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김서울 재독 칼럼니스트] “너 페미야?“ , “너 페미니즘 뭐 그런거 해?“

슬프게도,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질문들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너는 정상이야, 아니면 비정상이야. 너는 우리 편이야, 아니면 남의 편이야. 대충 이런 의미들을 함의하는 이 질문들은, 어느새 „내가 너를 혐오하고 재단해도 되는지“를 확인하는 말들이 되어버렸다.

매일 남자편, 여자편, 개념 있는 편과 그렇지 않은 편을 갈라 한 시가 아깝다는 듯 쉬지 않고 아웅다웅대는 대한민국이다. 물론 세계적으로 봐도 다를 것은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성별갈등은, 어디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아주 극단적인 수준이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우선 그 논란의 중심에 선 페미니스트는 과연 누구를 지칭하고 있는가?
국립국어원에따르면1. 여권신장 또는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 2. 여성을 숭배하는 사람. 또는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라는 정의로 이 단어를 소개했다.

그러다 여성 단체의 강한 반발이 일자 1.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 2.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바꿨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어원이 1970~1990년대 신문기사를 근거로 들면서 용례(페미니스트)를 적용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2025년 현재 대한민국 정부 공인단체인 국립국어원은 페미니스트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라고 보는가?

아무래도, 여자에게 친절한 반대의 생물학적 성별을 가진 인간이 꼭 페미니스트라는 분류에 끼어야한다는 의견은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이런 정의는 최근에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논쟁을 떠오르게 만든다. 어떤 남자가 ‘퐁퐁’을 당하고 있는지, 어떤 남자가 ‘퐁퐁남’인지, 즉 ‘설거지론’에 대해서다. ‘퐁퐁남’이란 아주 두리뭉실하게 말하자면 아내에게 잡혀 사는 남편을 뜻하고, 그 용래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남자 경험이 있는 아내를 모시고 사는, 즉 더러운 과거를 가진, 이미 남들이 다 한 입씩 한 아내를 설거지하는 호구를 뜻한다.

광범위하게 이야기되고 꽤나 인기를 누렸다기에는, 실로 어처구니가 없을 만큼 혐오와 적의가 가득한 단어들. 진정한 남자, 멋진 남자의 반대급부로 쓰이는 이런 단어도 페미니스트에 들어가는 걸까? 페미니스트란 이런 호구들을 뜻하는 것일까?

실제로 2022년 한국 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페미니즘 지지에 동의한다고 밝힌 2030 남성들은 단 5.5퍼센트에 불과했다.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시행한 설문조사의 결과에서도, 페미니즘이 여성우월주의라는 것에 20대 남성의 60퍼센트 가까이가, 페미니즘은 남성혐오라는 의견에는 66퍼센트 가까이가 동의의사를 보였다.

이는 40대에서 60대까지의 이른바 기성새대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2030에서처럼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과 대비된다. 2030 남성들의 의견은 결국, 남성우월주의로 인한 혜택은 기성새대 남성들이 다 누리고서는, 현재의 젊은 남성들은 그로 인해 역차별만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에 대해 독일은 무어라고 정의할까? BPB(Bundeszentrale für politishce Bildung, 정치적 인식 개선과 교육을 위한 연방 본부)는 자체 정치 용어 사전(Das Politiklexikon)에서 페미니즘을 이렇게 정의한다;

“여성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정치적, 실질적 개입을 위해 힘쓰는 인권운동(eine Bewegung, die sich für politisch-praktische Maßnahmen zur Verbesserung der Lebenschancen von Frauen einsetzt)

여성이라는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지적이고 실질적인 장애물로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해 힘쓰는 이론적,학문적 노력(theoretisch-wissenschaftliche Bemühungen, die Diskriminierung des weiblichen Geschlechts als Barriere wissenschaftlicher (und praktischer) Erkenntnis wahrzunehmen und zu überwinden.)”

페미니즘의 실질적 유의어인 여성 권리 운동에서는 보다 근본적이고 자세하게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동등함을 위한 싸움(den Kampf von Frauen für die soziale, politische und wirtschaftliche Gleichstellung der Geschlechter.)
… 독일 연방 정부에 속한 당들은 각자 성평등을 위해 일정한 여성할당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도 성별에 따라 더 나은 삶과 직업을 위한 기회들은 완전히 평등하지는 않다. (Die im Bundestag vertretenen Parteien haben eine (unterschiedlich hohe) Frauenquote für die Besetzung von innerparteilichen Ämtern verabschiedet. Dennoch ist auch heute noch von einer ungleichen Verteilung von Lebens- und Arbeitschancen zwischen den Geschlechtern auszugehen.)”

물론 독일에서도 안티페미니즘을 외치는 목소리는 있다. 성별갈등도, 혹은 누가 더 차별을 당하고 손해를 보는지, 에 대한 논란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러나 적어도 여기서 페미니즘은 20대 남성들로 하여금 여자친구가 페미니스트라면 걸러야 한다( 2019,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57퍼센트 가까이 동의하게 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단어는 아니다.

독일 최대의 설문조사기관 중 하나인 Statista가 2021년에 시행한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67퍼센트, 그리고 남성의 84퍼센트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하지만, 페미니즘을 눈 뜨고 봐줄 수 있는가, 가 아닌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바라보는가에 대한 설문조사였다.

물론 표본공간의 설정이나 지역 등의 차이에 따라, 페미니즘이 가져오는 손실이 이득보다 크다라던지, 페미니즘이 전통적인 남성상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에 적지 않은 남성들이 동의하기도 했다.

독일에서 페미니즘은 절대로 마녀사냥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페미니즘이 한국에서처럼 남성을 역차별의 피해자로 만들고, 남성을 혐오하는 사상이며, 남성을 호구로 만드는 개념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페미니즘 또는 페미니스트가 한국에서 처럼 곧바로 전쟁을 선포하는, 혹은 완전히 금기시된 나쁜 단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만큼, 그에 대한 논의와 토론 역시 더욱 활발하다.

나 역시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그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여성이 어떤 분야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지, 반대로 남성이 차별받는 것은 어떨 때인지, 여성과 남성에게 따라붙는 이중잣대가 무엇인지,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할당제가 과연 효율적이고 실질적으로 좋은 제도인지…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서로를 무작정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들지 않고, 그저 우리가 앞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 타고 태어난 성별에 상관없이 인간답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우리가 무슨 노력을 해야 할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렇듯, 여기에도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사람들은 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한국처럼 갈등이 첨예하고, 혐오와 편 가르기가 사회 전반에 만연한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든 수준이라는 것이다. 아이러니하면서도 당연한 현상이다. 갈등이 심할 수록 더 열린, 그리고 합리적인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그런 종류의 건전하고 생산적인 대화는 멸종 직전에 이르렀다. 나날이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서로를 삿대질하는 목소리만 높아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모두가 열렬한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든지 따위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서로가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무턱대고 혐오하고 비난하는 일은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이다.

누가 잘못했고 누가 나쁜 사람인지, 가벼운 말들로 극단적인 꼬리표를 붙이지 말고, 일단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잠시 물러서서 내 의견을 검토하는, 조금만 덜 호전적인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그런 뻔하면서도,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바람이다. 3월8일 여성의 날을 맞으며 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