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우의 전쟁영화 이야기(22)] 독일인의 시선으로 만든 서부전선 이상없다

최진우 승인 2024.06.30 01:00 | 최종 수정 2024.07.01 13:49 의견 0
넷플릭스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 [뉴스임팩트 자료사진]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위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은 영화산업에도 통용된다.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에서는 전쟁을 주제로 한 수 많은 영화들이 헐리웃에서 쏟아졌다. 영국과 러시아에서도 전쟁 관련 영화는 무수히 많이 양산했다.

하지만 패전국 독일과 일본은 전쟁과 관련한 영화는 한동안 금기시했다. 독일에서는 패전이후 나치를 찬양하거나 나치의 상징물(하켄크로이츠)를 사용하는 경우 형법 86조 제2항에 따라 처벌해왔으니 2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영화를 찍는데 상당한 제한을 받았다.

그런 독일에서 모처럼 전쟁영화를 소재로 만든 것이 ‘서부전선 이상없다’(2022년)다. 이 영화는 독일의 대표적인 소설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1차 세계대전 소재 동명소설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레마르크는 실제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했다. 그는 1916년 사범학교 재학 중 징집되어 제1차 세계대전 중 가장 참혹한 전투가 벌어졌던 서부전선에서 부상을 입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세계대전을 두 차례 일으킨 독일은 2차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1차 세계대전에서도 패전해 주변국들로부터 천문학적인 징벌적 배상과 함께 영토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그런 독일 영화계가 레마르크의 소설을 소재로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찍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1930년과 1979년 미국 헐리웃에서 영화로 제작된 적이 있었지만, 독일에서 영화로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영화에서는 독일군이 독일어로 대화한다. 앞서 헐리웃에서 제작한 영화에서는 출연진 모두가 영어로 대화해, 뭔지 모를 위화감과 이질감을 느끼게 했던 것과 비교하면 참신한 느낌마저 준다.

넷플릭스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이 영화는 시종일관 무겁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신이 나서 군대에 자원한 앳된 청년들이 그 악명높은 서부전선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겪으면서 급격히 바뀌는 과정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또렷히 보여준다.

1차 세게대전 당시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치열한 참호전을 벌였던 서부전선은 양측 합쳐 300만명의 희생자를 낸 살육의 현장이다. 말이 전투지, 양측 모두 3~4미터 깊이의 참호를 파고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면서 불과 수 백미터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백병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희생자가 쏟아졌다.

영화에서 보여준 전투씬은 결코 멋있지도, 영웅스럽지도 않다. 오직 살기 위해 적을 죽여야 하는 참혹함만이 가득하다. 주인공 파울 보이머(펠릭스 카머러 분)는 숱한 전투를 겪으며 살아남았지만, 휴전을 불과 몇 시간 남기고 마지막 전투에 차출되어 프랑스군과 피튀기는 공방전을 벌이다가 끝내 숨을 거둔다.

그러면서 영화는 독일의 패전을 확인한 베류사유 조약이 독일인에게는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주어 2차 세계대전의 단초를 제공했음을 암시한다. 물론,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에 반발해 아돌프 히틀러라는 희대의 독재자를 지도자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두 번 모두 패하는 전범국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만다.

이 영화의 각본을 맡은 레슬리 패터슨은 오래전부터 원작 소설에 매료되어 영화제작을 위한 판권을 사들였지만 영화제작에 필요한 자금마련이 쉽지 않아 트라이애슬론 대회에 참가해 거기서 받은 돈으로 판권만 수 십년간 갱신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레슬리 패터슨이 영화감독 이안 스토켈과 함께 판권 갱신에 지불한 돈은 총 20만달러에 달하고 처음 판권매입부터 영화제작까지 걸린 기간은 무려 16년이 걸렸다고 한다.

영화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체코에서 촬영되었고 촬영기간은 55일이 소요되었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되자 미국에서는 이 영화에 환호했다.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서 독일출품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독일에서는 원작을 심하게 각색했다는 이유로 악평을 받았다. 메이저 언론 중 하나인 베를리너 차이퉁은 “최악의 영화”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고, 실제 독일 최대 영화제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하는 데 실패했다.

평점: ★★★★★ (5점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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