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만을 '미국만'으로 개칭한 트럼프 대통령@연합뉴스


[뉴스임팩트=이정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한번 파나마 운하를 언급했다. 이번에는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까지 거론하며 "미국 선박들은 무료로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과거처럼 운하 자체를 미국이 다시 되찾아야 한다는 식의 노골적인 요구는 없지만, 트럼프가 파나마 운하 문제를 끈질기게 제기하는 이유는 단순한 감정적 집착을 넘어, 미국 정치와 전략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파나마 운하, 미국의 힘을 상징했던 인공 수로=파나마 운하는 20세기 초 미국이 주도해 건설한 세계적 인프라 프로젝트였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전략적 수로를 완성함으로써, 미국은 군사적·경제적 초강대국으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테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파나마로부터 독립을 지원하는 대가로 운하 건설권을 얻었다. 이후 1904년부터 1914년까지 10년에 걸친 공사 끝에 운하는 완성됐다. 파나마 운하를 통해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 간 해군과 무역 선단을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세계 질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폭발적으로 증대시켰다.

하지만 1977년, 지미 카터 행정부는 파나마와 '토리호스-카터 조약'을 체결해, 파나마 운하를 단계적으로 파나마 정부에 이양하기로 결정했다. 1999년, 파나마는 공식적으로 운하의 완전한 통제권을 넘겨받았다. 이후 파나마 운하는 파나마 정부 산하의 '파나마 운하청(ACP)'이 독자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왜 트럼프는 파나마 운하에 집착하는가=트럼프 대통령의 파나마 운하에 대한 발언은 단순한 역사적 향수나 과거의 영광에 대한 집착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전문가들은 그의 발언 뒤에는 복합적인 동기가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첫째, 전략적 가치의 재인식이다. 세계 경제의 흐름이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파나마 운하의 전략적 중요성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중국의 해양 진출과 '일대일로' 구상 확대는 미국에게 있어 주변 해상로 통제의 필요성을 더욱 절박하게 만들었다. 런던정경대(LSE) 조너선 파웰 교수는 "트럼프는 과거 미국이 지녔던 해양 패권의 상징으로 파나마 운하를 인식하고 있다"며, "운하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것은 그에게 국가적 굴욕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둘째, 정치적 수사로서의 가치다. 트럼프는 "미국이 세계를 위해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파나마 운하 문제는 이 같은 레토릭을 강화하는 데 유용하다. "우리가 만들었는데 왜 비용을 내야 하느냐"는 식의 단순 명쾌한 논리는 그의 핵심 지지층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다.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 마리옹 르브르 교수는 "트럼프는 사실 운하의 운영권을 현실적으로 되찾을 수 없다는 걸 안다"면서도, "그는 애국주의적 감성을 자극하는 소재로 운하를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셋째, 경제적 이해관계다. 파나마 운하는 현재 미국 무역에 중요한 통로이며, 통행료는 연간 수억 달러에 이른다. 특히 LNG(액화천연가스) 수출이 급증한 최근에는 파나마 운하를 통한 미국산 에너지 수출이 더욱 늘어났다. 운하 통행료 면제 주장은 결국 미국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려는 경제적 계산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파나마의 반발=트럼프의 주장에 대해 파나마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 운영에 외국의 개입은 없다"고 일축하며, "운하는 파나마의 주권"임을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나마 운하 발언은 역사적 사실과 국제법 현실을 무시하는 측면이 강해 보인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전략적 현실감각과 정치적 계산이 맞물린 결과로 해서될 수 있다. 과거 미국의 힘을 상징하던 운하를 둘러싼 감정은 여전히 미국 보수층의 정체성 일부로 남아 있으며, 트럼프는 이를 누구보다 잘 활용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아무리 독불장군식이라고 하더라도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되찾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낮다. 오히려 이러한 주장은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과의 외교 마찰만 초래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발언이 실제 행동보다는 국내 정치용 수사에 가깝다고 진단한다. 그럼에도 당하는 파나마 입장에서는 섬뜩할 정도의 위협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