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가치가 속절없이 떨어지면서 엔달러 환율은 한때 1달러=155.40엔을 기록했다. 엔달러 환율이 155엔을 넘어선 것은 34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1990년 6월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엔화약세, 이른바 초엔저 현상은 일본경제는 물론, 일본인들의 일반생활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출기업에는 호재로 작용하지만, 에너지 수입 등 수입물가에는 대형악재로 작용하면서 그동안 대표적인 물가안정국가로 유명한 일본의 위상을 뒤흔들고 있다. 엔저 덕분에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관광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숙박 및 외식물가를 끌어올려 관광업과는 상관없는 일본인들로서는 달갑지 않은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 현지취재를 통해 초엔저 현상을 겪고 있는 일본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다. <편집자주>
[후쿠오카=최진우 전문기자] 미국 달러화에 대한 일본통화(엔)가치 하락을 뜻하는 엔저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미국 등 세계 각국 중앙정부가 인플레에 맞서 싸우기 위해 앞다퉈 금리를 올렸을 때 일본은 나홀로 제로금리 정책을 고집했다.
이같은 제로금리는 기본적으로 일본 최장수 총리였던 아베노믹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아베는 내수경제를 끌어올려 GDP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엔화를 꾸준히 풀었고, 이를 통해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고, 기업의 채무부담을 낮추는 한편 금융회사들의 부실채권 부담을 완화해주려고 노력했다. 여기서 나온 것이 제로금리다.
일본의 제로금리는 그러나 코로나 이후 세계 각국이 금리를 고속으로 끌어올리면서 시험대에 올랐다. 특히 미국은 코로나 기간 각종 지원금 명목으로 천문학적으로 풀린 돈 때문에 인플레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시절 때만큼 급등하자, 거의 1년 6개월에 걸쳐 금리를 끌어올려 1% 미만이던 금리수준을 5.5%까지 상승시켰다.
취재중 만난 후쿠오카대학 상학부 와타나베 겐니치 교수는 “인플레를 우려한 미국이 금리를 크게 올리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엔화를 매도하고 달러를 매수하는 움직임이 강해지면서 엔화약세 현상이 일어났고,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인상을 지속하는 기간 엔저현상은 갈수록 심화됐다”고 말했다.
적당한 엔저는 일본경제에 실보다는 득이 더 컸다. 엔저 덕분에 세계 곳곳에서 일본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크게 늘어나 관광산업이 특수를 누렸다. 일본관광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4년 만에 최대치인 2507만 명으로 집계됐다. 그중 한국인이 696만명으로, 전체의 28%를 차지하며 1위에 올랐다.
워낙 많은 관광객들이 일본을 방문하면서 일본 곳곳은 일본인 반, 외국인 관광객 반이라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후쿠오카에서 이자카야 식당을 운영하는 고바야시씨는 “식당을 방문하는 손님의 절반 이상이 한국인 관광객”이라면서 “외국인 관광객이 너무 많이 몰리는 곳은 일본인들이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유례없는 엔저로 인해 관광객이 몰리면서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숙박비와 외식비 상승이다.
후쿠오카 지역의 일반호텔 숙박비는 지난 수 십년간 거의 1만엔을 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1만5000엔을 넘는 곳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만큼 가격이 급등했다. 외국인관광객에게만 비싸게 받는 것이 아니냐는 희심도 들었지만, 호텔 로비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보면 내외국인 구분없이 그렇게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후쿠오카 하카타역 근처 J호텔 매니저는 “기본적으로 인건비 부담이 너무 커져서 호텔들이 숙박비를 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호텔을 유지하려면 청소인력 등 수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이들의 인건비가 최근 2년 사이에 많이 올라서 이를 보전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가격을 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외식가격도 오르고 있다. 식자재 가격이 오르고 가게를 유지하기 위한 인건비가 뛰면서 불가피하게 음식가격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후쿠오카를 수년전부터 방문했던 기자가 여러 이자카야집을 방문했을 때, 음식가격은 2년전에 비해 기본적으로 10% 이상 올랐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2월중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전년대비 0.6%로, 전월의 0.2%를 크게 웃돌았고, 시장전망치 0.5%도 뛰어넘을 정도로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 1월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2024년도(2024년 4월∼2025년 3월) 소비자물가상승률(신선식품 제외 기준) 전망치를 2.4%, 2025년도는 1.8%로 각각 제시했다. 수 십년간 0%대 물가상승에 익숙해있는 일본인들로서는 충격적인 수치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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