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박종국·이상우기자] 생잔자(生殘者)란 단어가 있다. 전쟁에서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면서 끝내 살아남은 이를 의미한다. 생잔자는 근본적으로 영웅이다. 그들이 용감히 싸웠기에 평화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생잔자를 대하는 태도는 무례를 넘어 극악스럽다. 일부지만 '왜 살아 돌아왔느냐'는 식의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막말을 퍼붓는 사람까지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같은 민주주의 관련 사건에 대해선 한 치의 다른 목소리도 용납하지 않겠다며 눈을 부릅뜨는 이들이 생잔자에겐 지독하게 구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부조리에 맞서 결연히 싸우는 대표적 생잔자가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이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피격 사건 당시 잠수함 탐지 능력이 없는 천안함을 이끈 인물이다. 그는 북한 어뢰 피격 후 함정을 수습해 승조원 58명을 구했지만 경계에 실패한 패장이라는 모욕적 언사에 시달렸다. 뉴스임팩트가 최원일 전 함장을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최원일 전 함장은 대구 출신의 예비역 대령이다. 해군사관학교(해사) 45기로 임관했다. 초계함(Patrol Combat Corvette·연안 경비 함선)을 비롯해 여러 함정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2008년 천안함 함장으로 부임했다. 2021년 2월 전역했다.
ㅡ해군 장교를 택한 계기가 뭔가.
"고등학교 때까진 해사를 고려하지 않았다. 신문방송학에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병환 중이던 아버지가 제 이름의 유래를 들려줬다. 초대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에게서 '원일'을 따왔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해사 입교를 권유했다. 유언일지도 모를 아버지 말씀을 들어드리고자 해사에 들어갔다."
ㅡ천안함 피격 사건 전 해군 장교 생활은 어땠나.
"군 생활 대부분을 배에서 했다. PCC만 4번 탔는데 한 번 탈 때마다 임기 1~2년을 보내야 했다. 출동 나간 이후 가족들과 연락이 안 돼 고생했다. 요즘이야 전화가 되지만 제가 초급 장교였을 땐 전보를 쳐야 했다. 24시간 선박을 운항하다 보니 수면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ㅡ자폭설, 좌초설, 타국 잠수함 충돌설을 포함해 온갖 음모론이 아직도 난무한다. 천안함 피격 사건의 본질은 무엇인가.
"북한에 기습을 당한 거다. 2021년 MBC PD수첩 보도로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북한의 어뢰 공격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를 올렸지만 국방부가 무시한 사실도 밝혀졌다."
ㅡ천안함 피격 사건을 대하는 이명박 정부의 자세가 석연찮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안보를 잘 몰랐던 데다 남북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2010년 3월 27일 청와대 첫 입장이 '천안함 피격 사건이 북한 소행은 아닌 듯하다'였다. 그러니 보복 대응은 고사하고 사건 조사조차 제대로 될 리 있나. 민주당 쪽은 한술 더 떠 북한을 배제하고 자체 사고로 천안함 피격 사건을 규정하려 들었다."
ㅡ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보수 세력이 참 비겁했다고 여겨진다.
"이명박 정부가 제게 천안함 피격 사건 책임을 떠넘겼다. 그러다가 2010년 5월 15일 쌍끌이 어선이 어뢰 추진체를 발견했다. 북한 어뢰의 천안함 공격이 명확해진 거다. 이를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 전에 이명박 정부가 발표해 버리더라. 천안함을 선거에 이용한 셈 아닌가. 그러자 민주당은 천안함 피격 사건이 자작극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당 야당 진보 보수 가릴 필요 없이 정치 세력 모두가 무책임했다."
ㅡ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이 벌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단호히 대응하되 확전하지 말라'고 지시한 게 논란이 됐는데.
"대응하되 확전하지 말라는 건 하나 마나 한 소리다. 천안함 피격 사건에서 북한 소행을 확정 짓지 않으려 한 태도가 연평도 포격전에서도 나온 거다. 책임은 현장이 지고 이명박 대통령 본인은 회피하려는 의도다. 보수 정권이라면서 매사가 그랬다."
ㅡ한국은 전투 의지가 없다고 다른 나라 군인들이 비판한다는 뒷말도 나온다.
"청와대나 국방부, 합동참모본부가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때려야 한다고 딱 결정해 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 하니 현장이 우왕좌왕한다. 터키만 해도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해 버린다. 우리가 터키처럼 할 수 있나. 불가능하다. 그러니 북한이 우릴 우습게 본다. 한국은 말뿐이라는 거다."
"일부 정치 세력이 과도한 불안감을 키우는 측면도 있다. 북한은 러시아를 뒷받침하고자 우크라이나에 파병했다. 그 대가로 러시아는 북한에 미사일 기술을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 우린 어떤 대책이 있나. 우크라이나에 전투 무기를 지원하고 서방 진영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러시아와 북한을 자극해 한반도에 전쟁이 난다며 언급조차 못 하게 만들지 않나."
ㅡ326호국보훈연구소를 설립했는데 326은 천안함 피격 사건 당일을 뜻하나. 연구소의 목적은 뭔가.
"326은 천안함 피격 사건이 터진 날을 가리킨다. 326호국보훈연구소는 천안함 생존 장병들을 지원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천안함 생존 장병 국가유공자 등록 지원부터 안보 교육 강화까지 하고 있다. 올바른 호국 문화 조성에 힘을 보태려 한다."
"326호국보훈연구소는 천안함 생존 장병들이 발기인이다. 순수 후원으로 운영된다. 정치와는 일절 무관하다. 일각에선 저와 천안함 생존 장병들을 보수 세력으로 오해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보수라고 딱히 진보보다 천안함에 우호적인 것도 아니다. 심지어 현 윤석열 정권의 국방부는 천안함 피격 사건 왜곡, 폄하에 대한 처벌 조항을 천안함특별법에 넣어선 안 된다고 했다. 이 때문에 제가 올해 국군의 날 행사 초청을 사양했다."
ㅡ보수의 처신도 문제지만 함부로 천안함 피격 사건을 손가락질하는 진보는 더 큰 문제 아닌가.
"그래서 기록을 남기고 있다. 누가 언제 어떤 발언을 했는지 제 손으로 다 정리한다. 한순간의 폭발로는 저와 천안함 생존 장병에 대한 모욕을 해결할 수 없다. 법보다 기록이 강하다는 의지를 다지면서 버티고 있다."
ㅡ어떤 진보 인사는 '함장으로서 배와 운명을 같이 해야 했다'며 극언을 내뱉었다. 인간성이 의심되는 망발 앞에서 어떻게 멘탈을 관리한 건가.
"(전준영 천안함 생존 장병) 이건 분명히 하고 싶다. 함장님은 가라앉는 천안함에 남으려 했다. 장병들이 억지로 함장님을 구출했다."
"차라리 죽을까 생각도 많이 했다. 그래도 지금 되돌아보면 천안함을 멸시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절 살렸다. 그들이 음모론을 제기할수록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ㅡ군인이 아닌 민간인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어떤 지향점을 갖고 있나.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분노하지 않게 하겠다. 즉강끝(즉각·강력히·끝까지)을 원칙으로 말이 아닌 실천과 행동을 통해 진정한 보훈을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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