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정의 숲과 쉼] 새들이 보여주는 색감에 황홀감을 느낀 선유도공원

김서정 승인 2024.01.20 06:00 의견 0

[뉴스임팩트=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새에게 관심을 가지고 싶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보여주는 전대미문의 색 조합에 끌려서다.

단색으로 보이는 우리 피부는 옷을 입어야만 색 변화가 이루어지는데, 새는 그 자체로 패셔니스트의 풍미를 보여준다. 까맣고 하얗고 파랗고 노랗고 아니 특정 색으로 말할 수 없는 빛깔들이 한 새에게서 부위별로 폭죽 터지듯 날리고 있는 걸 보면 명작은 잊혀지고 새들이 위대한 예술가로 다가온다.

자연을 버무려 물감을 만들어내고 그걸로 평면에 표현을 한 인공 작품이 겸연쩍어진다. 전기 불빛이 아니라 햇살에 그대로 눈부시게 드러나는 자연 색들이 하늘을 나는 향연에 요지부동으로 쩔쩔맨다. 오래 오래 진화된 색들이 주는 시간의 물결에 스며들고 싶어서.

그럼 혹시 일본의 도겐 선사가 말한 “생사가 열반 자체임을 알라. 피해야 할 생사도 없고 구해야 할 열반도 없다. 오직 이것을 깨달을 때 그대는 생사로부터 자유로워지리라”라는 문맥이 와닿을까 싶어서. 그럼 온종일 부침하는 몸과 마음이 평안해질까 싶어서.

선유도 조류전망대@김서정작가


새를 보며 자유롭고 싶은 생각에 다다르려고 하는 어쩌면 버려야 할 욕망에 이끌려 또다시 새벽같이 일어나 선유도공원으로 향한다. 탐조 출발 지점은 전에 가보았던 일명 무지개다리로 불리는 선유교가 아니라 선유도공원 정문이다. 당산역에서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가서 내리니 건너편이 입구인데 횡단보도가 보이지 않는다.

당연한 이치다. 한강다리 그 어디에 사람이 차를 막고 다닐 수 있을까. 난간 아래로 내려가 포장도로를 잠깐 걸으니 시작점이다. 근데 사람들이 모이자마자 다시 되돌아간다. 그곳에 조류전망대가 있기 때문이다.

조류전망대는 선유도 남쪽 끝자락이다. 그러니까 선유도 위로 다리가 지나간다는 건데, 걸어보니 느낌이 온다. 그 앞으로 눈길을 보내면 빵모자 같은 작은 섬이 둥둥 떠 있는 듯하다.

거기를 넘어 또 시선을 던지면 당산철교다. 마침 전철이 옅은 구름 사이로 비치는 티 나지 않은 햇살을 받으며 지나간다. 일터로 향하는 이른 아침에 새를 보고 있는 건 귀족 문화인가 생존 탐방인가? 불현듯 갈림길에서 정체성을 잃을 무렵 뿔논병아리라는 말이 들려온다.

사진@김서정 작가


이름만 듣고 생김새를 상상하지만, 볼 만 하면 수면 아래로 사라지는 광경에 갑갑증이 일어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도감에 의존하며 탐조한다.서 있는 나무를 보는 것과 완전 다른 관찰 행위에 진득하게 해나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덧붙여 답답한 건 나무 이름 유래가 궁금할 때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이름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명명백백한 걸 선호하는지라 굳이 뿔논병아리 어원을 찾아본다. 검색하니 정수리에 뿔처럼 깃이 돋아 있는 논병아리라 하여 따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들어가 보니 논병아리는 병아리보다 조금 크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학명은 빼고 마지막으로 영명을 보니, ‘Great Crested Grebe’, 직역하면 위대한 볏이 달리 논병아리가 되는 셈이다.

서식지와 생김새를 보고 지은 이름인 것 같은데, 어릴 적 병아리를 키웠던 것처럼 가까이 두고 며칠간 지내보면 제대로 알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도감을 또 쳐다보게 된다. 뿔논병아리의 겨울깃은 얼굴과 앞목은 흰색이고, 부리는 분홍색이라고 한다.

반면에 여름깃은 귀깃 부분이 적갈색이며 머리와 목의 경계는 검은색, 그리고 부리는 검은색을 띤 분홍이라고 써 있다. 역시 신체 영역별로 다른 색을 보여준다는 문장에 감탄만 하면서도 은연중 뿔논병아리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물수제비로 이는 물결보다 약하게 파문을 긋기만 하며 나타나지 않는 모습에 추위만 밀려와 그곳을 떠난다.

사진@김서정 작가


소나무 가지와 솔잎 사이사이 박새, 쇠박새 보이는가 싶은데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송수 펌프실을 재활용해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이야기관 입구에 놓여 있는 피아노를 누군가 연주하고 있다. 한겨울 잔뜩 껴입은 옷차림으로 건반을 두드리는 게 사연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 건물 한쪽에서 거무튀튀하게 하얀 자작나무에 모두의 눈길이 모이면서 연주곡은 배경으로만 흘러간다.

