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박종국·이상우기자] 을사년 푸른 뱀의 해가 밝았지만 우리 사회는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다. 심각한 저출산으로 국방력은 약화하는데 계엄 정국으로 인해 국민 여론까지 두 갈래로 쪼개졌다.
국제 정세도 심상치 않다. 권좌에 복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기 집권 시절보다 더한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금기 사항이었던 영토 확장조차 밀어붙일 태세다. 트럼프만이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국제 분쟁 역시 해결될 기미가 없다.
국내외적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국방, 방위산업, 국제 정치에 걸쳐 탁월한 식견을 보여온 전문가가 있다. 군사학 박사인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뉴스임팩트가 양욱 박사를 만나 의견을 들었다.
양욱 박사는 1975년생으로 서울대 법대(학사)와 국방대 군사학과(석박사)를 나왔다. 민간군사기업 인텔엣지 대표이사,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위원, 합동참모본부 정책자문위원을 지냈다. 지금은 아산정책연구원에 재직하면서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 민간군사기업(Private Military Company)은 세계 각국에서 군사 컨설팅, 군납, 요인 경호, 특수 경비, 첩보, 공작 같은 군사 활동에 참여하는 민간 업체다.
ㅡ대한민국 최고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는데 법률가보다 군사 전문가 쪽으로 진로를 잡은 이유가 뭔가.
"범죄를 소탕하는 검사가 되자고 마음먹은 적이 있다. 그런데 친한 대학 선배가 검사가 된 후 달라진 모습을 보니 회의감이 들었다. 선배가 범죄자만 대하다 보니 세상을 너무 흑백으로 단정 지어 버리더라. 평생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관심이 많았던 군사 분야로 진로를 잡았다."
ㅡ법조인이 될 거라는 집안의 기대가 컸을 텐데.
"사법시험을 안 보는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제 결정을 믿고 행동했다. 대학 시절 컴뱃암즈라는 무기 잡지를 만들었다. 영화 쉬리 촬영장에서 배우들 사격 자세와 작전 동선을 잡아주기도 했다. 마니아적 관심에 그치지 않고 깊이 파고들었다."
ㅡ방산업체 입사는 고려하지 않았나.
"제가 병역 의무를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이행했다. 이 때문에 신입으로 방산업체에 들어가기가 애매했다. 그래서 후배와 함께 작은 회사를 꾸렸다. 해외 군수품을 일선 부대에 판매하는 무역업을 했다. 2~3년 해 보니 '큰 손'들에게 자꾸 시장을 뺏기더라. 큰 업체가 돈으로 물량 공세를 퍼부으면 작은 무역 회사는 버틸 수 없다. 결국 무역 회사를 접고 폭발물 처리 장비 회사를 새로 만들었다."
ㅡ폭발물 처리 장비에 손댈 생각을 한 게 놀랍다.
"제 역량보다는 같이 했던 직원들의 능력이 컸다. 게다가 대단한 첨단 기술이 필요한 사업은 아니었다. 완전히 새로운 폭발물 처리 장비를 개발하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장비를 임무에 맞게 개조해서 파는 비즈니스였으니까. 1~2년은 국내 위주로 사업이 잘되다가 난관에 부딪쳤다. 유럽, 중동 쪽 판로 확보가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중동에서 판촉을 하던 딜러가 제게 장비 판매보다 교육 훈련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중동에 날아가 현지 군인들을 대상으로 교육 훈련을 했다."
ㅡ민간군사기업은 그 이후에 차린 건가.
"중동에서 반년 이상 대(對)테러, 폭동 진압 교육 훈련을 하다가 귀국해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그때 선사에 있던 지인이 아덴만 해적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해상 보안을 담당한 해외의 민간군사기업 직원들이 비용만 많이 들고 고압적이어서 운항에 도움이 안 된다고도 했다. 제가 해상 보안 활동을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텔엣지를 설립해 해상 보안에 뛰어들었다."
※ 아덴만은 아라비아반도 예멘과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사이에 있는 만(灣)이다. 만은 바다가 육지 속으로 파고들어 와 있는 곳이다.
ㅡ총으로 무장도 했나. 국내법상 어려울 텐데.
"국내법이 아니라 외국법을 활용해 무장이 가능했다. 2010~2012년 해상 보안 일을 했다. 그런데 회사에 지분 문제가 생겨 손 털고 나왔다. 이후 군사 관련 글을 쓰거나 방송에서 해설하면서 국방대 대학원을 다녔다. 군사 혁신을 주제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주도한 군사 변환 정책에 대한 논문을 썼다. 럼즈펠드가 미군을 기동성 높은 정보화 군대로 바꿔 대테러 전쟁의 초기 승리에 기여한 점을 논증했다."
※ 럼즈펠드는 1975~1977년, 2001~2006년에 걸쳐 미 공화당 정부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대병력이 아닌 정예화된 소규모 부대를 중심으로 넓은 전장을 통제하는 전투를 선호했다. 민간군사기업 활용에도 적극적이었다.
ㅡ우리나라에 민간군사기업이 필요하다고 보나.
"병력 부족이 심각한 우리 실정상 민간군사기업이 역할을 해줘야 한다. 민간인이 드나드는 시설 경계 근무, 보급 임무 같은 건 민간군사기업이 잘 해낼 수 있다. 다만 민간군사기업을 쓸 때 인식을 바꿔야 한다. 민간군사기업이라고 하면 총 들고 용병처럼 활동하는 것부터 떠올리는 이들이 있다. 이런 편견을 깨지 않으면 민간군사기업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없다. 인식 개선이 하루아침에 되진 않겠지만 일단 명칭부터 민군협력기업으로 바꿔서 용병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ㅡ병력 부족 얘기가 나와서 질문하겠다. 입대할 병사는 줄어드는데 간부들의 군 이탈까지 심각하다. 군이 인재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매력적 조직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어떤 측면이 개선돼야 할까.
"우선 사회가 변한 걸 인정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일 땐 장교 출신이 엄청난 사회적 자원이었다. 100명을 지휘해 본 중대장은 회사에서 모셔가야 할 인재였다. 그렇지만 이젠 군 경력이 사회생활에 큰 이점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아울러 군은 스페셜리스트(전문가)보다는 제너럴리스트(다양한 분야에 경험이 있는 사람)를 진급시키는 조직이다. 제너럴리스트는 나이가 들면 기업이 쓰기가 상당히 애매해진다. 이를 감안해 군은 간부들이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도록 커리어 보장 프로그램을 짜줘야 한다."
"한 가지 유의할 건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해서 무작정 복무 기간을 줄여선 안 된다는 거다. 병사 복무 기간이 1년 6개월까지 줄어드니 장교를 안 하려 하잖나. 기간 단축은 신중하되 장교가 전역 후 장래를 개척할 수 있는 자산을 군이 마련해줘야 한다."
(다음 기사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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