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김서울 재독 칼럼니스트]독일어에 sicher wie der Tod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죽음만큼 확실한’이라는 뜻이다.
과연 그렇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게 되리라는 사실보다 확실한 것이 또 있을까. 불가피한 한계인 죽음을 생각함으로서 삶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통해 어떻게 죽어야 좋은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이토록 자연스럽고 당연한 자연의 법칙을 인간은 그 삶에서 만큼이나 섬세하게, 복합적으로 저마다 숙고하고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린다.
아마 최근 범사회적으로 죽음 또는 생명권과 관련해 가장 큰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주제는 안락사 혹은 조력자살, 그리고 임신 중단의 문제일 것이다. 나는 이번 편을 통해 대체로 안락사 혹은 조력자살에 대해, 독일과 한국의 현황과 철학적 논의의 측면에서 다룰 것이다.
독일과 한국의 현황
내가 이런 무거운 주제들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한 가지이다. 시험을 보러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버스 안에서 들었던 라디오 때문이다.
독일 의회에서 의원들이 안락사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순간 갑자기 궁금증이 일었다. 외국인에게도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 적극적/소극적 안락사를 모두 허용하는 네덜란드, 벨기에 모두가 바로 독일 국토와 몸을 맞댄 이웃나라이기 때문이다.
관련 논의에서 안락사 허용 국가로 빈번히 언급되는 세 이웃나라에 비해, 독일의 이름은 잘 들어보지 못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본 결과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에만 허용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위스는 이미 1942년부터, 네덜란드는 2002년, 벨기에는 2003년부터 소극적/적극적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에 비해 독일은 소극적 안락사마저도 2008년에 합법이 되었다. 번외로 독일은 임신중절과 관련해서도 꽤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임신중절은 원칙적으로는 불법이나, 12주 미만이며 정부가 지정한 상담소에서 상담을 받고, 유예기간을 거친 후이거나 의학적, 성폭력으로 인한 이유일 경우 주수 상관 없이 몇몇 의사에게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임신 중절을 하는 의사가 본인이 중절 시술을 한다는 것을 광고하는 것, 예를 들어 병원 사이트에 ‚임신 중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어떻게 진행되는지, 비용은 얼마나 하는지 등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기재하는 것은 올해 6월까지만 해도 불법이었다.
흔히 독일에 대해 그려지는 진보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사실들이다. 독일이 이렇게, 생명권과 다른 권리들이 충돌하는 문제에 있어 머뭇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워낙 옛것을 바꾸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 독일이라서일까? 그런 까닭도 유의미하게 작용할지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이는 독일이 가장 부끄럽게 생각하고, 떄문에 2차 대전 이후 청산에 온 힘을 쏟았던 나치당 집권의 역사 때문이다.
나치는 이른바 T4 Aktion(T4 작전)이라고 하여, 그들의 우생학적 이념에 따라 장애인 등 노동 부적격자들을 ‚자비로운 안락사’의 명목으로 학살한 바 있다.
이 때 본디 안락사를 의미하는 단어 ‚Euthanasie“가 주로 쓰였기 때문에, 별 다른 부정적인 의미를 따로 내포하지 않고 있음에도 현대에 와서 이 단어의 사용은 꺼려지고 있다.
그 대신에 독일인들은 ‚Sterbehilfe‘, 즉 죽음에 대한 도움이라는 뜻의 단어를 대신 사용하고 있다. 단어 하나의 사용에도 이렇게 조심스러울 만큼 안락사에 대한 논의는 국민의 정서를 심히 불편케 하는 그야말로 ‚다루기 어려운 주제’였던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안락사가 합법화 된 이후 당시 독일 대통령이었던 요하네스 라우는 "독일은 다른 유럽 국가가 안락사를 받아들인다고 무조건 이에 동참하지는 않을 것이며 독일만의 길을 갈 것" 이라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독일이 가진 비극적 역사를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독일 국민 대다수의 정서일까? 언급한 기사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2014년의 Allensbach에 의해 진행된,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2018년에 데이터 아날리스틱 기업인 YouGov를 통해 이루어진,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20년에 독일 공영방송 ARD가 진행한 설문조사 모두에서 유의미한 숫자의 조사자들 중에 과반수가 안락사 합법화에 찬성 의견을 보였다.
독일이 과거청산에 있어 책임감있는 태도를 보여왔고, 그것이 성공적인 결과들을 낳았기 때문에 과거사와 관련한 정서적 측면에서의 거부감은 앞으로도 계속 줄어드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에서는 어떨까? 2016년에 연명 치료 중단(임종 전에 치료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다만 임종 까지의 기간만 연장하는 치료를 환자 의지로 중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허용되었고, 2018년에 관련 제도들에 대한 법이 마련되었지만 소극적/적극적 안락사 모두 불법이다.
올해 5월 발의 소식을 알린 안락사 허용법도 적극적 안락사가 아닌 소극적 안락사만 허용하고 있다. 이른바 ‚조력 존엄사’를 허용한다는 것인데, 환자가 임종 과정에 있지 아니하더라도, 단지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것에 그치치 않고 환자가 스스로 투여할 수 있는 존엄사 약물을 처방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전의 연명의료 결정법과는 다른 점을 가진다.
그러나 의사가 직접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이에 포함되지 않으며, 단지 치유 불가능하고 고통스러운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적용되고, 정신적 괴로움이나 삶을 끝내고 싶은 의지등은 고려하지 않는다.
이런 논의에 대한 국내 여론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과반수가 긍정적이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윤영호 교수팀이 올해 3~4월 19세 이상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안락사 혹은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한 태도를 조사한 결과, 찬성 비율은 76.3%로 나타났으며, 이는 앞서 2008년과 2016년 조사 당시만 해도 약 50% 만이 안락사와 의사 조력 자살에 대해 찬성한 것과는 반대되는 결과다.
낙태와 관련해서는 조금 더 발전이 있는 상황이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낙태죄는 2019년에야 헌법불합치가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불법과 합법의 경계 사이에 머무르며 여성들의 현실적 복지를 위한 입법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벌써 보완입법에 할당된 시한인 2020년 12월 31일을 훌쩍 넘었다. 국회의 게으름으로 헌법불합치 판결의 원래 목적인 여성의 기본권이 보장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처벌되지 않을 뿐, 제대로 된 방법을 찾는데에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임신 사실을 부모님등과 의논하기 어려운 청소년들은 몸에 해롭거나 무효한 낙태약을 인터넷으로 구매해 건강상의 문제 또는 원치 않는 출산을 감행해야 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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