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정의 숲과 쉼] 오감으로 산책하는 일산호수공원종로에 가면 회화나무가 있다

김서정 승인 2024.10.23 14:00 의견 0
창덕궁 담넘어 보이는 회화나무@김서정 작가


[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창덕궁을 산책하려던 계획을 바꾼다. 돈화문 타고 매표소로 흐르는 담장 안 회화나무를 보고 있으니 오랜만의 벗들과 나들이, 닫힌 궁궐보다 열린 마을이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벗들도 이에 동의해 북촌을 걷기로 한다.

그곳을 떠나기 전 창덕궁 회화나무를 알려주는데, 럭비공처럼 생긴 녹색 열매가 주렁주렁 아래로 늘어진 모습에 눈길이 간다. 콩과 식물이라 말하고는 몸을 돌려 1972년 기준 수령 425년이라는 은행나무를 스치듯이 본다. 보호수라는 글자에 곧 노랗게 단풍이 들 장관까지 호흡이 멈추는 듯하다가 회화나무, 은행나무 공통점이 떠올라 의미 없는 웃음을 짓는다.

둘 다 중국에서 건너온 나무, 사대부가 좋아하는 나무, 모화사상 등이 이른 가을햇살보다 뜨겁게 오는 건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벗이 함께하기 때문인지, 늘 그랬는지 불분명하다. 쌓아온 지식의 기억 저 아래에서 그냥 치고 오르는 것 같다. 나무 인문학을 줄이고 나무 생태학으로 옮겨가려고 해도 애면글면 잘 되지 않는 궤도 수정에 기운이 쪽 빠진다.

북촌으로 곧장 가지 않고 잘 모를 것 같은 원서근린공원으로 벗들을 이끈다. 역시 창덕궁 주변을 숱하게 지나 다녔어도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단다. 벗들이 놀라니 안내자도 우쭐한다.

게이트볼장을 지나 울타리 없이 원형경기장에 모셔져 있는 듯한 회화나무를 본다. 벗들이 말한다. 왜 안내판이 없냐고. 주위를 보니 자연스레 열매로 자랐는지 뿌리로 올라왔는지 식재했는지 가늠이 어려운 키 작은 회화나무에 교복 명찰만한 이름표가 붙어 있다. 정말 아무런 설명이 없어 알고 있던 이야기만 짧게 나눈다.

중국에서 삼정승에 해당하는 관리들이 회화나무 옆에 섰고, 이는 지체 높은 양반들만이 회화나무를 가질 수 있다는 걸 말한다고. 그래서 궁궐과 양반들 집이 많은 종로에 오래된 회화나무들이 남아 있다고.

높은 건물에 품격을 더해 주는 회화나무 자태를 보면 보호할 가치가 충분한데 왜 보호 장치가 없는지 궁금해 자료를 찾아보았다. 2015년 5월 동아일보 보도가 있다.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본사(옛 현대그룹 본사) 옆에 있는 원서공원에는 수령 200년이 넘은 회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높이 17m, 지름 1m로 서울 도심에서 보기 힘든 대형 수목이다.”

수령이 파악된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보호수로 지정하자는 서울시 의견을 공원 토지를 공동 소유하고 있는 현대건설,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4개사가 반대했단다. 보호수가 되면 산림보호법 등에 따라 나무의 관리 주체가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별도의 관리업체까지 두고 애지중지 돌본 현대 측에선 아쉬움이 너무 클 수밖에 없어 양보를 안 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원서근린공원을 내려와 북촌으로 가는 길에 중국에서 온 벗이 묻는다. 왜 회화나무냐고. 근래에 회화나무 해설을 한 적이 없어 급하게 기억을 더듬는다. 생각나는 대로 말한다. 중국에서 온 말이라고 하고는 ‘괴(槐)’자를 떠올리는 데 입으로는 귀신 ‘귀(鬼)’를 중국말로 뭐라고 하는지 되묻는다. 벗이 ‘꾸이’라고 한 것 같아 얼른 마무리한다. 그 말이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회화나무가 되었다며. 즉 예술미가 풍겨 나오는 회화(繪畫)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정리하고는 발길을 재촉한다.

명쾌하지 않은 답변에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지만 명쾌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나이 탓인가, 머리 탓인가. 사실은 이렇다. 회화나무를 중국에서는 괴(槐) 혹은 괴수(槐樹)라고 쓴다. 꽃은 괴화(槐花)이다. 괴화를 중국어로 발음하면 화이화(huáihuā)가 된단다. 화이화에서 회화나무가 되었다는 게 일반적인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순간 ‘괴(槐)’자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아 그걸 귀(鬼)자로 읽었던 것이다.

꾸이, 화이, 둘 다 ‘이’로 끝나 비슷하게 들려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중국에서 넘어온 글자에 귀(鬼)자가 있어 회화나무는 귀신을 쫓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귀신의 존재 유무를 떠나 좋지 않은 기운을 멀리하고 좋은 기운을 갖겠다는 건 잘 살아보겠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 회화나무를 학자수(學者樹)라고도 부른다. 학업을 방해하는 나쁜 기운이 없으니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하라는 주문이다.

