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장사리@연합뉴스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기자] 영웅은 언제나 환호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때로는 잊혀진 이름으로, 무덤 없는 바닷가에, 혹은 먼 세월 속에 파묻힌 채 우리 곁을 떠돌기도 한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바로 그런 ‘기억되지 못한 용기’에 주목한 작품이다. 한국전쟁 중 인천상륙작전을 돕기 위한 양동작전으로 펼쳐졌던 장사상륙작전. 이 실화는 오랫동안 역사 교과서의 주석에도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채 있었다.

곽경택, 김태훈 공동 감독은 이 잊힌 전장을 조명하며, 그 중심에 평균 나이 17세, 훈련기간 2주의 학도병 772명을 세운다. 이들은 총알이 날아드는 전선에 교복 바지를 입고 뛰어들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물러서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영화가 전하는 감동은 소리 없이 뚜벅뚜벅 가슴을 파고든다.

‘장사리’는 전쟁 대서사보다 인물에 집중한다. 학도병 ‘기하’(김명민), 그를 따르는 ‘최성필’(최민호), 그리고 개개인의 사연을 가진 소년병들이 카메라 앞에 선다.

이들은 이념도, 군사 전략도 모른 채 오직 ‘나라를 위해 싸운다’는 명분 하나로 바다를 건넜다. 감독은 이 소년들의 눈을 통해 전쟁을 본다. 폭음과 화염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내려는 몸부림이, 때로는 애처롭고 때로는 숭고하다.

특히, 김명민은 냉정한 지휘관과 부드러운 인간 사이를 오가는 연기로 극의 중심을 단단히 붙든다. 병사들을 ‘작전의 수단’이 아닌 ‘목숨’으로 대하는 그의 눈빛은 전쟁이 남긴 가장 비극적인 질문—"우리는 누구를 희생시키는가"—를 관객에게 되묻는다.

헐리우드 배우 메간 폭스는 극중 전쟁 특파원 ‘마가렛 히긴스’로 출연해 국제적 시선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지만, 극 전반에 깊은 영향력을 주지는 않는다. 이는 오히려 영화의 진정성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장사리’의 가장 큰 미덕은, 전쟁을 미화하지 않는 데 있다. 이 영화는 총을 든 소년들을 영웅화하지 않는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망설이고, 울고, 도망치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인간적인 모습이 이들을 진정한 ‘영웅’으로 만든다.

감독은 전투 장면에서도 지나친 장광설이나 애국적 선동을 배제한 채, 사실적인 톤을 유지한다. 피가 튀고, 살점이 찢기는 전투의 생생함은 관객에게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영화는 질문한다. “우리는 왜 이들을 잊었는가?” 학도병 작전의 성공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전쟁은 늘 결과만이 기억되고, 그 과정의 희생은 묻힌다. ‘장사리’는 그 묻힌 역사의 구석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그리고 그 이름들을 스크린에 하나씩 다시 새긴다. 이것이야말로 영화의 진정한 의의다.

이 영화는 예술을 넘어 교육의 기능도 수행한다. 전투의 스펙터클은 현대적 영상미로 구현되었고, 인물의 서사는 과장 없이 정제되어 있다. 다만, 몇몇 캐릭터 간의 감정선이나 전개는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약점은 이 영화가 감당하고자 한 무게에 비하면 작은 흠에 불과하다.

‘장사리’는 한국전쟁 영화의 스펙트럼을 더욱 넓힌 작품이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인의 비극을, ‘고지전’이 이념의 허구를 그렸다면, ‘장사리’는 '망각된 영웅들에 대한 기억'을 화두로 던진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누군가의 이름 없는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킨다.

역사는 승자만 기록되지 않는다. 때로는 가장 앞서 싸운 자들이, 가장 늦게 기억된다. 이 영화는 바로 그 늦은 기억을 위한 경례다. 어쩌면 이보다 더 중요한 영화의 역할이 있을까.


평점: ★★★★☆ (5점 만점)

최진우 wltrbriant652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