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김서정작가]소록대교에 진입하자 ‘드디어 소록도!’라는 탄성이 여리게 나온 건 오랫동안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청년 시절 소설 ‘당신들의 천국’ 영향도 있었을 것이고, 서대문형무소 문화해설 시절 서대문형무소 한센병사 영향도 있었을 것이고, 차별과 편견의 상징에 발을 디뎌 좀더 온전한 인간으로 발전하고픈 바람도 있었을 것이다.
겨울 하늘은 푸르게 맑았고, 섬 풍광 역시 거울에 반사된 듯 푸르게 맑은 바다 위로 봉긋이 솟아 아름답게만 보인다. 다리를 지나 주차장에 내려 주위를 살피는 동안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소록도와 한센병 환자 이야기는 돌덩이에 눌러져 있는 김장김치처럼 발효만 있을 뿐 사각사각 소리 내지 못하고 국립소록도병원장 안내 말씀 표지판에 화들짝 놀란다.
수탄장 안내글과 소나무숲@김서정 작가
“1. 소록도는 섬 전체가 병원이며, 한센인이 생활하는 공간이므로 지정된 장소 이외의 출입을 삼가시기 바랍니다.”3개의 말씀이 더 있었지만, 그건 1번 말씀만 명심하면 잘 지킬 수 있는 항목들이다. 즉 소록도 산책은 숲 답사나 관광이 아니라 문병 간 사람처럼 행동하면 된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행동을 버리고 엄숙한 마음가짐으로 다녀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스팔트를 건너는데, 여느 마을의 수호목인 느티나무 두 그루를 보고 긴장을 푼다. 병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아니라 사람 사는 마을을 찾아가는 어귀에 서 있다는 느낌이기에.
오래 차 안에 있던 답답함을 씻어 내기 위해 중앙공원으로 직진하지 않고 모래사장으로 다가가 바닥이 깔끔하게 보이는 바닷물을 만져본다. 냉동실처럼 차가운 온도를 기대했는데 차갑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고 밋밋하다. 그러다 보니 바다 건너 소록도로 강제 구금된 한센병 환자들의 참혹한 삶이 천 조각 하나 건져지지 않는다. 섬 전체가 병원이라고 하지만 그 순간만은 남해의 아름다운 섬 해안에 빠진 듯하다.
<당신들의 천국>을 보면, 갓 부임한 원장이 섬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한다. “섬 전체가 제법 커다란 공원 같은걸.” 그 말에 이미 거주하고 있던 보건과장은 그것이 착각이라는 암시를 주며 이렇게 말한다.
“그야 이 섬 이름이 작은 사슴 아닙니까. 섬 이름이 소록도(小鹿島)라고 지어진 것은 섬의 생김새 때문이 아니라 이 좋은 풍광 때문이라는 게 더 적절한 해설이라고들 하니까요. 하지만 공원이라면 또 진짜가 있습니다. 다음 마을이 중앙리라는 곳인데, 이따 들러보시면 아시겠지만, 그곳에 이 섬 전체 원생들을 위한 공원이 꾸며져 있습니다.”
육지에서 보면 아름다운 섬이 되고, 안에 들어서서 겉만 보면 공원이 되는데, 이윽고 돌부리 하나 풀 한 포기에도 한센병 환자들의 피와 뼈가 묻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묵직하게 만들어지는 곳, 정말 그냥 보면 좋고 알고 보면 아픈 곳, 이제 들어가야 한다.
중앙공원 내 구라탑@김서정작가
신발에 엉겨 붙은 모래를 털고 올라와 데크가 나 있는 소나무숲을 보는데 여전히 바닷가 마을로 들어가는 느낌만 온다. 어귀에 느티나무도 있고, 방풍림 소나무들도 열병으로 서 있고. 바닷가 삼림욕을 만끽하며 걸으면 육지 삼림욕보다 더 건강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 없으면서도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야 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채규태 가톨릭의대 한센병연구소 소장은 “한센병은 피부질환입니다. 피부 특히 말초신경에 오는 전염성 질환인데, 실제로 전염성이라고 해도 5천만명 인구 중에서 5명 내지 7~8명 약 1000만 분의 1이 못 되는 발병률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감염되었다 하더라도 1년 내지 2년 이내에 다제(여러 가지 약을 동시에 투여) 요법으로 완치가 됩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완벽하게 받아들여야만 소록도 산책은 여느 곳과 같은 건강 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록도해안길 산책에 앞서 마주한 ‘수탄장’ 안내판에서 섬 소록도는 역사 속 소록도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청소년소설 <소록도의 눈썹달>을 보면서 그때 느낌으로 감정이입을 해보자.
