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임팩트=박종국·이상우기자] 신년을 맞아 국내 방위산업(이하 K방산)을 둘러싼 장밋빛 전망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수주, 수출, 영업이익, 주가까지 모두 역대 최고를 기록할 거라는 기대다.
근거 없는 희망은 아니다. K방산 제품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대한 높은 평가가 여전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장기화로 무기 수요가 늘고 있다. 루마니아, 이집트, 필리핀,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해 다양한 국가가 K방산 제품 도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대로 K방산의 봄을 축하하며 샴페인을 터트리기만 하면 되는지 의문이 든다. 경영학에 '시장을 주도하고 있을 때 파괴적 혁신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어려울 땐 입에 풀칠하기 바쁘지만 여유가 생기면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K방산도 호조세를 장기간 이어가려면 혁신이 필수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뉴스임팩트가 해답을 찾기 위해 K방산의 거목으로 꼽히는 전용우 법무법인 화우 고문을 만났다.
전용우 고문은 부산 경남중, 서울 중동고, 고려대 기계공학과, 명지대 산업경영공학 석박사를 나왔다. 옛 국방부 조병창(현 SNT모티브)을 거쳐 옛 삼성항공산업(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항공기 생산 담당과 해외 영업 총괄 임원, KAI 해외 영업 총괄 임원을 지냈다. 퍼스텍, 유콘시스템 대표이사를 17년간 역임했다. 반세기에 걸쳐 지상·유도 무기 개발과 항공 산업에 종사한 K방산의 산 역사로 평가받는다.
ㅡ고문님께서 걸어오신 길을 들려달라.
"70학번이다. 당시 남북 관계가 험악했다. 북한을 이기려면 기술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서 기계공학을 공부했다. 1974년에 군 특례로 조병창에서 M-16 생산에 관여했다. 병역 의무를 마치고 삼성항공산업으로 갔다. 삼성항공산업에서 엔진 기술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로 재직했고 항공기 생산 담당, 해외 영업 총괄 임원까지 올라갔다."
"1997년 IMF 외환 위기가 발생하면서 삼성항공산업, 현대우주항공, 대우중공업 항공사업부를 통합한 KAI가 탄생했다. KAI에선 해외 영업 총괄 임원을 역임했다. 그러다가 퍼스텍에서 최고경영자(CEO)로 스카우트하고 싶다는 제안이 와서 회사를 옮겼다. 기업인으로 살았지만 정부 정책에 자문하기도 하고 산업통상자원부, 방위사업청(방사청) 정책 위원도 지냈다."
ㅡ순탄하게 경력을 쌓으신 듯하다.
"그렇지 않다. 무수한 개발 실패를 경험했다. 삼성항공산업 시절이 떠오른다. 지금과 비교하면 여건이 매우 열악했다. 록히드마틴, 보잉이 아니라 미국의 조그만 항공사가 사소한 항공기 부품 개발 일거리를 줘도 밤새 작업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고도 품질 요구 수준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반납한 적이 많았다."
ㅡ고문님을 포함해 K방산 개척자들이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그 덕에 K방산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전성기라고 생각지 않는다. 수출이 좀 늘어났을 뿐이다. 오히려 위기라고 여겨진다."
ㅡK방산이 위기라니 예상치 못한 의견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K방산 제품이 잘 팔리는 건 상황이 잘 맞아떨어져서다. 전쟁이 나니 당장 무기를 늘려야 하는 판이라 미국산, 독일산보다 가격이 저렴한 K방산 제품이 구매 국가 눈에 들어온 거다. 하지만 근본적인 혁신을 하지 않은 채 현재에 만족하면 연 수출액 150억달러(20조여원)에 머물 뿐이다. 300억달러(40조여원) 수출까지 못 간다."
ㅡ그럼 어떻게 K방산을 혁신해야 할까.
"미래 사회에 맞는 무기 개발 전략을 세워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에 무인화, 자동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이스라엘은 25㎞ 경계를 여군 2명이 지킨다고 하더라. 저출산으로 입대 인구가 부족한 우리 사회도 전방 감시·경계 시스템을 이스라엘처럼 개편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은 당장 전장에서 쓰일 무기를 제작해 파는 데 전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그래선 안 된다. 정부는 미래 전장이 어떤 형태일지 예측하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ㅡ미래 전략 수립 외에 정부가 K방산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방사청,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 대통령 모두 K방산 발전에 힘을 보탤 측면이 있다. 방사청은 규제를 확 풀어야 한다. 지나친 원가 절감 요구, 납기 제한, 벌점 같은 페널티를 없애야 방산업체들이 장기간에 걸쳐 명품 무기를 만들 수 있다. 기품원은 무기 품질 검사에 자율성을 더 부여해야 한다. 무기를 개발한 업체가 스스로 품질에 책임질 수 있도록 전문가에게 검증을 맡기는 방식을 검토해 볼 만하다."
