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의 국제논단] 루즈벨트와 헨리포드, 그리고 일론머스크

최진우 승인 2022.10.11 14:52 의견 0
테슬라 등의 오너인 일론 머스크=ytn뉴스 유튜브 영상 캡쳐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위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대공황 시기 미국 제32대 대통령에 오른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FDR)는 선거과정에서 재계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았다. JP모건은행, 포드자동차, 제너럴 모터스, 크라이슬러, 보잉 등 당시 내로라하던 회사들은 거액의 정치헌금을 제공하며 루즈벨트의 당선을 도왔다.

그러나 대통령에 취임한 루즈벨트는 이들을 배신했다. 대공황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루즈벨트는 대중의 분노를 배출할 수 있는 표적을 찾았고 당연히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이들 기업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JP모건 주니어를 비롯해 자동차업계 CEO들이 줄줄이 청문회에 불려나갔다. 특히 금융계 거물 JP모건 주니어는 대공황을 촉발시킨 주가폭락을 일으킨 주범으로 몰려 대중의 공분을 샀고, 보잉 설립자 윌리엄 보잉은 충격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헨리 포드(포드), 윌리엄 듀랜트(제너럴 모터스), 월터 크라이슬러(크라이슬러) 등은 뉴딜정책을 밀어붙인 루즈벨트가 자본주의에 재갈을 물리는 공산주의스러운 정책을 고집하는 사회주의자로 규정하고 그의 재선을 막기 위해 이듬해 선거에서는 알프레드 랜든 공화당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이들의 바람과 달리 루즈벨트는 재선에 성공했다.

루즈벨트와 자동차업계의 극단적인 대립은 1936년 미시건주 플린트에 위치한 제너럴 모터스 공장에서 노조원 3000여명이 공장을 점거하고 한 달 넘게 연좌파업에 돌입했을 때 정점을 찍었다.

제너럴 모터스 경영진은 돈을 주고 고용한 구사대들과 경찰을 동원해 노조원들을 쫒아내기 위해 공장진입을 꾀했으나 루즈벨트는 여기에 맞서 민주당 출신 미시건 주지사를 설득해 주방위군을 파견해 노조원들을 보호해준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노조를 끔찍하게 싫어했던 헨리 포드는 아예 대놓고 용역과 깡패를 동원해 공공연하게 폭력을 휘둘러 노조와해공작을 펼치기도 했지만 결과는 노조의 승리로 끝났다.

이렇게 한 하늘에서 같이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불구대천지 원수지간이었던 루즈벨트와 자동차업계 CEO들의 관계가 극적으로 반전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전쟁이 발발하고나서도 한동안 유럽과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으로부터 거리를 두었던 미국이지만,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감행하자 전쟁참전을 선언하고 대대적인 전시체제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자동차 회사들의 도움은 절실했다. 당시만 해도 대규모 군수장비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곳은 자동차3사와 보잉 등이었기 때문이다. 포드와 제너럴 모터스, 크라이슬러, 보잉 등은 고심 끝에 전시체제 전환에 적극 뛰어들었다.

물론 공공의 적에 맞서 싸워야 하는 전쟁이라는 특수성이 있었지만 자동차 생산을 포기하고 군수장비 생산을 위해 설비를 죄다 뜯어고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아무리 전시체제라고 하지만, 자동차회사들로서는 기업생존을 위협할 수 있는 도박에 가까운 결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장황스럽게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일어났던 미국 얘기를 꺼낸 것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를 거론하기 위해서다. 머스크는 최근 중국과 대만의 긴장관계가 고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제안을 불쑥 던졌다.

그는 영국의 유력지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대만을 홍콩처럼 중국 특별행정구역으로 지정해 홍콩보다 더 많은 자치권을 줌으로써 양안간 불안을 해소하는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의 제안은 쉽게 말해 대만을 제2의 홍콩으로 만들어 더 이상 싸우지 말라는 식이었다.

그의 제안을 놓고 중국은 즉각 환영했고, 대만은 일고의 가치가 없는 얘기라고 일축하는 등 반응은 극과 극으로 엇갈렸다.

머스크는 원래부터 유독 나서기 좋아하는 사업가이다. 워낙 말이 많다보니 구설에 오르는 일도 잦고,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그의 사업적 천재성 못지 않게 ‘갑툭튀’ 기질도 입방아에 오르곤 했다.

머스크가 갑자기 양안문제 등 국제정세에 훈수질을 하기 시작한 것은 중국이 세계적인 전기차 시장인 점과 맞물려서 해석할 수 있다. 테슬라는 상하이에 세계 최대 공장을 갖고 있고 양안 갈등은 궁극적으로 그의 전기차 사업에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이 대만문제에 개입하면 미국-중국간 전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결국 중국내 테슬라 판매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생각에 나름 ‘평화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국제정세 판단은 역사성과 현실을 결여한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홍콩은 영국으로부터 반환시 중국정부로부터 일국양제 체제를 보장받았지만 민주화운동 탄압에서 보듯 중국이 언제든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만을 일국양제 체제로 만드는 것은 사실상 대만을 중국에 갖다 바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자동차 CEO들이 보여준 행동은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거상(巨商)의 면모라고 할 수 있었지만 머스크의 이번 행위는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쫓는 장사꾼의 행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뉴스임팩트 최진우 wltrbriant652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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