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 논단] 노론 음모론 닮은 삼성 음모론, 법원 판결로 끝내야 한다
삼성이 불법 승계 도모했다는 의혹, 3년간 106차례 공판에도 입증 안돼
이상우
승인
2024.02.04 12:27 | 최종 수정 2024.02.04 13:28
의견
0
[뉴스임팩트=이상우기자] 역사 애호가들 사이에서 한때 유행했다가 사그라진 설이 있습니다. 노론 음모론입니다. 조선시대 붕당 중 하나인 노론이 조선 후기를 지배했을뿐더러 지금도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쥐고 흔들면서 온갖 폐단을 만든다는 설명입니다.
노론이 공적 못지않게 과오를 남긴 건 사실입니다. 다만 노론 음모론은 설득력이 전혀 없습니다. TV 드라마나 영화 소재로는 흥미로울지 모르지만요.
상식적으로 영·정조 시대, 세도 정치기, 구한말, 일제 강점기, 광복 후 이념 갈등으로 이어진 한국 근현대사에 켜켜이 쌓인 병폐를 노론이라는 일개 정치 집단에 따지는 게 말이 안 됩니다. 노론이 조선을 쥐락펴락하기는커녕 임금의 수족에 불과했음을 입증하는 사료가 여러 개 발굴되기도 했고요.
한 가지 사례만 들어 보겠습니다. 노론의 영수 심환지가 권력 보전을 위해 개혁 군주 정조를 독살했다는 설이 1990년대 돌았습니다. 그런데 2009년 놀라운 문서가 발견됐습니다. 심환지가 정조와 주고받은 비밀 편지였습니다. 300여통에 달했죠.
정조는 비밀 편지를 통해 심환지에게 조정에서 어떻게 하라는 식으로 이런저런 지시를 내립니다. 심환지는 왕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고요. 심지어 정조는 심환지에게 건강을 상담하고 개인적 푸념까지 늘어놓습니다. 이런 판에 누가 누구를 죽이겠습니까. 정조 독살설, 나아가 노론 음모론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얘기인지 드러난 셈이죠.
노론 음모론과 비슷한 의견이 반(反) 삼성 진영의 삼성 음모론입니다. 거악 삼성그룹과 총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우리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면서 특권과 반칙을 일삼는다는 겁니다. 헛웃음밖에 안 나오는 소리지만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노론 음모론과 달리 삼성 음모론은 현재 진행형이어서죠.
삼성 음모론이 낳은 대표적 케이스가 삼성물산 부당 합병 의혹 사건입니다. 어려운 경영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계열사(삼성물산)를 바이오 같은 미래 사업을 하는 계열사(제일모직)와 합친 것을 두고 반 삼성 진영은 불법 승계니 뭐니 하며 프레임을 뒤집어씌웠죠. 사소한 내부 문건 하나하나에 부정적 의미를 부여하면서요. 하지만 검찰 기소 후 3년에 걸쳐 106번이나 공판을 했는데도 불법 승계를 나타내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는 5일 오후2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삼성물산 부당 합병 의혹 사건에 대한 1심 선고기일이 열립니다. 재판부가 삼성 음모론을 끝내는 판결을 하길 기대합니다. 삼성그룹과 이재용 회장을 편들어서가 아닙니다. 비합리적인 음모론을 접고 논리적으로 삼성그룹과 이재용 회장의 공과를 논할 때 우리 사회가 한층 발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자 ⓒ 뉴스임팩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