"방산은 탑(TOP·정상)과 탑 간 협상에서 결판난다. 국방부 장관, 방사청장, 방산업체 사장이 열심히 하는 건 한계가 있다.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영업 활동을 활발히 해야 한다. 나라별 맞춤형 투자 지원과 방산 수출을 교환하는 패키지 딜(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통합해 거래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ㅡ대통령이 해결사라는 말인가.
"방산의 실수요자는 국가다. 따라서 방산에 연관된 문제는 대통령이 앞장서야 빨리 풀린다. 대통령이 날카로운 질문 하나만 던져도 공무원 조직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인도네시아가 KF-21 전투기 개발 분담금을 안 내는 이슈도 장관 레벨에선 해결 못 한다.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논의해 구상 무역을 합의하든가 해야 한다."
※ 구상 무역은 수출입 물품의 대금을 돈으로 지급하지 않고 그에 상응하는 수입 또는 수출로 상계하는 국제 무역 거래 방식이다. 일정 기간 수입액과 수출액의 균형이 맞도록 무역 상대국과 협정해 이뤄진다.
ㅡ대통령 직속 참모 기관인 국가안보실의 2차장이 방산 수출을 담당하고 있지 않나.
"방산 수출은 안보, 외교, 산업을 묶어 지역에 따라 전략을 펴야 한다. 국가안보실 2차장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 오래된 전투기를 무상으로 주고 장기적인 관계를 맺을지, 공동 훈련을 포함한 안보 협력을 제공하고 무기 거래를 하자고 할지, 미국산 전투기를 살 테니 한국에 투자해달라고 할지는 대통령이 결단할 사안이다. 비싼 전투기를 과도하게 구매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때도 대통령이 직접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국민들에게 먹힌다."
ㅡ다른 이슈를 여쭙고 싶다. K방산은 하청업체 경쟁력이 약하다는 비판이 있는데.
"방산 대기업들이 하청업체를 줄 세우는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 LIG넥스원 하청업체는 한화그룹 방산 계열사 일감을 따선 안 되는 게 국내 현실이다. 영업비밀 유출을 우려해서라지만 너무 편협한 자세다. 미국은 하청업체가 보잉 일을 하다가 에어버스 관련 사업도 수주한다."
"국내 방산 하청업체 가운데 세계적으로 이름난 전문 기업이 없는 점도 아쉽다. 하청업체들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방산 대기업들도 인수·합병을 통해 하청업체 육성을 해나가야 한다."
ㅡ일본과 방산 협력을 하자는 견해가 있다. 일본과의 관계는 언제나 뜨거운 이슈다. 예전에 아프리카 수단에 파견된 한국 한빛부대가 일본 자위대로부터 총알을 빌렸다가 국내 여론이 들고 일어난 적도 있다. 일본과 공조해야 한다고 보나.
"갈수록 방산업체들을 가르는 국경은 희미해질 거다. 일본이라고 배제해선 안 된다. 일본이 기술 국산화가 잘 된 나라인 만큼 공동 개발을 하면 좋다. 다만 기업이 앞장서기보다 정치, 외교적으로 먼저 일본과의 방산 협조를 고민하는 게 바람직하다."
"더불어 K방산도 일본 방산처럼 안정적인 가동률을 보여야 한다. K방산은 500MD헬기 무인화, 정비창 민영화 같은 신규 사업이 발생했을 때 가동률이 급변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가 방산 업체들이 지속해서 고용을 창출하고 기술 인력을 유지할 수 있게 가동률을 관리해야 한다."
※ 가동률은 생산 설비가 어느 정도 이용되는지 나타내는 경제 지표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 '2022 방산업체 경영 분석'에 의하면 K방산 가동률은 2017년 69.2%, 2019년 72.0%, 2021년 81.4%를 기록했다.
ㅡ군인들이 전역 후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해결 방안은.
"오랜 기간 복무한 군인들이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도록 재단이나 싱크탱크를 만들어 줘야 한다. 그들이 안보 전문가로서 제2의 인생을 개척한다면 현역 군인들도 승진에 목매지 않고 명예로운 은퇴를 고려하게 된다."
ㅡ마지막 질문이다. 기업에서 고위 경영진을 오래 지내면서 이런저런 유혹을 많이 받았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맡은 일에 충실하면서 K방산 발전에 전념하자는 신념을 지켰다. 청년 시절은 물론 나이 일흔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숱한 정치인, 관료, 기업인을 만나 조언을 해주지만 머릿속 신념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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