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정의 숲과 쉼] 세 가지 욕망을 충족시키는 인천 무의도

김서정 승인 2024.12.28 10:56 의견 0

하나개해수욕장에서 본 국립무의도자연휴양림.@김서정 작가

[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 이전에 없던 섬 풍경을 보기 위해 눈 내린 다음날 인천 국립무의도자연휴양림을 찾았다. 숙박과 무관하게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입장료 1천원을 냈다. 그때 매표소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눈이 녹지 않아 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힘들 거라고. 겨울 산행 준비를 하지 않았기에 목적을 바꾸어야 했다. 언젠가 다시 올 기약을 하며 가볍게 걷다 하나개해수욕장 모래사장으로 향하는 걸로. 하지만 철 울타리가 단호히 바다 직행을 막았다.

무의도에 자연휴양림이 있다는 걸 안 거는 숲해설가 직무교육을 받을 때였다. 교육생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한 분이 그곳에서 숲해설을 한다는 것이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위치, 부러운 시선을 보내다가 왜 굳이 그런 곳에 숙박 시설을 만들었을까 하는 질문이 생겼다. 하지만 질문이 삐딱해 보였다. 좋은 곳이니까 저렴하게 쉼을 할 수 있는 시설, 그 설치에 반기를 드는 게 모양이 좋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찬성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테니까.

독채로 5인이 쉴 수 있는 숲속의집 숙박 시설에는 섬 이름이 쓰여 있다. 무의도, 실미도, 굴업도, 선미도, 초지도, 소야도, 문갑도, 선갑도, 덕적도, 대이작도, 소이작도. 서해로 더 나아가면 만날 수 있는 섬들이란다. 독채가 아닌 연립동 호실도 5인 기준으로 여덟 개가 있다. 여름 피서철 말고는 한적해 보이기 그지없는 이곳에 과연 사람들이 머물다 갈까 하는 의문이 만들어지는 순간, 그곳 관계자 분이 일러준다. 인천시 거주자라면 빠르게 예약할 수 있는 방법을. 하지만 언제 머물지 몰라 귀담아듣지 않으면서도 되물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냐고. 예약 사이트 열자마자 바로바로 찬다고 한다. 이곳도 여느 자연휴양림과 같구나.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붉은 청미래덩굴 열매.@김서정 작가

바다로도 못 가고 산으로도 못 가고. 그래도 눈이 치워진 포장도로만 걸으면 아쉬울 것 같아 살짝 흙길로 간다. 밟히는 눈에 미끄러질까 봐 조심하는 사이 한 나무를 유심히 바라보는 두 분이 보여 다가가 묻는다. 무슨 나무인가요? 맹감나무라고 한다. 맹감? 뭐지? 그분들이 가고 나서 그 나무를 보니 청미래덩굴이다. 전라도에서는 맹감나무 혹은 명감나무라 부르고, 경상도에서는 망개떡으로 알려진 망개나무라 부르고, 경기도에서는 청미래덩굴로 부른다는 덩굴성 목본. 흙갈색의 소나무 껍질 사이에서 바랜 듯한 초록을 머금고 빨개지는 둥근 열매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워진다.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 바닥에 깔린 흰 눈 배경이 압도적으로 모든 걸 제압하는 듯하다. 푸르고 빨갛고 검고 하는 모든 색의 변화들에게 순백으로 쉬라는 명령이 전달되고 있다고나 할까.

억지스럽다. 겨울숲에 가니 겨울숲을 어떻게든 느껴 보려는 볼멘 수작 같다. 하루라도 묵어 아침 바다라도 보고 나서 숲을 거닐면 전혀 다른 느낌이 새겨질 텐데 몰랐던 풍경 한 번 보겠다고 나선 길이 성가시기만 하다. 이 길을 타고 곧바로 바다라도 가면 마음이 출렁거릴 텐데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또 발길을 무겁게 한다. 얼른 안전하게 포장도로로 가고 싶을 뿐이다.

오래전 무의도 산행을 한 적이 있다. 배를 타고 선착장에 내려 국사봉으로 향했다. 내가 사는 동네 국사봉만큼 올라가기가 쉬웠다. 다만 오가는 사람들이 없어 살짝 무섬증이 일었다. 하늘은 흐렸고 바닷바람은 세게 불었고 헝클어져 있는 듯한 숲에서 귀신 한 무더기 튀어나올 것 같았다. 국사봉에서 호룡곡산으로 가는 구름다리를 건너지 않고 바로 아스팔트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집에서 길게 오고 짧게 산행하는 게 아까워 계속 나아갔다.

