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파제와 연결된 여수 오동도@김서정 작가


[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목적은 여수 밤바다였고, 엇비슷한 낭만포차에서 해산물을 먹었고, 거북선대교와 돌산대교를 돌며 야경을 보았고, 밤에 곯아떨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고 테라스에 섰는데, 오동도가 보였다. 일행은 오래전 가봤다며 혼자라도 다녀오라는 말을 한 것 같았다. 밤새 과식을 한 탓인지 조식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고, 짬을 내어 동백꽃과 동박새가 가득할 듯한 그곳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꽤나 멀어 보이는 길, 일출은 물 건너갔지만 여명을 흩트리며 서서히 하늘로 올라가는 해를 벗 삼아 걷는다. 요새처럼 견고해 보이는 여수 신항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건 거센 파도를 막는 기다란 방파제와 이를 튼튼하게 쥐고 있는 듯한 연결된 섬 오동도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 높아졌다는 호젓한 방파제 넘어 차가운 해풍이 볼을 때려도 마스크를 하지 않고 걷는 건 위협적으로 바닷물이 튕겨 오지 않아서일 것이다. 섬이라고 하지만 섬이 아닌 섬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개발에서 고립이 주는 불안 요소가 가볍게 거세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7백여 미터 걸으니 오르막 나무 덱이 나온다.

떨어져 보면 오동잎을 닮아서 오동도라고 불렀고, 그러면 오동나무가 많아야 할 텐데 고려 시대에 새로운 왕조의 출현이 두려워 봉황이 날아든다는 오동나무를 싹 베어버려 남아 있지 않게 되었고, 지금은 남부지방의 자생나무 동백나무가 3천여 그루 자라고 있다는 오동도, 스산한 그늘이 바닥에 퍼져도 일단 동백나무를 찾는 게 우선이지 싶다. 그때 왁스층 두꺼운 푸른 잎이 윤슬을 넘겨받아 빛을 발하는 듯해 동백, 동백 하며 호흡을 고르는데, 광나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찬바람을 이겨내는 상록성나무로 흰 꽃잎이 네 갈래로 갈라지며 암모니아 성분이 있어 나무 가운데 짠맛이 나는 ‘소금나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광나무라는 설명을 못 보았다면 잎도 수피도 동백나무처럼 보여 오동도에는 오로지 동백나무만 있는 걸로 오해할 뻔했다. 광나무는 물푸레나무과로 잎에 톱니가 없고, 동백나무는 차나무과로 잎에 톱니가 있다는 걸로 구분하는 게 순간 생각날 리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광나무를 처음 본 듯해서. 또한 동백나무 잎에 톱니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도 도통 기억에 없기에.

살갗을 으깨는 바닷바람에도 가시지 않은 숙취로 몽롱한 걸음인데, 무작정 광택 나는 나뭇잎을 달고 있는 나무들은 동백나무라며 무턱대고 감정이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무렵, 곰솔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국민들이 사랑하는 소나무 가운데 솔잎이 곰의 털처럼 억세어 ‘곰솔’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주로 바닷가 근처에 분포하며 믿음직한 소나무입니다.”

동백나무 숲@김서정 작가


수피가 검어 ‘검솔’에서 ‘곰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도 있는데, 남겨할 기억으로 오동도에는 곰솔도 있다는 것이다. 솔잎도 주워 매만져 보고 수피도 유심히 볼까 하다가 불현듯 진화의 시간이 연결된다. 곰솔은 씨가 겉으로 드러난 겉씨식물이고, 동백나무는 씨를 씨방 속에 품는 속씨식물이다.

겉씨식물에서 속씨식물로 진화한 건 효율적으로 안전하게 번식하기 위한 변화 과정이라고 하는데, <식물의 죽살이>를 보면, 속씨식물의 구조에서 혁신적인 부분이 꽃이기 때문에 속씨식물을 현화식물(顯花植物, flowering plant)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즉 겉씨식물은 사람의 눈길을 확 당기는 꽃이 없지만, 속씨식물은 각고의 노력인지 아니면 순간적인 돌연변이인지 그 진의를 정의해내기 어렵다고 해도 오감을 즐겁게 하는 꽃이 있어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가게 한다.

하지만 1월에서 3월에 핀다는 오동도 동백꽃이 1월 하순인 데도 보이지 않는다. 몽글몽글한 꽃눈만이 때가 아니라는 듯 숨죽여 정지해 있다. 동백나무 우거진 숲을 보고 또 봐도 속씨식물의 혁신을 접할 수 없어 또 와야 하나 하는 성가심이 발길을 더디게 한다.

남해 태양이 미세먼지 사이로 빛을 뿌리는 데도 숲속 어두운 기운이 벗겨지지 않아 마음까지 가라앉을 무렵 회백색 수피를 보여주는 나무가 빛처럼 다가온다. 바닷가 정자목 팽나무다. 가까이 서니 회반죽을 칠한 듯한 지의류들이 눈꽃처럼 번지고 있어 진화의 시간은 계속 거슬러 간다.

