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기자] ‘희토류(Rare Earth Elements, REEs)’는 이름과 달리 지각에 비교적 풍부하게 분포된 17개의 금속 원소를 의미한다. 주기율표에서 란타넘(La)부터 루테튬(Lu)까지의 15개 란탄족 원소에 스칸듐(Sc)과 이트륨(Y)을 포함한 이들은 매우 강력한 자기적·광학적·전기적 특성을 지녀 하이테크 산업과 국방 기술에 필수불가결한 자원으로 꼽힌다.
대표적으로 스마트폰, 전기차 배터리, 풍력터빈, 항공기 제어 시스템, 유도미사일, 야간투시장비, 반도체 장비 등에 쓰이며, ‘산업의 비타민’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런 전략물자가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닌 안보와 외교를 관통하는 ‘지정학적 무기’가 된다. 그리고 현재 이 무기의 키는 중국이 쥐고 있다.
◇중국은 왜 희토류의 제왕이 되었나=블룸버그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 희토류 정제·가공의 약 70% 이상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으며, 채굴량 기준으로도 약 60%를 점유하고 있다. 중국의 희토류 장악은 단순한 자원 부국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 지질조사국(USGS) 등에 따르면, 브라질, 베트남, 러시아, 인도 등도 상당한 희토류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의 지배력은 기술과 인프라, 가격 전략의 복합 산물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980년대부터 중국 정부는 희토류 산업을 국가 전략으로 육성해온 반면, 서방 국가는 환경오염 문제와 수익성 저하로 정제 시설을 잇따라 폐쇄했다. 이로 인해 미국 캘리포니아의 마운틴패스 광산처럼 세계 최대급 매장지조차 중국에 정광(精礦)을 보내 정제하는 구조로 전락했다. 정광이란, 광석에서 불순물을 제거하고 유용한 금속 성분을 농축시킨 형태의 중간 가공물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원석에서 쓸모 없는 부분을 제거하고, 필요한 금속 성분만 남긴 농축된 광물을 가리킨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은 희토류 원광뿐만 아니라 정제·가공에 필요한 기술 인력과 설비, 그리고 세계 최저 단가의 공급망을 동시에 구축한 유일한 국가”라며 “이는 민간 기술이 아닌 국가주도의 장기 전략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희토류는 왜 전략적 무기가 되었는가=희토류의 전략적 가치는 이들 원소가 없으면 첨단기술 산업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특히 탄소중립 전환과 전기차 산업이 가속화되면서, 네오디뮴(Nd), 디스프로슘(Dy), 프라세오디뮴(Pr) 같은 자성 희토류의 수요는 폭증하고 있다. 동시에 군사·항공 기술에서 희토류는 이미 핵심 부품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디펜스 뉴스 보도에 따르면 워싱턴에 본사를 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산업정책 연구원 캐런 호프먼 박사는 “희토류는 ‘작지만 결정적인’ 자원”이라며 “공급망의 병목현상은 단순한 산업 중단이 아니라, 국가 안보의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미중 무역 분쟁에서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지렛대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상무부는 희토류를 군민 양용(dual-use) 품목으로 규정하며, 국제법상 통제는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은 이를 자의적 수출 제한으로 간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 검토를 밝혔다.
◇“희토류는 무기가 아니다”라는 중국=중국 정부는 희토류의 수출통제를 공식적으로는 “국가 안보와 국제 평화 수호를 위한 것”이라 설명하지만, 현실에서는 대외정책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모습이 명확하다.
최근 미국이 중국산 전기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유럽연합(EU)과의 전기차 무역 협상에서도 희토류 통제를 압박 카드로 꺼내들었다. 로이터는 “중국이 포드, GM, 스텔란티스에 희토류 공급을 재개한 것은 트럼프의 개인적 요청에 따른 것이며, 이는 시진핑 주석이 공급망 통제권을 얼마나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존 리 교수는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희토류를 단순한 무역품이 아닌 외교 무기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글로벌 공급망에서 자율성과 정치적 독립성을 중시하는 국가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던진다”고 지적했다.
◇희토류 탈중국화 가능할까=미국, 유럽, 일본은 현재 희토류 공급망의 ‘탈중국화’를 위한 다각적인 전략을 추진 중이다. 미국은 마운틴패스 광산을 다시 활성화하고, 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와 협력하여 제련시설을 확대하고 있으며, EU도 ‘비판적 원자재 법(Critical Raw Materials Act)’을 제정해 자체 공급 역량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정제 및 가공의 80% 이상이 중국에 의존되는 현실은 단기간 내에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프랑스의 에너지경제연구소(IFPEN)의 마르셀 투르망 박사는 “희토류는 단순히 광산을 열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수십 년간 쌓아온 기술, 인프라, 그리고 환경 문제 해결 역량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향후 희토류가 ‘기술 냉전’의 불쏘시개가 될지, 혹은 협상의 안전판이 될지는 각국의 공급망 전략과 기술 자립 수준에 달려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희토류는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현대세계에서 가장 민감한 ‘전략의 원소’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