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파리 탐조대와 임진강@김서정 작가
[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파주 초평도 여울목에 위치한 동파리 탐조대 인근은 철새가 번식, 먹이활동, 월동을 위해 매년 찾아오는 도래지로 새와 주변 절경의 조화가 환상적인 곳이다.
독수리, 두루미 등 천연기념물과 수많은 기러기류, 오리류가 남북의 정치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생명활동을 하는 특별한 장소이다. 국가 철새연구센터는 새에 부착되어 있는 위치 추적 발신기로부터 철새 서식지 정보를 제공받아 환경변화, 기후변화, 질병 경로 등을 예측, 인간이 선제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 지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 민통선 안에 있는 동파리 탐조대 안내글이다. 지붕 없는 박물관이란 수식어도 있는 어찌 보면 뼈대만 남은 이층 식당집 같은 곳을 바로 올라가지 않는 건 가파르게 나 있는 계단 때문만은 아니다. 민통선 통과를 위해 통일대교 바리케이드를 지나 신분 검사를 하는 동안 받은 위축감이 이곳까지 따라왔기 때문도 아니다.
무언가 모르게 건너기 전 임진강 땅보다 강한 추위가 엄습하고 있어 조금이라도 더 오르면 몸의 기온이 급속도로 떨어질 것 같은 위협 때문도 아니다. ‘여울목’이라는 곱디고운 단어를 둘러싼 문장들이 철저히 인간 위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겨울 철새는 몽골이나 시베리아의 엄청난 추위를 피해 그곳보다 온난하고 먹이 활동을 할 수 있는 파주를 찾는 것일 텐데 왜 그 새가 환상적이라는 인간만의 감탄에 갇혀야 하는가? 남북의 정치 상황은 인간 역사이고 그에 따라 지형 변화가 이루어져 그들의 생명 활동이 영향을 받는데 왜 구애받지 않는다고 하는가? 환경변화, 기후변화를 주도적으로 일으키는 건 우리인데 그래서 갈수록 새들이 살기가 힘든데 무얼 연구해서 멸종을 막는다는 말인가?
가련하게 삐딱하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뇌까리는 거 관문을 지나 찾아온 풍경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하다. 과학으로 철새 도래 지역을 알리고 성심을 다해 새와 지구 살리기에 애를 쓰는 분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때가 되어 호기롭게 왔다 가면 그만인 나그네 같은 존재, 이제 조용히 올라가 부지런히 먹이를 찾는 겨울 철새를 봐야 한다. 보면 볼수록 더 많은 개체들이 안전한 곳에 머물다 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여울목처럼 세차게 흘러들 것 같으니까.
재두루미@박영숙
동파리 탐조대에 올라섰을 때 눈길을 먼저 사로잡은 건 기러기, 청둥오리, 재두루미들이 아니라 오염된 볏단 같은 얼음덩이다. 안내자 말에 따르면, 이곳까지 밀물과 썰물 현상이 벌어져 강이 얼기도 하고 갈라지기도 하며 그 어디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 만들어진단다.
빙하 시기 마지막 같은 끔찍한 상상은 잠시 자연 자체가 풀어놓은 신비에 넋을 빼앗긴다. 할 수만 있다면 얕은 곳은 걸어서 깊은 곳은 배를 타고 들어가 희기도 하고 검기도 한 기이하게 질척거리는 색감을 발로 담아보고 싶다. 그러면 분명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감각이 몸에 새겨져 새로운 인식이 열릴 듯한데, 끝나지 않은 전쟁이 만든 금지구역, 새처럼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폭탄으로 치솟는다. 이는 새만도 못한 활동 영역에서 얻은 감각으로 만든 언어 세계가 비루해지는 것 같아 그저 멍하니 탐조 없이 바라만 본다. 강과 얼음과 새와 겨울 나는 버드나무들이 자연으로 있는 현재만을.
동파리 탐조대를 떠나 해마루촌으로 가는 동안 겨울 논에서 하나, 둘 혹은 삼삼오오 모여 있는 재두루미를 본다. 임진강 건너 처음 재두루미를 마주했을 때 나온 탄성의 크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눈덩이로 맞는 듯한 감각은 이어진다. 간혹 차를 멈춰 바라보는 데 내리는 건 꺼려진다.
저 땅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사람들이 오고갈 텐데 그러면 나가도 될 텐데 어디서든 환하게 볼 수 있는 들녘에 서는 게 왠지 망설여진다. 새가 한 번 날려면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들기에 굳이 방해할 이유는 없지만, 그보다 긴장감이 만든 총알 하나가 이유도 없이 날아들까 하는 상황도 어이없을 듯해 겨울 들녘을 지나만 간다. 게다가 실제로 사람도 보이지 않아서.
해마루촌 무인 편의점에 들러 긴장을 푸는데 텅 빈 마을버스 휙 지나고 길 건너 기러기들이 떼로 소리를 낸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데 계속해서 사람은 보이지 않고 오는 내내 논에 가득한 기러기들을 봐서 마치 참새처럼 관심이 꺼지고 있었는데,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울리는 소리가 지진으로 들린다. 살짝 길을 건너 핸드폰에 소리를 담아 본다. 그러면서 질문이 생기는 데 알 수가 없다. ChatGPT에게 물어본다.
