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룡지에서 바라본 황학산수목원.@김서정 작가

[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 숲해설가들이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경기도 여주시 황학산수목원에서 숲해설을 듣는다. 시작점에서 무슨 모임이냐고 묻지만, 단체로 놀러온 것이라고만 한다. 그래야 서로 부담이 덜 되고, 일반인들처럼 세세한 해설을 접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예약을 못했는데도 친절하게 시간을 내준 숲해설가가 매룡지 물가에 있는 왕벚나무 앞에 선다. 제주도가 자생지인 우리나라 나무이고, 나무껍질이 가로로 갈라지고, 잎보다 꽃이 먼저 나오고, 꿀샘으로 개미와 공생하고 등등 일행들도 늘 하는 내용을 펼쳐 보인다.

이어 평소 보기 드문 노각나무 앞에 서서 모과나무와 비슷한 수피, 꽃처럼 다섯 갈래로 갈라지는 열매를 가리키며 눈앞에 보이는 나무의 특징을 이야기한다. 계속해서 화백으로 다가가 그 아래에 떨어진 열매를 주워 냄새를 맡으라고 한다. 홍어보다 못하지만 코끝을 콕 찌르는 진한 향기에 추위가 확 달아난다. 그러면서 생각난다. 잎이 숨을 쉰다는 하얀 기공조선으로 측백, 편백, 화백을 구분한다는 것. 측백은 그게 없고, 편백은 Y자이고, 화백은 W자이고.

숲해설가 초기, 식물 지식을 해박하게 쏟아내는 숲해설가들을 보면서 많이 놀랐다. 그들처럼 되려고 나름 열심히 공부를 했고, 거기에 살을 좀더 붙이는 인문학 숲해설로 변별점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한 지점에서 말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게 잘하는 건 줄 알았기도 했지만, 새로운 발견이 주는 감동이 너무 커 기어코 토해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야 그 내용이 내 것이 되고 그래야 그것을 기반으로 더 기막힌 발견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올해 초 알았다. 같은 나무 같은 이야기를 몇 년 하다 보니 감동이 줄었고, 그건 열정적인 해설을 막았다. 새로운 발견은 막혀 보이지 않았다. 관습처럼 숲해설이 이어지다 보니 피곤이 금세 왔다. 모든 게 난감했다. 그래도 생계라 포기할 수 없어 새로운 선택을 했다. 짧게 해설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로. 반복이라도 지루해하지 말고 처음처럼 하기로. 식당의 그분들이 하루에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를 몇 번이나 하는지 헤아려 보면서. 먹고산다는 게 다 짧은 반복의 연속이라면서.

일행 앞의 저 분이 숲해설가 몇 년 차인지는 모르지만, 오시는 관람객들에게 똑같은 말을 몇 번 했을까? 그 가늠이 미안한 건 가는 내내 웃음을 잃지 않고 최대한 즐겁고 유쾌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아서다. 그래서 반성한다. 야외 숲해설은 저렇게 해야 한다는 걸. 짧지만 핵심만 짚어서 커다란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걸. 그게 잘 될지 모르겠지만, 좋은 해설을 하려면 다른 분의 해설도 자주 들어야 한다는 걸 깨우쳐 분의 숲해설이 마무리되어 간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학산수목원.@김서정 작가

일행들 손등에 편백나무 향수를 발라주고 가는 분에게 크게 감사하며, 잠시 되돌아 무슨 나무를 함께 봤는지 빠르게 떠올려본다. 희고 둥근 열매가 달렸다는 흰말채나무, 칠엽수처럼 끈적이는 겨울눈을 가진 황철나무, 솔잎의 수명이 3년이라는 소나무, 가장 겸손하다는 전나무, 본색을 드러낸 단풍나무, 정말 유다가 목을 맬 정도로 키가 큰 서양박태기나무, 우리나라 보리수나무, 꽃처럼 피어 있는 빨간 꽃받침이 아름다운 칠자화 등등.

여기서 언급한 나무 사이사이 더 많은 나무와 초본들이 있었지만 그래서 수목원이지만 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기억나는 건 나무를 가까이서 찍으려고 한 발걸음 안으로 디디는 순간 “들어가시면 안 돼요. 곤충들이 겨울 날 준비를 하고 있어요”라는 말이다. 곤충의 겨우살이, 곤충과 식물의 공진화 이야기가 없어도 그 한 마디에 여기가 생명의 터전이구나 되뇌며 반성을 한다.

이제 해설 없이 더 산책을 해도 식물 동정에는 큰 문제가 없다. 푯말이 있어서다. 그래서 식물 공부에는 수목원이 최적이다. 이름 떠올리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에 단점도 있다. 숲에 들어가면 식물 이름 알아내려고 생김새를 면밀히 보고 또 보는데 수목원에 가면 관찰 시간이 대폭 생략된다.

이름 알면 그 식물을 다 알았다는 듯이 기존의 지식과 맞물려 정리하고는 바로 이동을 한다. 변화무쌍하진 않더라도 시시각각 존재가 변한다는 인식을 얻기가 지난하다. 그러면 존재는 생동감을 잃은 채로 고정되어 있고 우리는 주체가 되어 그 대상의 변화만을 추구한다.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에 맞게 자연이 자원이 되어 철저히 인간 위주로 편집되면서 변형하게 된다. 그 모든 결과가 지금 기승전-기후위기가 되고 있는 셈이다.

