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정의 숲과 쉼]새들이 있어 겨울다운 철원 한탄강

김서정 승인 2024.02.03 01:00 의견 0
겨울 한탄강@김서정 작가


[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새들이 있어 겨울다운 철원 한탄강 겨울 탐조 몇 번에 멀리 철원평야의 학이 보고 싶었다.

그 학(鶴)이 두루미와 같다는 걸 안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학이 아무 때나 있는 새가 아니라는 것도 이제 조금 인지했지만, 무엇보다 학과 두루미 사이에 둘러쳐진 견고한 벽을 부숴야 할 것 같았다.

학으로 고고한 학만 상상했던 지식 위주의 삶에 종지부를 찍으려면 ‘뚜루루루, 뚜루루루’ 하고 울어 두루미로 부른다는 그 새를 직접 보고 가까이서 새소리를 들어야만 단초가 열릴 것 같았다.

그래야 인간 위주의 이야기 구성이 얼마나 자연을 막 대하는지 빗맞은 새똥만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바심으로 기회를 엿보던 중 탐조와 전혀 무관한 자리에서 가는 길이 열렸다.

처음부터 목적지가 철원평야는 아니었지만, 분출하는 욕망을 누를 수 없어 일행을 꼬드겨 드디어 학 아니 두루미를 보고야 말았다. 이른 아침 일행이 탄 자동차가 우리 동네로 온단다.

인천에서 한탄강 주상절리로 가는 길에 고양시가 있으니 친절하게도 태우고 간단다. 이처럼 고마울 수가. 그렇다. 일행 가운데 한 분이 한탄강 주상절리를 봄에 가보았는데 기가 막히도록 좋아 일정이 맞는 김에 겨울 풍경을 함께 보고 싶단다.

그 분에게는 봄과 겨울의 대조적인 인상이 추억이 될 것이고, 그곳이 처음인 나를 포함 다른 분에게는 차 없이는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겨울 여행지라 감사할 따름이다. 그랬다.

탐조를 하려면 장비가 필요했다. 쌍안경, 카메라는 기본이지만 그게 값이 나갔다. 복합적인 흥미를 갖고 탐조에 발을 디뎌 덜컥 거액을 던졌다가 새가 잘 보이지 않는 계절을 지나는 동안 새로운 취미가 생겨버리면 그 투자의 실체들은 쓰레기가 되고 말 것이다.

새로 새 세상 보겠다는 생태 행위가 자연으로 순환되지 못하는 소비에 그칠 것을 우려해 탐조 장비는 내년을 기약해 보기로 했다. 여기에는 얄팍한 주머니 사정은 기본이고 덧붙여 진득하지 못한 성격도 당연히 한몫했다.

한탄강 두루미@김서정 작가


그런데 쌍안경과 카메라 같은 기본 장비가 더 있었다. 자동차였다. 생각에 따라 핑계일 수도 있지만, 철원만큼은 자동차가 필요했다. 대중교통으로 가자면 4시간 걸릴 거리가 자동차로 가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더 큰 문제는 한파가 몰아치는 철원평야를 차 없이 어떻게 다니느냐 하는 거다. 자동차와 성능 좋은 카메라를 가진 일행, 쾌재를 부를 수밖에. 한적한 월요일 한탄강 주상절리 순담매표소에 선 아침 기온은 영하 10도다.

완전무장을 해서인지 오후에 두루미를 볼 들뜬 마음인지 추위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바닥도 관리하는 분들이 연신 송풍기로 쓸어서 미끄럽지 않다. 안전에 아무 이상이 없어 안심하고 들어서는데, 깊게 생각하지 않은 모습에 잔뜩 긴장이 온다.

그건 잔도였다. 한탄강 협곡의 바위에 틈을 내어 쇠를 박고 거기서 쇠줄을 달아 철다리를 걸쳐 놓은 잔도(棧道)를 걷는 게 아찔하다. 그물망처럼 만들어 놓은 철다리 통행로 아래는 텅 빈 허공이기 때문이다. 그 끝에 바위가 보이고 그 옆으로 여울이 철렁대는 모습에 울렁거린다.

그래도 적응의 동물이라고 조금 걷다 보니 어지럼증은 사라지면서 주위 풍경을 두리번거리며 걷게 되는데, 문득 이 길을 냈을 누군가는 상상할 수 없지만, 오래전 본 다큐영화 ‘절벽을 걷다, 중국 잔도공’이 선연히 떠오른다.

그저 멀리서 보면 될 풍경을 관광 목적으로 자연을 훼손하는 게 못마땅하게 여겨지다가 잔도공 직업을 잃으면 가족 생계가 막막해진다는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던 모순들, 여기서 뾰족한 공감의 대책이 없는 그 ‘모순’이 덮쳐온다.

잔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고 그것이 깊고도 넓은 추억이 되어 그곳 풍경을 오래 기억하겠지만, 잔도로 부서진 바위와 잘려나간 나무들은 아픈 추억만 되새기며 쓸쓸히 분해될 것 같은데, 이 정리되지 못한 모순에 움찔하면서도 눈길은 조각 같은 절벽에 머물며 감탄을 해댄다.