“기러기는 땅과 하늘에서 어떻게 소리를 내는가요?”
요점은 이렇다. 땅에 있을 때는 비교적 낮고 부드러운 소리를 내는데, 무리 간의 의사소통이나 경계를 위한 소리일 가능성이 크고, 비행 중에는 더 크고 선명한 소리를 내는데, 편대 비행을 하면서 무리 간의 거리 유지 및 방향 조정을 위해 사용된단다. 인공지능은 이렇게 말하는데, 왜 내 귀에는 땅의 소리가 심각하게 복잡하고 크게 들리는 거지. 틀린 말이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 소리를 얼마나 들어봤다고.
무언가를 감각으로 안다는 것,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검색이나 책 아니 이제는 인공지능으로 정리하고 넘어간다.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전기 에너지가 들어가지만 모르쇠하며 사용한다. 역시 삐딱하다. 안 할 것도 아니면서 꼭 짚고 넘어가는 이 모순이.
장산전망대에서 본 초평도@김서정 작가
이제 덕진산성으로 향한단다. 동파리 탐조대보다 훨씬 높아 남북 산하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란다. 기대에 들떠 있는데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 한쪽 다리를 저는 듯한 재두루미를 본다. 주변을 살피니 개천 건너 논에 서너 마리 재두루미가 보인다. 버려진 것인가, 홀로 버티는 것인가. 잠시 그가 절뚝거리며 움직이는 걸 보는데 한없이 마음이 아프다. 무얼 어찌 해야 하나 수심에 잠기다 일단 덕진산성에 오른다.
아픈 재두루미는 잊는다. 어디가 북한 땅이고 어디가 남한 땅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다. 이때 북쪽과 남쪽을 잇는 가장 인상적인 지형 파악은 김신조 루트인가 보다. 안내자는 개성을 가리키고는 이어 매현리, 임진강, 파평산, 앵무봉, 북한산을 손으로 쭉 그어본다. 10초도 안 되어 북에서 남의 수도 서울로 간다. 이럴 때는 새보다 빠른 건가.
분단의 역사, 산, 강, 나무, 철새, 우리들의 삶터 들이 겨울바람에 뒤섞여 감각을 혼란스럽게 버무릴 무렵 이를 눈치 챘는지 안내자는 바라보고 싶은 곳을 보면서 5분간 침묵 명상을 제안한다. 눈을 감든 눈을 뜨든. 일행들이 모두 따라서 해본다. 깔끔하게 흥정할 수 없는 장터 같은 이야기들이 멈추자 나뭇잎 달고 있는 참나무 서걱거림이 들려온다.
나뭇가지 사이를 부딪치며 지나는 바람 소리가 귓가에 다가온다. 동파리 탐조대 안내글에서 번져 나간 감당하기 어려운 문장들이 비워지며 몸이 가볍게 흔들린다. 이대로 기류에 쓸려 그 어디에 뚝 떨어져도 그러려니 할 듯한 기분이다. 불행도 행복도 없다. 자연일 뿐이다. 이어 이야기가 분주해지고 돌아 나오는 길에서 다시 본 아픈 재두루미가 마음을 짓이겨도 자연 명상 후 발생한 새 감각이 조금은 궤도 수정을 가한 듯하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게 자연이라는 것.
임진강역에서 가까운 게스트하우스 DMZ 스테이에서 일박을 한 후 다음날 독수리를 보러 파주 장산전망대에 오른다. 시린 하늘을 큰 날개로 가르고 있는 독수리에 감격하고는 건너편을 보니 어제 섰던 곳이다. 일행이 간 곳이 북한이 아닌 데도 마치 북한처럼 느껴진 건 하룻밤 사이에 오고 간 임진강 탓일까 아니면 그 사이 섬 초평도가 그어진 선을 더 부추겨서일까?
마지막 여정으로 독수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독수리식당으로 가려고 돌아서니 백패킹 텐트들이 눈에 들어온다. 물어보니 차량 접근성이 좋아 별 보기 최적의 장소란다. 눈앞으로 쏟아지는 별을 밤새 보았다는 그들의 말이 부러워 시샘이 나면서도 드디어 땅에서도 독수리를 볼 수 있다는 설렘으로 부리나케 하산한다.
임진강생태보존회에서 겨울에만 운영한다는 독수리식당은 사냥하지 않는 독수리 즉 사체만 먹는 독수리를 위해 먹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단다. 그들이 준 고기를 먹고 논둑에 앉아 소화에만 열중하고 있는 독수리들을 본다. 거대한 물체가 빙그르르 도는 모습에서 받은 경외감은 없지만, 안내자 말대로 게을러 보이지만, 그래도 모두가 노력해 자연을 자연답게 하려는 고투에서 높은 경외감을 가져간다. 그 모든 게 모두가 빚는 자연 작품이라는 걸 단단하게 옷깃에 여미면서 겨울 파주를 벗어난다. 언젠가 새처럼 자유롭게 누빌 날을 꼭 고대하며!
[김서정 작가 소개]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