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정의 숲과 쉼] 오감으로 산책하는 일산호수공원

김서정 승인 2024.10.03 01:00 의견 0
사진@김서정 작가


[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경기도 고양시 일산호수공원에 가면 ‘나무권리 선언문’이 있다. 사람과 나무가 공존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일곱 가지 선언 가운데 제4조는 “숲은 나무가 모여 만든 가장 고귀한 공동체이며 생명의 모태입니다”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다시 가본 그곳에서 호수공원 이름답게 생명의 모태는 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녹지 공간 확장이라는 ‘나무권리 선언문’이기에 물이 들어갈 필요는 없고, 모태 앞에 붙이는 적정 언어는 상당수가 있어 토를 달 필요도 없다. 그래도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생각을 진전시켜 보니 동양 최대라는 인공호수공원이 원시 생명으로 다가왔다.

일산호수공원을 찾은 건 자원봉사자들이 시각장애인들과 일대일 짝을 이루어 산책하는 과정에서 일정 시간 소리교육 강사가 해설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자연의 소리를 배우는 실습생 자격으로 참관하는 것이다 보니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은 나무를 오래 안 보고 소리 내는 대상에만 관심을 주었다.

미리 도착해 일산호라고 쓰여 있는 표지석 주위에서 호수를 들여다본다. 물결은 밭고랑보다 아주 작게 이는 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귀를 세우면 세울수록 멀리 자동차 소음만 밀려온다. 돌이라도 있으면 던져 보고 싶다. 소음을 잠재우고 싶다.

1996년에 조성된 이곳은 한강하구의 배후습지로 논과 작은 하천이 있었다는데, 더 넓게 호수를 만들며 유원지가 아닌 자연생태공원을 표방했다는데, 어디선가 개구리 한 마리 뛰어들지 않나 집중을 해도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래된 연못 / 개구리 뛰어드는 / 물소리 퐁당’ 같은 시적인 경험은 물 건너 간 것 같다.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가을로 가는 길목, 부지런히 소리를 내는 풀벌레를 볼까 싶어 움직이는 온갖 것을 혈안이 되어 찾는다. 은빛 난간을 살살 기어가는 바늘구멍보다 큰 생명체가 보인다. 누구의 유충이 아닐까 싶어 조심스레 사진을 찍는다. 그 친구가 소리 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침묵으로 사라져 공허해지면서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려고 한다. 열정 가득한 상상은 나중에 허탈했다. 인간에게는 명명백백한 해충, 모기였기에.

만일 그 순간 그가 모기였다는 걸 알았다면 해충이 아니라 온전한 생명체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모기가 없으면 모기의 유충 장구벌레를 먹는 개구리도 생존하기 어렵다는데, 일부 물고기들도 사라질 수 있다는데, 일부 식물도 수분을 못 할 수 있다는데…. 그래서 지구 생태계를 만드는 생명체들은 저마다 존재 이유가 있다는 생명존중 사상이 감미롭게 다가왔겠지만, 밤에 귀청을 윙윙거리는 모기가 나타나는 순간 파리채가 빠르게 요동치는 팩트, 깊이 생각하면 모순적이다.

정발산역에서부터 걸어온 일행을 만나 천천히 산책을 시작한다. 맨 뒤를 따라가면서 질문이 생긴다. 시각장애인은 왜 청각이 발달했다고 생각할까? 생명체들의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면 금방 이해가 될 듯하다. 우리가 잘 살아가려면 외부 환경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인식하고 처리해야 하는데 사람의 경우는 시각이 80%, 청각이 10%라고 한다.

사진@김서정 작가


보이지 않기에 정보 처리가 험난할 수 있으니 생존을 위해 듣는 걸로 정보 처리 힘을 키워야 할 텐데, 뇌가 구조적으로 이를 가능하게 해준단다. 뇌 가소성이라고 한다는데, 시각장애인의 경우 대뇌피질의 청각영역을 발달시켜 예민한 청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난생처음 시각장애인들과 걸어보는 상황이라 그분들이 듣는 소리는 나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증은 더해간다. 그때 강사가 표지석에 쓰여 있는 정지용의 시 ‘호수’를 읽어준다.

“얼골 하나야 / 손바닥 둘로 / 폭 가리지만 // 보고픈 마음은 / 호수 만하니 / 눈 감을 밖에”

평상시라면 참 좋은 시라고 여기겠지만, 상대를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 같은 이들에게 평상시의 모습이 보고픈 마음을 호수처럼 넓게 한다니, 어떻게 들었을까? 내가 그분들이 아니라 오류가 날 수 있는 감정이입은 접기로 하고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무슨 소리가 들렸냐는 강사의 질문에 답한 한 분의 소리에 놀란다.