한탄강@김서정 작가


그러면서 바위 틈 사이사이 생명으로 자리 잡고 있는 나무에 오래 눈을 두지 못하고 틈틈이 강에 떠 있을 새들만 찾는 모습에 가식적인 혀를 찬다. 아직까지 나무도 잘 알지 못하는 데 중뿔나게 새타령만 하는 허세에 모순을 느낄 무렵 일행 한 분이 강에 새가 있다는 말을 휘날린다.

모순에 대한 생각 정리는 뒤로 미루고 빠르게 새를 보는데, 아뿔싸, 잘 모르겠다. 비오리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말한다. 오리 종류라고. 쌍안경이 없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고. 집에 있는 쌍안경은 근거리밖에 못 보면서 말이다.

모순은 곧 익숙한 거짓말이라고 정리하며 드르니스카이전망대에서 인증 사진 찍고 순담매표소로 되돌아간다. 그곳에 차가 있으니. 왕복 길에 집중하는 건 한탄강 오리들이다. 하지만 가던 길에 본 오리 이외에 두 마리 정도밖에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게 아쉬울 때마다 기러기들이 협곡 위를 날아간다. 탐조가 아니었더라면 나무와 바위 그리고 잔도만 보았을 여행에 새들이 풍경의 주요 구성 요소가 된 것에 나름 기쁘다.

겨울이면 강이 꽁꽁 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모든 강이 얼면 새들이 먹을 게 없어 새가 오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자연이 자연답지 못하다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그래서 한탄강 하면 한스러운 탄식만 떠올렸던 왜곡을 버리고 한여울이라는 본디 이름으로 새와 연관 짓는 생각을 하는 현재가 기껍다.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곳을 여울이라고 한다는데, 그 세찬 기운이 얼음을 허용하지 않는다.

즉 여울에서는 오리들이 먹이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곳이 한탄강 바로 한여울이라는 것이고, 그래서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한탄강 주상절리는 더 아름답게 다가온다.

아주 오래전 땅 위로 분출한 용암이 냉각과 수축을 거치면서 만들어졌다는 육각 모양의 기둥들이 주는 천연 미학이 나무도 나무이지만 흐르는 강에 떠다니는 새들로 인해 더욱더 돋보인다는 것이다.

한탄강 주상절리를 떠나 철원 별미인 매운탕을 한가득 먹고는 지체 없이 철원평야로 달린다. 일행이 학저수지라는 글자를 보아 그리로 향했으나 눈가루 덮인 그곳은 꽝꽝 얼어 있었다.

동심으로 돌아가 썰매타기 흉내라도 내보기를 희망하지만 허허벌판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에 차문은 곧 닫히고 두루미탐조대로 내빼자고 한다.

거기에는 얼어 있는 저수지에 새가 오지 않을 거라는 얇은 생태 지식이 끼어든 거고, 궁극은 행여 두루미를 못 보면 낭패가 아닌가 하는 욕심이 끓어오른 탓이다. 10여 분 달리는 사이 논바닥에 두루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네댓 마리 정도의 재두루미다. 염두에 둔 두루미가 아니다. 그래도 실망하면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미안한 마음으로 재두루미에 눈길을 주며 내적 감탄을 이끌어내다 보니 감탄이 나온다. 그건 50미터가 채 안 되는 곳에 있는 재두루미 모습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같은 거리라도 구분이 어려운 오리들보다 한눈에 저건 재두루미 하니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진다. 그 마음을 가지고 천천히 차가 가는데, 드디어 재두루미 세 마리와 두루미 두 마리가 먹이 활동을 하는 게 눈에 들어온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두루미를 대면하는데 숨이 막혀온다.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저 등에 올라타 영원한 삶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며 학 속으로 빠져는 게 기이하게도 느껴진다.

사진@김서정 작가


도대체 학을 보는 게 뭐라고. 하지만 볼수록 그동안 없던 느낌이 팽창해 온다. 그림에서 보던 학, 동물원에서 스치듯 봤을 법한 학, 그 학이 눈앞에서 검고 흰빛만으로 거대 덩치를 움직이는 게 신비스럽다.

이윽고 한 다리로 서 있는 모습도 보여주자 감탄을 넘어 탄식이 나온다. 도대체 학을 보는 게 뭐라고. 첩첩산중 같은 모순이 흐느적거리면서 자아가 부서질 즈음 작은 신음이 터져 나오고 그걸 아는 듯 학 두 마리가 하늘을 가릴 만한 날개를 펼치며 희고 검은빛으로 고개 든 작은 존재를 압사시키는 듯하다.

도대체 학을 보는 게 뭐라고. 두루미 아니 학을 보는 사이 둘 사이에 있던 견고한 벽이 무너졌을까? 둘이 같은 새라는 건 이제 확실히 알 것 같지만, 잠깐의 만남이 인간이 만든 지식과 자연에 흐르는 생태 사이의 모순을 무너뜨리지는 못할 것 같다.

여전히 우리는 더 우수한 장비로 자연을 들여다볼 것이고, 여전히 자연은 더 가혹하게 파헤침을 당할 것이다. 그 사이에 줄어드는 건 생물 다양성이지만, 그래도 철원 군민들의 사랑으로 겨울을 나는 두루미들이 계속 날아오는 한 한순간에 모든 걸 파멸시키지는 않을 것 같다.

그 따뜻한 마음을 가져다준 철원 두루미에 감사하며 쌩 하니 차는 서녘 노을로 향한다. 그 노을에 날갯짓이라도 하고 싶은 아름다운 그 지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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