳐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위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부쩍 가깝게 지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이에 균열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사회로부터 ‘왕따’ 취급을 받으면서도 전쟁의 광기를 버리지 않는 푸틴을, 시진핑이 손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는 시진핑에게 의미있는 행사였다. 지난 10월 당대회를 통해 3연임에 성공하면서 사실상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종신 지도자의 지위를 다진 그가 처음으로 오프라인 정상회의에 모습을 드러낸 행사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은 미국의 포위작전에 휘말려 서방국가들로부터 러시아 못지 않는 왕따 신세로 전락했는데, 이번 G20 정상회의를 통해 서방국가들에게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낸 시진핑의 모습은 중국이 더 이상 외톨이로 남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푸틴이 전쟁 중이라는 이유로 G20 정상회의에 불참한 것과 대조적으로 시진핑은 오래전부터 정상회의 참석을 공표했다. 그것도 들러리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각국 정상과 잇달아 회담을 가짐으로써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시진핑의 이같은 모습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푸틴과 브로맨스 관계를 형성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쟁 초기 시진핑은 푸틴의 잘못을 감싸주며 애정을 듬뿍 과시했다. 푸틴이 지구촌 왕따로 전락한 상황에서 시진핑의 푸틴 챙기기는 눈물겹기까지 했다.

‘적의 적은 내 친구’라는 오래된 격언처럼 미국이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 시진핑과 푸틴은 똘똘 뭉쳐 공동전선을 폈지만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보여준 시진핑의 태도는 그같은 관계도 끝에 다다랐음을 시사하고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친밀함 보다는 적대적에 더 가까웠다.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과 러시아 관계는 1600년대 명나라 시절까지 가겠지만 양국간 실질적 접촉은 청나라 순치제 때의 나선정벌과 강희제 때의 네르친스크 조약이 시발점이었다.

두 나라의 관계는 18세기 캬흐타 조약을 계기로 일시적으로 가까워졌지만 청나라가 영국과의 아편전쟁에 패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기에 들어섰다. 세계 양대 공산국가로 자리매김한 중국과 러시아는 이후 협력과 반목, 갈등을 반복했다.

스탈린은 마오쩌둥을 위험인물로 보고 경계했으며 마오쩌둥은 스탈린 사후 수정주의 노선으로 갈아탄 구 소련을 배신자로 칭하며 비난했다.급기야 1969년 중국과 소련간 국경분쟁이 일어나면서 두 나라 관계는 적대적으로 바뀌었다. 급속도로 식었다.

소련과 냉전을 펼치던 미국이 그 틈을 비집고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 헨리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이 주도한 이른바 핑퐁외교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 마오쩌둥과 악수를 나누는 역사적 사진을 연출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다시 관계를 회복한 것은 구 소련이 붕괴하고 1986년 중국에서 텐안먼 사태가 발생하면서부터다.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려고 하자, 중국은 러시아에 손을 내밀었고 러시아 역시 유일한 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을 경계하기 위해 중국의 손을 잡았던 것이다.

이후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을 번갈아가며 괴롭히자 두 나라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오바마는 중국에 대해선 느슨하게 대하면서 러시아를 집중 견제했고, 트럼프는 거꾸로 러시아에 유화적이었던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가혹한 제재를 가했다.

특히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도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고 나섰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푸틴을 국제적 왕따로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똑같이 미국에 시달리던 시진핑과 푸틴은 동병상련을 느꼈을까. 전쟁 기간 중에 마치 오랜 친구같은 친밀한 사이가 됐고 그 관계는 변치 않을 것처럼 보였는데, 이번 G20 정상회의는 두 사람간의 관계가 새로 설정될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중국 내에서도 푸틴을 손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중국 정부계열 싱크탱크의 간부인 정치학자 후웨이는 시진핑 지도부를 향해 “푸틴 대통령의 손을 조속히 놓아야 한다”고 촉구하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일파만파 파문이 번지자 신속히 삭제됐지만 싱크탱크 간부가 이런 주장을 했다는 것 자체가 중국내에서도 푸틴을 안고 가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후웨이는 글을 통해 중국이 취해야 할 선택에 대해 “푸틴 대통령과 시급하게 절연해야 한다”며 국제정치의 기본 수칙으로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으며, 있는 것은 영원한 이익뿐”이라고 강조했다. 푸틴이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중국은 얻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같은 그의 주장 이면에는 중국이 러시아 편에 서서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가고 있는 반면, 미국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미국의 영향력을 더 확대하고 있어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간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절박함이 숨겨져 있다.

국익 앞에서는 어제의 친구도 냉정하게 버려질 수 있는 국제정세의 씁쓸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뉴스임팩트 최진우 wltrbriant652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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