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매미가 혼신을 다해 소리 내는 여름이 절정에 있다. 가로수이든 도시숲이든 뒷산이든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 여름은 여름이라 느낄 수가 없다.
소리와 소음은 주관적이기에 기준이 불분명하다고 하지만 더위에 지청구하고 싶은 사람에게 매미의 구애는 악다구니이고 한없이 무기력해지는 심신에 바늘이라도 꽂고 싶은 사람에게 매미의 떼창은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일 것이다.
“오, 친구들이여, 이 소리가 아니오! 더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 환희여! 환희여!”
실러의 시 앞에 베토벤이 직접 써 넣었다는 가사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다. 이때 베토벤은 청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듣지 못하는 음악가가 더 기쁜 소리를 원했다는 대목에서 들을 수 있는 자는 원하지 않아도 들어야 하는 매미라는 존재에게서 무엇을 읊어보려고 했을까?
중국 서진 시대의 문학가 육운(陸雲)은 매미를 두고 문청렴검신(文淸廉儉信) 5덕을 갖춘 곤충이라고 했다. 매미의 곧게 뻗은 입이 선비의 갓끈과 같아서 문덕(文德), 수액만 먹고 살아서 청덕(淸德), 곡식을 탐하지 않아서 염덕(廉德), 집을 짓지 않고 나무에서만 사니 검덕(儉德), 허물을 벗을 때와 울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서 신덕(信德).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임금과 왕세자가 쓰는 익선관의 매미 날개는 위로, 신하가 쓰는 관모의 매미 날개는 옆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 모두가 매미의 오덕에서 비롯된 것이다.
참 그럴 듯하다. 1억년 전이든 2억년 전이든 30만년 안팎의 세월을 가지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보다 훨씬 더 오래전 지구에 등장했다는 매미가 지금처럼 살아가는 건 딱 하나 생명이 생명으로 남을 수 있는 법칙에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두고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번식을 동반한 성장, 번식과 거의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는 대물림, 외부적 생활 조건의 직간접적인 작용과 사용 및 불용에 의한 가변성, 생존 투쟁을 초래하는 높은 개체 증가율, 자연 선택의 결과로 나타난 형질 분기와 덜 개량된 형태들의 멸절을 포함한다”라고 썼는데, 이는 곧 어떤 생명의 삶이 딱 다섯 가지로 정리될 수는 없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 매미 오덕은 인간중심 사상이 만들어낸 간결한 자연 이해일 수가 있다. 즉 262~303년을 살았다는 육운의 매미 오덕을 매미가 나올 때마다 꺼내 든다는 건, 그 미덕을 지키지 못하고 만들어낸 환경 때문에 낮에만 울던 매미가 밤낮으로 울어야만 하는 적응 시기가 왔는데, 그 고충의 주범이 우리라는 것, 배신의 느낌이 난다.
그렇다면 매미를 자연중심 사상으로 바라다본다는 건 뭘까? 매미는 왜 매미처럼 살아가는지, 그 모습을 온전히 보는 게 아닐까 한다. 즉 의인화시켜서 제대로 지켜내지도 못하는 오덕 같은 거 잊고 매미가 어떻게 이웃 생태와 연결되어 살고 있는지, 그 연결점에 있는 생명들은 또 어느 생명들과 연결되어 있는지, 모두가 동등한 원에서 이루어지는 생태 시스템 파악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생명들이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방식을 알아가다 보면 우리가 특별히 무언가를 해서 이룩해야 하는 게 사실은 자연을 인공으로 바꾼다는 걸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 밥해 먹기 힘든 여름, 뜨거운 닭칼국수를 먹기 위해 집을 나선다. 우리 동네 가로수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에 눈길을 준다. 역시 매미들이 붙어 있다. 그런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참매미일까, 말매미일까? 곤충도감에 의하면, 참매미는 ‘밈밈밈밈미~’ 하고 울고 말매미는 ‘차르르르’ 운다고 하니 들어보면 알 수 있는데, 도통 침묵을 하고 있으니 외양으로 동정해야 한다.
참매미 몸은 검은색이고 녹색, 황색, 흰색 무늬가 섞여 있고, 말매미는 몸이 전체적으로 검은색이라고 하니 눈앞에 매미는 참매미이다. 그런데 참매미는 벚나무, 참나무류, 아까시나무, 소나무 등에 붙어 있고, 말매미는 양버즘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버드나무 등에 붙어 있단다. 그럼 눈앞에 나무는 말매미인가?