그러면서 먹이 활동 중인 방울새가 날아가지 않을까 은근 속을 끓이면서도 우리가 떠날 때까지 원통형 열매에 연신 부리를 갖다 대기만 하며 붙박이로 있는 그가 고맙다.

필드스코프에 눈을 꽂고 방울새를 보는데 갈색 사이 한 줄로 노란색이 번개처럼 나타난다. 겨울 참나무 잎들에 개나리꽃 여러 송이 새끼줄로 꼬인 듯 비록 문명 도구의 힘을 빌렸지만 육안으로 처음 맞닥뜨린 이색적인 색의 조합에 마음에서 환한 웃음이 번져 나간다.

새를 볼 생각이 없었으면 추위로 제 세상 만난 자작나무에 위로를 주며 멈췄을 그 순간, 새가 깃들어 있는 풍경이 뚜렷이 각인되는 게 이색 체험이라면 이색 체험이 되어 버린다.식재된 자작나무는 자생 자작나무보다 생장에 문제가 생겨 제 빛깔을 내지 못해 검은빛이 두드러진다고 해도 흰빛이 크게 점령하고 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그래서 검고 희고, 그리고 검기보다 갈색에 가까운 원통형 열매에서만 색감을 느끼며 본 자작나무에서 가운뎃손가락 크기의 생명체가 보여준 틈새의 노란색, 전에 없던 새로운 인식이 저절로 흡입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찰나의 행복감이랄까? 느낌만으로 살아 있고 그 살아 있음이 바로 사라져도 아무런 문제가 터지지 않는 그 어떤 경지 같은 세계 말이다. 나무를 통해 들어가고 싶었던 그 통로를 신선이 살았다는 선유봉의 잔재가 있는 이곳의 새가 혹시 열어줄지 모른다는 희망에 몸도 마음도 휘청대는 삶들이 잔잔해지는 듯하다.

사진@김서정 작가


“새는 오로지 지금을 산다”는 걸 강조하고 있는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에 나오는 글을 보자.

“생물학적으로 진정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죽으면 그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는 사라지지 않고 지렁이나 꽃 속에 흡수된다. 이 지렁이와 꽃은 다시 새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또 새는... 이렇듯 모든 것이 끊임없이 순환한다.

아시아의 현자들은 이 순환을 이해한 바탕 위에 철학을 세웠다. 하지만 서양인들의 선형적인 관점은 종종 이 순환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다행히도, 자연과 새는 우리에게 이러한 삶의 진실을 환기해준다.”

죽음과 삶이 하나라는 순환의 고리를 터득해 보려고 부단히 나무와 숲을 보고 또 보았는데 탐조에서도 이게 가능하다니 새 길에서 새 기쁨이 날아오르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그 난해한 도달점에 대한 추구는 강물에 띄우고 오로지 새들이 보여주는 그 아름다운 색들의 조합이 궁금해 과학 지식을 찾아본다.

동아사이언스에 올라온 자료를 보면, “버그만 박사는 ‘유멜라닌 색소가 새 깃털의 고유한 화학 성분으로 밝혀졌으며 1억년 동안 완벽하게 보존됐다’며 ‘고대에 살았던 조류의 몸통과 목은 검은색이었고 날개는 얼룩덜룩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면서 “깃털의 색은 주변 환경과 비슷하게 진화하면서 몸을 보호하는데 사용될 뿐 아니라 조류들 간의 소통과 짝짓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왜 부위별로 색깔이 다를까? 그걸 찾아보니 부위별로 기능이 달라 색소에 차이가 있고 햇빛에 따라 다르게 굴절되는 반사의 빛이 다양한 깃털 색을 보여준다고 한다. 더 들어가면 복잡하고 어려울 듯해 우선은 여기까지만 알아본다.

칙칙한 겨울숲을 뚫고 올라오는 노란 복수초를 볼 때 자연의 빛깔들이 주는 생명 에너지에 살아가는 느낌이 껑충 뛴 적이 있었다. 그 매력에 빠져 식물을 가까이 했는데, 이제 새에게서도 그 마법을 충분이 건네받을 수 있다는 걸 느껴가니 강바람이 매섭지 않다.

그 바람을 온전히 맞는 수수꽃다리 사이로 뱁새 둥지가 보인다. 둥근 밥그릇 같은 그곳 안은 아늑할 거라는 느낌에 주위 나무 색과 비슷한 둥지 색이 덧대지면서 자신의 몸도 후손도 오로지 색으로 만들어가는 새가 황홀해 보인다.

그 새를 못 보고 살아온 삶이 이제라도 궤도 수정을 통해 살아가는 거에 감사하며 아름다운 섬 선유도공원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추워도 그 아래 떠 있는 새들에게 인사하며.

[김서정 작가 소개]

1990년 단편소설 <열풍>으로 제3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가 된 뒤, <어느 이상주의자의 변명> <백수산행기> <숲토리텔링 만들기> 등을 출간했고, 지금은 숲과 나무 이야기를 들려주는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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