“이쪽은 새 소리가 주로 들렸고요, 저쪽은 차 소리가 주로 들렸어요.”
길을 두고 양쪽 소리를 나누어서 들었다는 말에 몸 상태가 인식을 다르게 한다는 게 와 닿는다. 다른 소리를 들었다는 다른 분의 말에 획일적인 몸 상태는 없고 모든 생명체가 개별 영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걸 늘 명심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게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없던 감각>에 나오는 다음 글에 공감이 간다.

“시각과 청각은 언뜻 생각하면 순전히 기계적인 과정일 것 같다. 광자가 망막의 빛 감지 색소에 닿으면 일련의 전기, 화학적 사건이 발생하여 뇌에 빛, 색, 움직임에 대한 신호를 보낸다. 서로 다른 주파수의 음파는 속귀(내이)에 있는 달팽이관의 각기 다른 부분을 진동시키고, 그 결과 우리는 음높이를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은 전체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다. 모두 동일한 감각 구조로 되어 있다 해도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필요, 욕구를 바탕으로 저마다 다른 매우 개인적인 버전의 세상을 지각한다.”

선천성인지 후천성인지 개별 사연들이 다 있을 시각장애인을 두고 청각 기능에만 관심을 두었던 나를 반성하며 일산호수공원 소리에 주관적으로 집중해본다. 찍, 찍 새 소리가 들려 뒤를 보니 먹이 활동을 하는 새가 보인다. 무슨 새인지 가늠이 안 되는데 강사가 말해준다.

“지금 들리는 새 소리는 직박구리예요. 잔디밭에서 지렁이를 먹고 있는 저 새는 대륙검은지빠귀예요. 외국에서는 흔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새인데, 어느 날 텃새가 되어 있네요.”

전체적으로 검은 모습에 노란 부리를 하고 있는 대륙검은지빠귀는 이곳에 먹이가 풍부해져 텃새화된다고 한다. 그의 소리를 들어보려고 잠시 뒤처져 보는데,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다. 포기하고 얼른 일행을 따라가니 여치, 매부리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또 기다려 들어볼까 망설이는데 시각장애인 한 분이 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여기는 금연구역인데요” 하니 “지나온 사람에게서 냄새가 났어요” 한다. “어디선가 몰래 피웠나 보군요”라고 말하니 나 보고 담배 피우냐고 묻는다. 오래전 끊었다고 하니 아주 잘했다고 칭찬한다. 시각에서 청각으로 가는 생각들이 복잡하지만 전혀 생각지 않은 시각장애인의 후각 반응에 좁디좁은 내 인식이 넓어지는 것 같다.

사진@김서정작가


일행은 능수버들이 늘어져 있는 다리에 서서 물을 바라본다. 잉어, 가시연꽃, 수련, 연꽃 들이 오래된 연못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강사는 ‘천안 삼거리 능수야 버들아’ 노래를 들려주며 능수버들을 만지게 해주고 미리 준비한 연꽃과 연밥도 손으로 느껴보게 해준다. 이제 무언가 먹기만 하면 오감이 다 사용되는 것일까? 아니지. 이분들은 시각장애인이니까 하나가 생략된 것이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담배 이야기를 나눈 분과 팔짱을 하고 있던 자원봉사자가 연꽃에 왜 가시가 있느냐고 묻는다. 자기를 지키기 위한 가시가 있어서 가시연꽃이라 부른다고 말해주고 이동을 하려는데, 일행이 아닌 어떤 분이 “저거는 연꽃이 아니네. 왜 저런 게 여기 있지”라며 지나간다. 말해줄까 하다가 그냥 가버린다. 보는 만큼 느끼고 사는 것이니까. 자기 상태에 따라 저마다 사는 것이니까. 아무 문제없는 것이니까.

우연히 뒤에 처진 우리들은 길가에 있는 풀과 나무를 보며 걷는다. 자원봉사자가 그들의 생김새를 알려주다가 강아지풀보다 크게 자란 풀 이름을 묻는다. 수크령이라고 알려주는 데 기분이 좋다. 숲 공부한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수 있다니.

휴식 시간에 일행과 간식을 먹는다. 미각이다. 곁에 가서 느낌을 묻고 싶지만 참관인이다. 그분들은 계속 걷고 우리는 그곳을 떠난다. 가는 동안 다시 호수를 본다.지구에 등장한 감각 있는 생명체들이 최초로 교감한 비생명체의 소리는 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물소리가 가장 듣기 좋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일산호수공원 물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래도 오감을 열려고 애쓰며 걸어본 일산호수공원 산책, 보기만 했던 산책보다 다섯 배의 즐거움은 있었던 것 같다. 그분들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이 부족해도 온몸을 사용해 오감을 자극하니까. 그래야 사니까.

[김서정 작가 소개]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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