겉씨식물보다 더 오래전 지구에 등장해 암석을 흙으로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한 지의류 생태를 헤아리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래도 균류와 조류의 공생체이자 오늘날 환경오염 지표종인 지의류가 맑고 깨끗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오동도가 청정 지역이라는 것 아닌가. 이에 위안을 삼으면서도 생명을 생명 그 자체로 알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의식적으로 답사를 할 때마다 느끼곤 한다.

<마이크로 코스모스>에 나오는 글을 보자.
“이 책에서 우리는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소 다른 정의를 소개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기존의 모든 관념에 비하면 오히려 더 추상적이다. 또 이 새로운 정의는 이미 낡은 주술적, 종교적, 과학적 모든 정의보다 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생물, 즉 수분을 함유하고 탄소를 근원으로 하여 구성된 거대분자 조직체를 자가보전적 생식체로 생각한다. 생물을 자가보전적 존재로 보는 견해는 순환논리이다. 생물은 생식을 할 뿐 아니라,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맹렬하게 정보를 사용하고 저장하고자 물질대사를 수행하는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중심적인 주술적, 종교적 생명 정의는 간편할 수도 있고, 법칙으로 요약될 수 있는 과학적 생명 정의는 가늠이 가능하지만, 보이지 않는 원자들의 결합체이자 거대분자 조직체로 보는 생명 정의, 피 터지게 공부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세계일 것이다.

이런 생각은 눈에 보이는 나무에서 잘 알아채기 어려운 지의류,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 점에서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진술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급작스레 다가오는데, 다시 말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가 만든 보이는 세계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마음 편한 게 나는 인간이고 인간이 만든 언어활동을 충실히 하는 데서 만족감을 찾으면 될 것 같지만, 그러면 진짜라는 게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진짜를 찾으려는 욕심이 삶을 허무하게 만들기도 한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공복 탓인지 여전히 차가운 바람 때문인지 즐거워야 할 오동도 산책이 힘겹기만 해도 원점으로 가야 살 수 있는 구조, 중부지방에서 보기 힘든 푸조나무에 위로를 받으며 걷고 또 걷는데 용굴 전설 안내글이 나온다. 가는 길을 보니 외통인 것 같다.

동백꽃@김서정 작가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하는데,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일단 갔다. 동백나무 숲을 지나왔는데도 동박새 한 마리 못 보아 혹시 절벽이라도 가면 새를 볼 수 있을까 싶었다. 마침 바다로 선회하다 섬으로 되돌아오는 새가 보였다. 바다직박구리였다. 동박새를 못 본 서글픔이 살짝 녹았다.

생명으로 존재하지 않는 용에 대한 생각은 접고 다시 나와 중부지방에서 보기 힘든 천선과나무를 본다. 이 나무를 보았다는 건 이 나무를 알아서가 아니라 표지판을 보고 다시 보았다는 것이다. 그것만이라도 기꺼워하며 아래로 내려가 다시 뒤를 돌아다보는데 등대가 있다. 왜 그곳에 가려고 하지 않았을까? 일행들과 합류하기 위해, 아니면 몸이 지쳐서. 그것도 있겠지만, 등대를 보는 순간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 한 구절이 입안에서 웅성대서다.

“… 등대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등대를 볼 때마다 자동으로 떠올리곤 하는데, 머릿속으로 훑으며 입술을 옹알거리면 마음이 편해진다. 살려고 즐겁게 소리치는 것도 좋지만 한탄하며 비애를 갈구하면 역으로 살고 싶은 존재감이 악착스레 늘어난다.

등대 불빛이 밤배에 희망을 주지만 배를 타지 않고 상상하는 육지인은 박인환 시처럼 그저 말하고 싶은 의미를 자유롭게 부여하면서 살면 된다. 언젠가 보이지 않는 분자 아니 더 작은 존재들로 돌아가기에 보이는 거에 대한 연결에 규율이나 논리 같은 건 없으니까.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는 바닷가 옆 평지를 걷다 고개를 획 튼다. 동백꽃이다. 숲에는 없고 공원 분위기에는 있고. 과학 설명은 머리 아프다. 다 이유가 있겠지. 여수 밤바다를 찾은 것도, 오동도를 거닌 것도. 돌아 나오는 방파제에서 보이는 건 케이블카와 건물들이다. 여러 모습들이다.

그래, 오동도에는 동백나무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생명들이 등대와 달리 방향 없는 진화에서도 현재를 잘 지나고 있다는 걸 알고 가면 될 듯하다. 딱 거기에는 딱 그것만 있다는 좁은 생각을 버리면 될 듯하다. 그렇게 예정에 없던 조우가 인식의 지평을 넓혀 주어 고맙기만 하다. 아침에 만난 여수 오동도가!

[김서정 작가 소개]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