생태신학자 토마스 베리 신부와 물리학자 브라이언 스윔이 함께 쓴 <우주 이야기>를 보면, “태초의 근원적인 힘이 우주를 탄생시켰다. 모든 에너지가 단 한 번의 폭발로 분출되어 단 하나의 선물을 남겼다. 그것은 바로 존재(existence)였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을 가지고 우주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원자들도 존재가 되고 그 원자들이 이렇게 저렇게 합해져 만들어진 개체들도 존재가 된다.

그렇게 되면 이 책에 나오는 “한 그루의 참나무를 이해하려면, 그 참나무를 성분 원소들로 분해하여 분석할 수 있음을 이해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원소들을 이해하려면 그 원소들의 고유한 작용 안에 참나무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을 배워야 한다. 그 각각은 다른 존재에 대한 진실을 알려준다. 참나무는 탄소를 드러내고, 탄소는 참나무를 드러낸다”라는 문장에서 탄소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탄소를 ‘생각하는 원소’ 또는 ‘생명의 원소’라고 말할 수도 있다”라는 문장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물질 가운데 탄소가 있으면 유기물, 없으면 무기물이라고 하는데, 탄소 자체도 존재로 본다는 인식, 처음 접하는 통찰에 놀라웠다. 그래서 “우주는 무력하게 객관적인 방식 안에서 생명력 없는 물질로 존재하는 실체라기보다는 서로의 존재를 환기시키는 실체이다”라는 문장에서 현상을 보여주는 물질들이 모두 살아서 움직이고 변화하고 생기 넘치게 흘러간다는 인식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그 인식이 지금껏 식물에 부여했던 의미가 절대적으로 주체의 오류일 수 있다고 보고, 이제라도 존재와 존재의 능동적 관계라는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해 볼 것이다.

탄소를 품었던 탄소를 품지 못했던 존재의 영역을 확대하면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 하나 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가 곧 하나다’라는 화엄 사상도 껴안을 수 있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그런 인식이라도 가져보려면 우선은 존재를 존재이게끔 하기 위해 수억 년에 걸쳐 터전을 잡은 식물이 느닷없는 인간의 개입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또다시 분투를 해야 하는 모습에 숙연하게 눈물부터 보여야 할 듯하다. 정말 그렇게 감정이입이 되면 지나친 고통으로 살기 쉽지 않지만, 그러한 생각만으로도 기후위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지 않을까?

단양쑥부쟁이.@김서정 작가

편백 향수에 취한 것도 잠시 친절한 숲해설가가 꼭 보고 가라고 해서 다가간 강돌정원의 단양쑥부쟁이 안내 글은 다음과 같다.

“단양쑥부쟁이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Ⅱ급’ 식물로서 여주 남한강 일원에 자생지가 남아 있는 세계 유일의 희귀식물이며 황학산수목원은 단양쑥부쟁이의 현지 내․외 보전을 위하여 연구를 수행중입니다. 진보라색의 아름다운 꽃은 10~11월까지 감상할 수 있습니다.”

다른 수목원에서도 이따금 볼 수 있는 단양쑥부쟁이를 이곳처럼 온전하게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같은 여주 지역이라 아무래도 환경이 비슷해서 그렇다고 볼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 눈앞의 꽃들이 안쓰러울 정도로 아름답지만, 1985년 충주댐 준공으로 수몰, 이후 홍수로 사라졌다가 2005년 여주 남한강변에서 대규모 자생지가 새롭게 발견된 것도 잠시 4대강 사업으로 사라진 단양쑥부쟁이. 이처럼 멸종 위기를 겪게 하는 인간의 개입도 있고, 또 황학산수목원처럼 복원을 위해 애쓰는 인간의 개입도 있고. 그렇다면 식물은 어느 존재들과 친밀하게 지내야 할까?

단양쑥부쟁이여 지치지 말고 잘 살아다오라는 당부를 보내며 전망대를 찍고 돌아 나오는 산책로에서 가을에 핀 개나리꽃에 대한 혼돈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 옆으로 길게 드리운 미선나무 둥근 열매에 큰 관심을 둔다. 오래전 충북 괴산에서 본 미선나무 자생지가 생각나서 말이다. 알고 보니 이곳 미선나무는 골프장 건설 부지에 있던 미선나무를 이전시킨 것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인간의 개입이다.

2024년 현재 희귀·특산식물 약 228종을 보존 관리하고 있다는 황학산수목원은 지난 11월 4일 국가 희귀·특산식물 보전기관으로 지정되었다고 밝혔다. 작은 존재가 모여 덩치가 있는 하나의 존재가 되기까지 그 헤아리기 어려운 존재들 간의 상호작용과 상호의존이 있었을 텐데, 흔적을 잃어가는 존재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는 친절한 존재들의 노력, 그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기만을 바라며 그곳을 떠난다. 가볍고도 무겁고도 가볍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