참매미나 말매미, 모두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갖춰진 모습일 텐데 인간이 붙인 이름, 그 이름 때문에 인간이 고생하고 있다. 그래도 떠나지 않고 좀더 본다. 혹시 매미가 쏘는 오줌 세례라도 받아볼까 해서다.
동아사이언스 기사를 보면, “매미는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300배에 달하는 나무의 수액을 마십니다. 수액에서 영양분만 섭취하고 나머지 95%인 물은 오줌으로 배설합니다”라는 내용이 있고, 이어서 “매미는 오줌을 1초에 최대 3.16m의 속도로 발사하고 한번 오줌을 눌 때마다 최대 0.574mL의 오줌을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라는 연구결과를 싣고 있다. 이는 매미는 곤충임에도 불구하고 포유류처럼 오줌을 싼다는 것인데, 많이 마신 만큼 단번에 빨리 많이 싸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매미가 싸는 오줌은 수액일 뿐이다. 즉 사람에게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 고로쇠 수액은 듣기만 해도 괜히 힘이 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한 번 맞아보고 싶었지만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자리를 뜨려는데 좀더 위로 매미의 허물 껍질인 탈피각이 보인다. 천적인 새가 잠든 사이 즉 밤에 우화를 하기에 보기가 쉽지 않지만, 탈피각을 보며 그 과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신비감이 돈다.
한 몸에서 똑같은 한 몸이 자연스레 나오는 장면, 도대체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산 매미와 죽은 매미가 쌍둥이 같다는 것인가? 번데기 과정을 거치는 완전탈바꿈을 하든 애벌레에서 바로 성충이 되는 불완전탈바꿈을 하든, 껍질을 벗어가면서 완전한 생명체가 만들어졌다는 것, 수억년의 진화 과정에서 터득한 곤충들의 생존 방식이겠지만, 모두가 필멸인 생에서 그렇게까지 했다는 노력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닭칼국수를 먹고 집으로 가는데, 보도블록 위에 죽은 매미가 보인다. 뒤집어 보니 수컷 매미다. 진동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밥 한 끼 먹으러 왔다 갔다 하는 시간에 매미의 삶과 죽음을 자연스레 본 셈이다. 닭칼국수를 몇 번이나 더 먹어야 죽음이 오는지, 닭칼국수가 만들어지기까지 전 세계적 네트워크가 작동하면서 내뿜는 탄소 발생을 언제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지, 그러면서도 매미에 마구 의미를 부여해대는 삶이 어지러워진다.
여기에 더 머리를 지끈거리게 하는 건 더워야 지상에 나오고 더워야 성충이 되어 짝짓기를 하고 그래서 덥고 더운 도시에 몰려 있는 매미들의 수명에 대한 자료를 보다가 수학이 연결되는 걸 보아서다.
국립생태원 블로그에 있는 글을 보자.
“매미의 수명은 땅속에서 굼벵이로 사는 기간까지 합하면 7년, 13년, 17년입니다. 수명이 소수인 매미는, 수명이 합성수인 천적들을 만날 확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소수는 다른 수와의 최소공배수가 크기 때문에 다른 생명 주기의 천적을 만날 확률도 낮고, 다른 매미끼리의 경쟁도 피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 말은 매미의 수명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면 소수, 합성수, 최소공배수 개념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글을 보자.
“100년 동안 수명이 7년인 매미는 수명이 6년인 천적과 7과 6의 배수가 겹치는 해인 42년째, 84년째, 이렇게 딱 두 번 마주칩니다. 하지만 수명이 8년인 매미는 24년마다, 수명이 9년인 매미는 18년마다 생애주기가 6년인 천적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수학 개념을 몰라도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현재의 매미들은 소수 숫자를 산다는 것이다. 1년 더 오래 살 경우 일찍 죽는 것보다 1년 덜 살더라도 안전하게 제 수명을 다 산다는 것이다.
수명도 숫자도 다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인데, 그 틀로만 봐도 매미의 삶은 들여다볼수록 경이롭기만 하다. 오덕으로 인간과 연결된 삶만이 아닌 자연 생태의 관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그래서 그 안에서 많은 걸 인지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우리 주위의 생명체라는 것이다. 그 인지의 끝은 생태적 관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일 것이고 말이다.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르는 곳,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
실러가 생각하는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무엇이든, 베토벤이 생각하는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무엇이든, 이 더운 여름 매미 소리와 날개에 환희를 얹어보자. 우리도 살기 위해 소리를 내고 매미도 살기 위해 소리를 내고, 그 안에서 매미와 우리가 형제가 되는 상상을 해보자. 뜨거운 여름 잘 나기 위해서!
[김서정 작가 소개]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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