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나무가 일정 간격으로 심어진 공원에 들어서면 숲이 된 나무들이 생명의 기운을 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나무가 빽빽한 그늘진 숲에 들어서면 무섬이란 공포가 일면서도 인간의 서식지라는 걸 알고는 편안하게 힐링을 한다. 이 둘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서울숲이다.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를 화제로 여기저기 노랗게 물든 단풍 사진들이 눈을 들뜨게 한다. 우리 동네 은행나무 가로수로 만족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길을 나서 본다. 멀리 가지 못해도 가을에 꼭 가보고 싶었던 은행나무 숲이 있는 서울숲으로.
서울숲이 있는 곳은 서울 성동구 뚝섬이다. 중랑천과 한강 사이에 있는 뚝섬은 섬은 아니고, 지대가 낮아 한강에 홍수가 날 때마다 물길이 생겨 섬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고 있다. 이곳은 오래전 임금의 사냥터였고, 1908년 설치된 서울 최초의 상수원 수원지였으며, 이후 경마장, 골프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2002년 시민의 녹색 권리를 위해 뚝섬 개발사업 대신 대규모 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되었고, 서울 그린트러스트 운동을 통해 5,000여 시민의 기금과 봉사로 2005년 6월 18일, 나무가 우거지고 호수가 있는 도시숲으로 탈바꿈했다. 2021년까지는 비영리 단체가 공원 관리와 운영을 맡고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위탁 공원이었지만 지금은 서울특별시 산하의 동부공원여가센터에서 직접 관리 및 운영을 하고 있다.
서울숲을 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인분당선 서울숲역에 내리는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북한산으로 올라갈 수 있듯이 전철에서 내리면 바로 숲으로 간다는 안내가 도시를 떠났다는 느낌은 주지 않지만, 그래도 횡단보도 하나 건너면 북한산처럼 다른 세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 도시와 경계를 이루는 문지기 같은 느티나무를 지나면 노랗고 하얗고 보라로 피어 있는 가을국화 사이로 겨울을 준비하는 로제트 식물이 마지막 초록을 보여주고 있다.
숲가와 숲속이 뒤바뀐 듯한 모양새이지만 이는 서울숲의 랜드마크인 청동 군마상에서 금세 무뎌진다. 계속 달리는 듯한 경마에서 이곳의 주인은 엄연히 나무와 풀이 아닌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안으로 가는 내내 사람들의 모습이 늘어나고 있고 서울숲광장에 들어서면 롤 모델로 삼았다는 런던의 하이드파크 혹은 뉴욕의 센트럴 파크 같은 풍경 속에 가득 붐비는 사람들만 볼 수 있어서다.
가을과 겨울 그 넘어감의 색을 내비치는 잔디에 서서 서울숲 주위로 솟은 고층 건물이 이곳까지 들이치지 않은 것에 감사해 하며 오래전 신기해했던 두충에 다가간다. 아직 물들지 않은 녹색 잎이 살짝 아쉬운데 가을햇살 아래 문장을 읽는 젊은이가 눈길을 끈다. 수십 명의 젊은 남녀가 앉아 있고, 그 앞에서 무언가를 진지하게 읊었고, 끝나자마자 열렬한 환호성이 번진다. 잠잠해지자마자 또 다른 젊은이가 나와서 떨리듯 입술을 변화시키는데 기성시인의 시가 아니라 자작시 같다. 가까이 듣고 싶어도
나이 든 이의 주책 같아 본래 목적인 12그루의 두충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나무를 직관으로 보면 말없는 부동의 푸르른 생명이고, 나무를 앎으로 마주하면 수억년의 고투가 내게로 스며드는 경외의 대상이 된다. 은행나무처럼 두충도 이에 해당된다.
대략 2억 5천만 년 전에 나타난 은행나무는 현재 1종 1속 1과 1목 1강이고, 대략 공룡시대에 나타난 두충도 현재 1종 1속 1과이다. 이 말은 오래전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거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고, 덧붙이면 환경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적응의 진화를 했던 은행나무나 두충은 멸종되었다는 것이다.
숱한 종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지구사에서 이처럼 오랜 기간 일관된 외형을 보여주는 생명체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반추해서 기나긴 생명성이 내게로 스며드는 것 같고, 사람보다 더 먼 시작점을 가진 것에 경외심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단, 그 지식이 없으면 그저 수많은 나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자연 공부는 하면 할수록 1백년의 목숨이 우주 팽창처럼 확장되면서 억겁을 순환하는 무(無)의 인식에도 다가가게 된다. 꼭 특정 수행이 아니더라도.
