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곤 건국대 방위사업학과 겸임교수(사진 왼쪽)와 박종국 뉴스임팩트 편집국장이 대화하고 있다.@뉴스임팩트

[뉴스임팩트=박종국·이상우기자] 이달 초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시가총액 40조원을 돌파하며 현대자동차를 제치고 코스피 시총 5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K방산이 전성기를 넘어 절정기에 이르렀음을 실감했다. 4~5년 전만 해도 K방산이 천덕꾸러기 신세였음을 떠올리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대로 K방산의 봄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걸까.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레드퀸 효과(Red Queen Effect)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K방산도 호시절을 누리는 데 열중하다가 언제든 밀려날 수 있다.

뉴스임팩트가 K방산의 지속적인 성장 해법을 찾고자 방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를 만나 의견을 들었다. 이준곤 건국대 방위사업학과 겸임교수다.

이준곤 교수는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뒤 핀란드 알토대 EMBA와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고 국방대 국방사업관리를 수료했다. 현재는 탈레스코리아 국방 총괄 전무, 산업정책연구원 연구교수, 한국방위산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국방기술학회 학술이사를 맡고 있다.

이준곤 건국대 방위사업학과 겸임교수.@뉴스임팩트

ㅡ방산 쪽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뭔가.

"ROTC 출신이다. 옛 삼성항공에 선발됐고 제대한 이후 복직했다.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 대우중공업 항공사업본부가 합쳐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됐다. 그렇게 방산업계에 몸담았다."

ㅡK방산의 현 상태를 어떻게 보나.

"위기가 다가오는 중이라고 여겨진다. K방산이 잘나가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와중에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간 간격이 크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DX KOREA 전시장에 마련된 K방산 중견·중소기업 부스.@뉴스임팩트

ㅡK방산 중견·중소기업들이 그리도 갑갑한 상황인가.

"K방산 수출이 증가하면서 대기업은 무서울 정도로 성장 중이지만 중견·중소기업 몫은 그다지 늘어나지 않았다. 중견·중소기업은 무기 체계 개발 역량을 보유한 대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가격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단가 인하, 투자 요청까지 받으니 고민이 많다."

ㅡ중견·중소기업들이 뭉쳐서 대기업과 협상할 순 없을까.

"협력사에 대한 대기업의 그립이 강한 K방산에선 힘든 일이다. 대기업은 영업비밀 유출을 무척 경계한다. 특정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견·중소기업이 다른 경쟁 대기업과 비즈니스 관계를 맺기 까다로운 제한이 존재한다."

ㅡK방산 양극화를 개선하려면 어떤 대책을 시행해야 하나.

"전문화와 계열화 정책을 적용해 중견·중소기업이 자기 분야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양극화가 완화돼 방산 생태계가 건강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 전문화는 특정 방산업체가 무기 체계 하나를 맡아 책임지고 완성한다는 뜻이다. 계열화는 무기 체계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 소재를 한 방산업체가 전문적으로 생산한다는 의미다.

"아울러 정부가 중견·중소기업의 장인 정신이 이어지게끔 상속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세금이나 다른 문제로 상속을 포기하는 중견·중소기업이 수두룩하다. 이대로 10년 정도만 지나면 K방산 펀더멘털이 송두리째 흔들릴 거다. 정부가 빨리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2022년 9월 FA-50 전투기 48대 수출 계약식에서 악수하는 강구영 KAI 사장(사진 왼쪽 두 번째)과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왼쪽 첫 번째).@출처=연합뉴스

ㅡ양극화 외에 K방산이 풀어야 할 현안은.

"5년 후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국내 방산 대기업의 총 수주 잔고가 100조원에 육박한다. 이 물량을 소화하고자 인력 보강도 했다. 이게 계속 갈 수 있을까. K2 전차, K9 자주포, 다련장 로켓 천무, 레드백 장갑차, FA50 경공격기, 유도 무기 천궁 II는 이미 글로벌 시장에 알려질 대로 알려진 상태인데 고객 선택을 받을 새 제품이 안 보인다. 새 제품을 내놓는 데 실패하면 K방산이 2030년쯤부터 수주 잔고가 소진돼 하락세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 정부와 방산업체가 경각심을 갖고 연구·개발에 힘써야 한다."

ㅡ기업 문화에선 K방산이 해외로부터 배울 점이 있나.

"있다. 해외 방산업체는 자유로운 조직 문화 속에서 최고경영자(CEO)의 성과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성장 전략을 추구한다. 현 프랑스 탈레스 회장은 10년이 넘게 CEO 자리를 유지하며 미래 성장을 이끌고 있다. 반면 K방산 기업은 조직 문화가 경직돼 있다. 기업들이 한창 해외 진출을 하는데 아직 시작 단계여서인지 장기적인 리더십을 가져가지 못하는 측면이 아쉽다. 길게 보고 더 유연해져야 한다."

