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 대통령(우)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연합뉴스


[뉴스임팩트=이정희 기자] 중국은 매년 9월 3일 항일전쟁승리를 기념하는 전승절 행사를 갖는다. 올해는 전승절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와 관련해, 중국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전승절 행사에 공식 초대할 방침이라는 소식이 일본 교도통신을 통해 보도됐다.

이 행사는 중국 현대 정치사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로, 전통적으로 자국의 군사력과 정치적 정통성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자리로 활용돼 왔다.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을 초대하려는 배경에는 단순한 외교적 제스처를 넘어선 복합적인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통적 반일 내러티브에 미국을 끌어들이다=‘항일전쟁’이라는 용어 자체는 중국 공산당이 자신들의 정권 정당성을 설명할 때 활용하는 핵심 역사적 서사다. 이를 기념하는 전승절은 통상적으로 일본에 대한 반감과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그런데 이 무대에 미국 대통령을 초청한다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넘어선 외교적 신호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과 같은 연합국 측이었으며, 일본 제국과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점을 부각시켜 트럼프 대통령의 참석을 ‘공동 승리의 기념’이라는 구조로 포장하려는 것이다. 이는 ‘반일 정서’를 국제화하려는 중국의 외교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동시에, 일본을 고립시키고, 미국을 자국의 역사 해석에 끌어들임으로써 동아시아 주도권 싸움에서 주도적 위치를 강화하려는 의도도 내포돼 있다.

◇트럼프의 독자 외교 노선을 활용한 미·중 관계 전환 시도=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1기부터 기존의 외교 규범과는 다른 독자적 접근을 취해왔다. 그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전통적 동맹 관계보다는 실용적 이해관계를 중시해왔다. 이러한 성향은 중국 입장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중국 외교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쇼맨십’을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군 열병식이라는 강한 상징적 무대에 그가 서게 된다면, 이는 단순한 외교 행위가 아니라 글로벌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치적 이벤트’가 된다. 중국은 이와 같은 무대를 통해 ‘G2 정상 간 화해’ 또는 ‘신냉전 해빙 무드’라는 이미지를 창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미국 조지타운대 국제관계학과의 로버트 캘러웨이 교수는 디펜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외교정책에서 상징성과 개인적 우호를 중요시하는 성향이 강하다”며 “중국 입장에선 열병식 초청을 통해 단순한 동북아 외교를 넘어서, 글로벌 질서에 대한 재구성 논의를 트럼프와 직접 하는 발판으로 삼고 싶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러 삼자 정상의 ‘비공식 회담’ 가능성=이번 열병식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까지 열병식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미·중·러 3대 강국의 수뇌가 한자리에 모이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된다. 이는 세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을 뿐만 아니라, 국제질서 재편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런 구도는 동맹 중심의 미국 외교정책과는 거리감이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중국은 트럼프 2기의 외교적 고립 성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내에서 러시아와의 유착 문제가 여전히 민감한 가운데, 중국은 이를 ‘중재자’ 혹은 ‘연결자’의 위치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동아시아 전문 애널리스트 사만다 글래스먼은 “중국은 전통적 동맹질서가 흔들리고 있는 시기를 기회로 삼고 있다”며 “트럼프의 독특한 외교 행보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다자무대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전승절 모습@연합뉴스


◇국내 정치 및 국제 여론전 차원의 이중 메시지=중국 국내적으로는 경제 침체와 청년 실업 문제 등으로 인한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대규모 열병식과 트럼프라는 세계적 인물의 초청은 내부 결속을 위한 강력한 카드가 된다. 동시에 국제사회에는 ‘중국은 고립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대중 압박을 시도하는 미국 바이든 정부에 대한 반격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 제안과 유엔 총회 참석 가능성은 미중 간 상호 초청 외교의 형식을 띠며 균형 외교 이미지를 창출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는 트럼프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설전을 공개적으로 벌인 과거 사례에 주목하며,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리스크를 감안해 전략적으로 방중과 방미 모두를 조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국의 이번 전승절 열병식 초청은 단순한 외교적 제스처가 아니다. 이는 미중 간 외교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고, 일본 및 미국 내 강경파를 견제하며, 중국 중심의 다자 질서 재편 가능성을 시험하는 복합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은 이러한 시도에 불을 붙일 수도, 반대로 예상치 못한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번 열병식이 단순한 군사적 과시가 아닌, 21세기 외교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