(수탄장의 소나무들 한 그루 한 그루가 다 엄마의 모습이고 아빠의 모습이었다. 그 소나무를 사이에 두고 엄마를 부르며 울부짖었던 시간들이 어느새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는데도, 성탄이와 달희 남매에게는 언제나 생생한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오빠, 여기 이 소나무가 엄마가 기대섰던 나무 맞지?” “그래. 바로 이 소나무. 나도 기억해.” 두 남매는 마치 연인처럼 수탄장 가에 늘어선 아름드리 소나무를 끌어안으며 옛날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오빠, 여기 이 나무 냄새 맡아봐. 엄마 냄새가 배어 있는 것 같아.”)
부모와 자식이 한 달에 한 번 떨어져 만났던 그 서러움들이 지금까지 소나무에 배어 있을까? 소설은 엄마 냄새가 배어 있다고 하지만, 강한 솔향기만 날 뿐 그 어떤 한숨도 탄식도 바람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감각은 무뎌도 발은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중앙공원을 보기 위해 가는 동안 남해의 절경에 감탄을 하다가도 중간중간 서 있는 안내판이 소록도의 절망과 통한을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읽지 않고 쭉 내달리면 기분 좋은 명소 관광이 되지만 장소가 장소인 만큼 그럴 수는 없는 법, 잠깐 소개를 한다.
“제비선창(조성년도:1950년 이전)-한센인들이 이용하는 선창은 직원이나 외부인들이 이용하는 관사지역의 선창(북관사 선창)과 구별되어 있었다 ~.”
“구 소록도갱생원 등대-1937년 환자에게서 갹출한 헌금과 그들의 노동력을 동원해 녹동항을 오가는 선박의 안전을 위한 등대를 소록도에 건립하였다 ~.”
“순천교도소 구 소록도 지소-조선 나예방협회로부터 건축비 전액인 3만 7,500원을 지원받아 약 5개월에 걸쳐 건물을 준공하고 1935년 9월 15일 교도소를 개청하였다 ~.”
“마리안느와 마가렛 관사-마리안느 스퇴거는 1962년 2월, 마가렛 피사렉은 1966년 10월 각각 이곳 소록도를 찾아와 한센병 환자와 그 자녀들을 위하여 헌신적인 봉사활동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으며, 한센병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한센병 환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하는 등 우리나라 한센병 퇴치와 계몽에 큰 역할을 하였다 ~.”
애기동백이 하얀 꽃을 피우고 있다@김서정 작가
이어, 소록도 구 녹산초등학교 교사, 소록도 구 성실중고등성경학교 교사, 소록도 병사성당, 소록도 자혜의원 안내판을 보다가 애한의 추모비 앞에 선다.
“애한의 추모비-국립소록도병원은 1916년 일본 총독부 영에 의해 개원되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원생들은 자치권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는 자들에 의해 협상대표자 84명이 처참하게 학살을 당했습니다 ~.”
문구 문구 스며 있는 내용은 한없이 슬프고 통탄할 일이지만, 안내판 주위도 그렇고 추모비 주위도 그렇고 한센병박물관 가는 길도 그렇고, 정말 겉만 보면 멋지게 조경된 정원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중앙공원이 더 궁금해지기만 한다.
그 길에 감금실, 검시실의 붉은 벽돌이 핏빛으로 다가와 움찔하다가 드디어 들어선 중앙공원 하얀 구라탑(救癩塔)을 보며 사람은 희망이 있어 사는 거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처연한 문장, 아니 모든 게 좋아진다는 바람이 있어야만, 모욕으로 고단한 하루하루를 견디며 직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소록도의 눈썹달>을 보면, 일제강점기 때 스오 원장이 이렇게 말했단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듣기 바란다. 나는 이 소록도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으로 만들 것이다. 너희들은 나와 함께 소록도를 최고의 공원으로 만드는 데 모든 힘을 다해야 한다.”
3년 4개월 동안 연인원 6만여 명의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 동원되어 조성되었다는 이곳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섬 바깥 그 어디에서 가장 좋은 나무와 암석을 가져다 놓았다는데, 나무에 온전히 경이로운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까?
그때 애기동백 하얀 꽃이 보인다. 겨울이라 더 곱고 순백으로 보인다.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빨갛게 멍이 든 빨간 동백보다 더 밝은 내일을 약속하는 듯하다. 그게 언젠가 차별과 편견이 없는 완벽한 인간 세상 실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좀처럼 해결되기 어려운 숙제를 숙고하게 해준 소록도 산책, 그래도 나오는 길에 바닷가 삼림욕이 준 기운이 오래 남을 것 같다. 아팠지만 나무들은 모질게도 잘 자라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