ㅡK방산의 뜨거운 감자인 KAI 민영화 이슈에 대해 견해를 들려 달라.

"민영화 필요성이 있다. 정치 바람을 타고 낙하산 사장이 와서 2~3년간 경영하는 거로는 항공 사업을 못 키운다. 하지만 KAI를 인수할 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화그룹과 LIG넥스원이 주로 거론되지만 두 기업 모두 매우 신중하다. HD현대중공업이나 대한항공 정도인데 그쪽도 KAI를 인수해서 키워보겠다는 적극성은 없다. 시장에서 민영화를 못 해낸다면 정부가 교통정리를 해줘야 진척이 될 거라고 본다."

ㅡ정부 역할을 강조하는데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예전만 못하다. 정부가 다 잘한다고 하긴 힘들잖나.

"ADD는 지금 K방산에서 잘나간다는 무기 체계를 전부 개발한 기관이다. 그만큼 위상이 대단했다. 이젠 시대가 기업 주관 개발로 바뀌었고 ADD는 비닉(기밀 유지) 사업 위주로 한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다만 ADD는 여전히 탄탄한 엔지니어링 기반을 갖고 있다. 이를 활용해 ADD가 K방산 발전에 이바지할 연구를 해나갈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드론전문업체 숨비가 제작한 드론.@출처=연합뉴스

ㅡK방산이 미래전의 핵심이라는 드론(무인기)에선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데.

"K방산이 드론까지 잘하긴 어렵다. 국산 드론이 있다지만 부품이 대부분 중국산이다. K방산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쪽이 취약하다. 게다가 드론을 만들어 봤자 성능을 시험할 장소가 마땅찮다. 넓은 공역이 없는 데다 안정적인 주파수 대역 확보도 안 된다."

※ 공역은 비행 중인 항공기가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공간을 가리킨다. 드론은 통신, 제어가 무선 주파수로 이뤄지기 때문에 인터넷이나 블루투스로 주파수 간섭을 받으면 성능 테스트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드론에 손을 놓자는 얘긴 아니다. 방산의 본질적 목표인 안보부터 챙기자는 거다. 중국산 부품에 의존해선 유사시 드론 확충이 곤란하다. 수출에 연연하지 말고 소부장 업체를 육성한 다음 우리 군이 요구하는 수준에 맞는 드론을 갖추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다고 본다. 미사일, 잠수함, 전차, 레이더를 만들어 팔면서 드론은 왜 안되냐고 자책할 이유가 없다. 미국이 방산을 할 줄 몰라서 조선 MRO(유지·보수·정비)를 우리에게 맡기려는 건 아니잖나."

일본 해상자위대 수상 비행기 US-2.@출처=연합뉴스

ㅡ드론 외에 K방산의 약점이 있다면.

"K방산은 다소 폐쇄주의적 문화가 있다. 해외 방산업체와 과감하게 합작해 무기 체계를 제조하는 사례가 많이 나와야 한다. 유럽은 물론 일본 방산기업과도 협력을 타진해야 한다고 본다."

ㅡ일본과 손잡기엔 국민 정서가 용납하지 않을 텐데.

"과거는 과거대로 두고 실용을 우선해야 한다. 유럽을 보면 프랑스 방산기업이 독일, 영국 방산업체들과 기꺼이 협조한다. 1,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프랑스가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나. 그래도 이익이 되니 합심한다. 우리 역시 프랑스처럼 해야 한다. 일본은 헬기, 조선 등 우리와 공조할 수 있는 시장이 크다. K방산 기업들이 현지 방산업체와 힘을 합쳐 일본 시장을 공략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만하다."

계룡 KADEX 모습.@출처=연합뉴스

ㅡ서울 ADEX, 부산 MADEX, 계룡 KADEX, 킨텍스 DX KOREA 같은 국내 방산 전시회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있다. 해외 방산 전시회와 비교해 국내 방산 전시회가 보완해야 할 부분은.

"국내 방산 전시회는 이권이 너무 많이 걸려 있다. 그러니 육해공군이 따로 전시회를 하는 거다. 이를 당장 바꿀 순 없다. 서울 ADEX, 부산 MADEX, 계룡 KADEX는 그대로 유지하되 소규모이거나 중첩되는 전시회를 폐지해 방산업체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현실적이다. 전시회가 너무 많으면 방산업체가 감당 못 한다. 방산업체 입장에선 사업 평가 담당자들이 전시회에 올 가능성을 고려해야만 하기에 전시회 선별을 하기 어렵다."

"더불어 K방산 중소·중견기업들이 해외 방산 전시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적 뒷받침을 해주길 바란다. 당장은 외면받더라도 중소·중견기업들이 자꾸 해외에 나가야 판매 통로가 열린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