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⑥]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바뀐 아르헨 밀레이 대통령

군소정당 자유전진 정당 출신 아웃사이더
  아르헨판 트럼프 정부무능 공무원 모조리 해고 주장
  집권후 페소 가치 폭락 1만페소 등장

최진우 승인 2024.05.12 02:00 의견 0
밀레이 대통령@연합뉴스


[뉴스임팩트=최진우 전문위원] 지난해 아르헨티나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정가에서는 괴짜 정치인으로 통했다. 그는 자유지상주의를 신봉하는 경제학자이자 극우성향의 정치인으로 기존 정당정치와는 결이 다른 길을 걸어온 아웃사이더였다.

정치입문도 늦었지만, 정치경력이라고 해봐야 2021년 총선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 밀레이가 군소정당들을 규합해 조직한 ‘자유전진’(La Libertad Avanza) 소속 후보 중 단 2명이 당선됐는데, 그 중의 한 명이 밀레이였던 것이다.

그런 그가 2023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30년간 반복돼온 경제실정에 진저리가 난 젊은세대들이 기성정치인들보다는 좀더 참신한 이미지를 가진 밀레이에게 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거칠고 투박해도 경제만 좋아진다면야 극우성향이라도 괜찮다는 심리가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밀레이는 선거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못지 않은 거친 언행을 보여주며 집권당의 실정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기성 정치인은 부패한 집단이며, 정부는 무능해서 정부 공무원들을 모조리 해고해야 한다는 과격한 언사도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막상 대통령에 당선되고 정부 수장으로 오르면서 그의 행보는 선거 때와는 180도 달라졌다는 평을 받는다.사회주의와 공산당을 극도로 혐오하던 그였는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당선축하인사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사회주의자라며 공격했던 룰라 전 대통령을 취임식에 초청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그런 그가 지금은 힘겨운 물가와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경제불안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최근 1년 사이 물가가 300% 가까이 오르는 등 말 그대로 나라사정이 말이 아니다.

새로 발행한 아르헨티나 최고액권 1만 페소 지폐@연합뉴스


더욱이 달러 대비 환율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어 자국의 화폐(아르헨티나 페소)가치는 최근 5년 사이에 95%나 떨어졌다. 별 것 아닌, 물건을 살 때도 뭉칫돈을 들고 다녀야하고, 제법 비싼 물건을 사려면 가방에 화폐뭉치를 넣어서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함은 일상이 된지 오래다.

밀레이는 작년 선거과정에서 자국화폐인 페소를 폐지하고, 달러화를 법정화폐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페소가치가 불안하니, 아예 달러를 법정화폐로 쓰면 화폐가치도 안정을 되찾고 물가불안도 해소될 것이란 논리였다.

하지만 그러자면 법정화폐로 쓸만큼 충분한 양의 미국달러화를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이 보유해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아르헨티나의 외환보유고는 남미에서도 거의 밑바닥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르헨티나는 이미 외환위기로 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은 전력도 있다.

밀레이 대통령이 최근 인플레를 막겠다며 1만페소짜리 초고액권 화폐를 새로 찍기로 한 것은 페소화폐 폐지주장이 사실상 공약이었음을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한 차례 고액권을 기존 1000페소에서 2000페소로 2배 올렸음에도, 불과 1년만에 다시 1만페소짜리 고액권을 내놓은 것은 뭉칫돈을 들고다녀야 하는 국민들의 불만을 우선 잠재워야겠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번 조치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국민들 사이에서는 물가불안을 잠재우지 못하는 밀레이 정부에 대한 불만의 소리가 커지고 있다.

물가불안에 페소화로 월급을 받으면 즉시 달러로 바꾸는 현실이 계속된다면 에콰도르처럼 정부가 도입하지 않아도 달러화가 시장에서 법정화폐 지위를 차지할 날이 멀지 않은 듯 하다.

작년 대선에서 집권당의 경제실정을 집요하게 공격하며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밀레이로서는 이제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태세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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