봉건시대에 과거 급제로 높은 벼슬을 얻는 길은 대략 양반에게만 있었다. 당연히 서민들은 회화나무를 가까이 할 수 없었다. 원천적으로 집 안에 심을 수 없도록 했다. 나무를 두고 계급성을 반영했다는 시절, 회화나무를 어떻게 보았기에 그랬을까? 어떤 이는 자유분방하게 가지를 뻗는 수형이지만 전체적으로 단정하게 보여 학자의 기개를 닮았다고 하고, 어떤 이는 구불구불한 가지가 곡학아세를 일삼는 어용학자를 닮았다고도 한다.

모두 인문학이다. 나무들은 토양, 햇빛, 물, 영양분, 바람 등 환경 조건에 따라 가지를 직선으로도 하고 곡선으로도 하고, 두껍게도 하고 가늘게도 하고, 전체적으로 둥글게 자라기도 하고 원추형으로 자라기도 한다. 즉 움직일 수 없는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남기 위한 분투가 그 나무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위계주의 관념은 들어갈 틈이 없다.

창덕궁에서 북촌으로 방향을 튼 건 왕보다 낮은 양반 동네가 나을 듯싶어서였다. 근대가 진행되면서 양반 계급이 무너지고 여전히 담장에 우열은 있지만 관념만은 서열 없이 사는 거리를 걷고 싶어서였다. 함께하는 벗들은 대학 동창들로 80년대에 민중 지향적인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들이 최고 권력의 상징 궁궐을 돌면서 나눌 이야기가 수그러들지 않은 여름볕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거기에는 관리가 잘 되는 궁궐의 나무보다 덜 관리를 받을 것 같은 나무들이 오랜만에 보고 싶어서였다.

2019년 나는 산림문화콘텐츠연구소가 진행한 ‘종로의 아름다운 나무를 찾아서’ 프로그램에서 숲해설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종로 구석구석을 나무를 중심으로 다녔다. 숱한 나무가 기억에 남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회화나무였다. 관훈동 회화나무, 창경궁 회화나무, 궁정동 회화나무, 조계사 회화나무, 정독도서관 회화나무, 사직단 회화나무 등등 오래되었지만 기품 있는 회화나무들이 선비 정신을 일러주는 것 같았다.

여기서 말하는 선비 정신이란 초심을 잃지 말고 기개 있게 꿋꿋이 자기 길을 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무와 다르게 세상 풍파 휩쓸리며 다니다보니 올곧지 못하게 변화무쌍하는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고, 종로에 간 김에 오랜만에 이를 극복해 보려고 회화나무 순례길을 급조했을까?

북촌 한옥 포토존은 사람들로 넘치고, 멀리 N타워 보이는 포토존도 이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빈다. 우리도 남들처럼 그 풍경을 담고, 북촌을 내려와 삼청동 은행나무 거리를 지나 잊혀진 피맛골로 향한다. 오래 걸었으니 술 한 잔이 더 맛있을 거라며.

중국에서 온 벗에게 보여주려 했던 헌법재판소 백송은 다음을 기약한다. 중국 소나무인 백송을 보려면 돌아가야 되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기무사 터에 들어선 국립현대미술관 옆 비술나무 삼형제를 지나는데 나무 이야기는 이제 흥미를 잃고 영화 ‘서울의 봄’이 화제로 오른다. 곧이어 코리안리재보험 앞 고가의 소나무를 보는데 강남의 신축 아파트 단지에 가면 수천만 원대의 소나무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막걸리에 전을 먹으며 가투 무용담을 나누던 흐릿한 기억은 올라오지 않아도 종로 밤거리는 어두워진다. 그때처럼 결기를 가지고 부어라 마셔라 할 수는 없어도 1차에서 2차로 사적이고도 공적이고도 사적인 역사는 쏟아진다. 헤어져 안국역으로 향하는데 거리의 나무들은 불빛에 가린 듯 음영으로만 보인다. 모든 게 지나간 세월처럼 흐릿하다.

취한 걸음으로 부지런히 걸어보는데 왼쪽 눈에서 섬광이 이는 것 같다. 강렬한 불빛이 온 몸을 당긴다. 우정총국 회화나무다. 변화를 갈망한 갑신정변의 피가 다시 흩뿌려지지 않도록 환하게 경계를 서는 것일까? 나무도 낮에는 밝고 밤이면 어두운 게 좋을 듯한데, 그 경계를 무너지게 하는 관리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 아프지 않을까? 이미 반쪽의 속이 죽어 대체물로 사는 데까지 살아가고 있는데.

지상에서 지하로 들어가며 생각한다. 도심의 삶이 지치고 힘들면 다시 그대 종로의 회화나무를 찾아 힘을 얻어가겠다고. 순례자처럼 화두를 걸고 걷겠다고. 인문학 없이 악조건 생태에도 견디며 살기에.

[김서정 작가 소개]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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