오래전 익숙하게 마셨던 것 같은 두충차의 원재료인 두충은 중국 특산종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1926년인데, 중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들여와 홍릉수목원에 심었다고 한다. 한때 약용식물로 알려지면서 홍릉수목원 두충이 자손을 만들어 전국으로 퍼져 나갔으나 지금은 수익 목적으로 심지 않는다고 한다. 조경수 두충이 간혹 우리 주위에 있을 뿐이다.
두충 동정은 잎을 찢어 양쪽으로 당겨 보면 된다. 은색의 점액이 거미줄처럼 나타난다. 점액 성분은 구타페르카(gutta-percha)라는 고무질로 보통 열대지방의 고무나무에서 볼 수 있는데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두충이 유일하게 이 성분을 가지고 있다. 은행나무처럼 암수딴그루인 두충의 납작하고 둥근 열매도 역시 점액 성분이 있다. 그래서 열매가 달린 3그루 아래를 고개 숙이고 살피다 하나를 주워 당겨 본 뒤 그곳을 떠난다.
마음은 은행나무 숲으로 곧장 가고 있는데 너른 벌판 한가운데에 노랗게 솟아 있는 은행나무에 자연스레 이끌려 그리로 간다. 가깝고도 먼 사방의 가을 색감을 단숨에 잠재우는 듯한 자태가 발길을 잡아끈다. 그 앞에서 들뜬 자세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입에서 터지는 함박웃음이 온몸으로 번진다. 노랗게 노랗게 노랗게 물들지 않았다면 외롭게 살았을 텐데 겨울로 가는 문턱이 주는 선물이 은행나무도 기쁠 듯하다.
그래도 가을의 서울숲 최고 인기 장소는 은행나무 숲 같다. 전봇대 굵기의 은행나무들이 전나무 숲처럼 혹은 삼나무 숲처럼 빽빽하게 장대로 서 있는 풍경에 사람들은 감탄을 지른다. 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 때마다 후드득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이 마치 눈발처럼 설레 또 환호성을 보낸다.
간혹 바닥에서 올라오는 은행알 냄새가 느껴져도 땅을 덮은 수북한 은행잎들에서 나오는 듯한 그 향기만 온전히 몸에 배이게 한다. 보도블록에 떨어진 은행알로 지탄을 받던 광경은 무심으로 떨어지고 온전히 노랗게 물든 땅과 하늘에 취해 즐거움만 찌릿찌릿 감전으로 흐르는 시간일 뿐이다.
은행알은 열매가 아니라 씨앗이다. 즉 우리가 먹는 은행알은 배젖으로 씨앗 바깥의 변형된 껍질이다. 가장 바깥인 외종피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식물성 지방의 일종인 부티르산 때문이다. 이 강한 냄새가 은행의 씨앗에서 싹이 나는 것을 돕는다.
다시 말해 은행에는 꼭 필요한 냄새인데 사람들에게 역겹게 느껴진다. 다른 동물들도 그렇게 느낀다. 그래서 은행나무에는 해충이 없어 오래 산다. 아무도 다가가지 않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번식을 하나? 오래전 그 냄새를 좋아했던 매개 동물은 멸종되었다. 지금은 오직 사람의 힘으로 은행나무가 후손을 이어가고 있다.
장수하는 나무로 은행나무가 대표적인데 수명이 긴 이유로는 지속적인 생장, 노화방지 시스템의 작동, 외부 스트레스에 대한 강력한 저항력 유지 등을 꼽는다. 특히 노화와 관련한 유전자의 발현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는 세포분열의 속도만 느려질 뿐 은행나무는 사실상 늙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 한 종(種)이 그토록 오래 같은 모습으로 지구에서 살고 있다는 지식을 가지고 은행나무와 두충을 보면 이들을 관리한다는 인간의 생각은 초라해진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의 노동을 사 안전하고 편한 생존을 꾸려가는 듯도 하다.
이는 우리만 능동적으로 사고하는 존재가 아니라 비인간으로 나눌 수 있는 나무 같은 생명들도 지구의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사는 능동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서로를 보살피는 돌봄의 공존이 가능해지고, 이를 잘 새기면 새길수록 나무도 숲도 우리도 행복한 순간들을 수북하게 가질 수 있을 듯하다. 좋은 게 좋은 거, 그 느낌을 준 서울숲 마지막 가을햇살이 길게 이어질 것 같다. 추운 겨울에도.
[김서정 작가 소개]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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