모든 게 가라앉는 듯한 무거운 공기에 어둠침침한 바람이 연이어 강타해 산 아래 보이는 바다가 낭만적이지 못했다. 그래도 완주는 해야 하지 않겠냐며 걷고 또 걷다가 데크 구석 어디선가 홀로 식사를 하시는 등산객 등을 보고 흠칫 놀라는 게 우스워 마음을 확 바꿔 편하게 산행을 마쳤다. 산도 타고 바다도 보고 해수욕장도 걷고. 한꺼번에 세 가지 욕망을 자극해 만족감을 얻었다는 기분으로 돌아온 무의도 산행, 황량하게 넓다가 좁게만 느껴졌던 그곳, 거기 어느 틈에 자연휴양림이 들어섰다는 것인지 확인이 끝났다.

그곳을 나서면서 긍정적으로 생각을 정리해 본다. 문을 열고 나와 마주한 숲속도 좋지만 탁 트인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묻은 나무 향기도 정말 좋을 거라고.

국립무의도자연휴양림 돌아보기가 끝났으니 다음 목적을 향해 하나개해수욕장으로 간다. 사운드스케이프 과제로 바다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그리고 혹 바다에서 휴양림으로 가는 샛길이라도 있나 해서. 샛길은 절대 없었고, 바다는 고맙게도 바람까지 마침 불어주어 높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를 보면 소리에 대해 이런 내용들이 있다. “맨 처음 지구에 울려 퍼진 소리는 오직 돌, 물, 번개, 바람에서만 났다. 이 소리들의 동력원은 태양, 중력, 지열이다. 첫 생명의 소리는 세균이 주변의 물에 내보낸 미세한 중얼거림, 한숨, 가르랑거림이었다. 세포가 소리를 내는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태초의 소리라고 할 수 있는 바다 소리를 들으며 그 진원지가 세균의 움직거림이라는 것, 가늠조차 안 된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파도가 오르락내리락 내 쪽으로 밀렸다 밀려 나갔다 펄을 쓸며 내는 소리라는 것뿐, 보이지 않는 세계 인식은 참으로 어렵다. 만일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 저자처럼 생명의 소리를 헤아리는 능력을 가졌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란 개체의 일차적 시작점과 나란 개체의 일차적 종착점을 강렬하게 인식해 그 어떤 굴곡의 삶도 시큰둥하게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 경지에 다다르고자 옷을 여미고 귀를 열고 바다를 오래도록 보려고 하지만, 발길은 그곳을 떠나려고 한다. 저자가 말한 “우리 귀는 조용한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진화했기에 주변이 지속적으로 시끄러우면 불쾌감을 느낀다”는 말에 공감이라도 하듯.

바다를 떠나기 전 뒤로 돌아 국립무의도자연휴양림을 본다. 한눈에 볼 수가 있다. 저곳을 산책할 때는 집들이 커 보였는데, 멀리서 보니 소나무 숲만 보이는 듯하다. 가려진 곳에서 아침을 맞이하면 좋을 듯하다. 그래 언제 한 번 꼭 묵어야지.

문득 이번에도 산, 바다, 해수욕장이란 세 가지 욕망을 충족한 듯하다. 거기에 소리까지 얹어지니 불평은 해댈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자연으로 간다>를 보면 “가장 광범위한 의미에서 ‘자연 결핍 장애’란 지각 능력이 쇠퇴한 상태, 즉 어떤 형태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생명들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능력이 감소한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퇴보는 우리의 신체와 정신, 또한 사회적 건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자연 결핍 장애는 극복할 수 있으며 우리의 삶은 자연과 맺는 관계를 통해 어마어마하게 풍부해질 수 있다. 그 출발점이 바로 감각이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풍경으로 바람으로 소리로 자연 감각을 최고로 올릴 수 있는 무의도 구석구석 탐방, 정말 그 언젠가 깊고 그윽하게 묵을 날을 기다리며 싸락눈 흩날리는 무의도를 떠난다. 이따금 훌쩍훌쩍 뒤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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